리노 구젤라 前 취리히연방공대 총장 '2019 KAIST-THE 이노베이션 & 임팩트 서밋' 방한

▲ 리노 구젤라 전 취리히연방공대 총장은 "대학의 존재가치를 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학 혼자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지역, 사회, 정부가 함께 협력해야한다"고 말하며 "앞으로 대학의 역할중 큰 부분은 인간본연의 역할을 찾고, 유지하는데 맞춰질 것"이라고 말했다.<사진 : 박병수 기자>

[U's Line 유스라인 특별취재팀]지난 4월 2일~4일까지 KAIST에서 열린 '2019 KAIST-THE 이노베이션 & 임팩트 서밋'에서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Zurich) 리노 구젤라(Lino Guzzella) 前 총장의 발언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모교로도 유명한 취리히연방공대는 스위스개국 7년후인 1855년 설립된 취리히연방공대가 세워질 당시부터 ‘스위스를 현대국가로 만들라’는 지침을 받고 개교됐다. 영국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와 함께 각종 대학평가에서 항상 유럽 3대, 세계 10대 이공계 대학으로 꼽히는 취리히연방공대의 리노 구젤라 전 총장을 만나 취리히연방공대가 지식재산 산업연계, 지역관계 등을 연결지어 가기 위해 대학운영, 정부의 지원체계 등에 대해 들었다.<편집자>

“정부, 1조5000억원 지원해도 간섭 없어”


리노 구젤라 전 총장은 스위스 정부와 대학과의 관계는 의외로 간단하다고 말했다. 대학의 역할과 정부와의 신뢰라고 압축했다. “취리히연방공대는 대학재정 70%이상을 스위스 정부에서 지원받는다. 1년 예산 2조1000억원중 무려 1조5000억원을 정부에서 지원하지만 대학운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고, 세계적인 수월성 교육을 요구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취리히연방공대는 철저한 수월성 교육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훌륭한 교수와 학생들을 뽑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교수들을 유치하기 위해 평균 100만달러(약 11억원) 연구비를 지원하고 박사급 기술인력들을 붙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교수 66%, 조교수 79%, 학생 38%가 외국인재가 차지할 정도"라며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은 1년에 1000달러(약 110만원) 정도로 굉장히 저렴하다"고 덧붙였다.

리노 구젤라 전 총장은 ”취리히연방공대 이사회는 정치·경제·사회 분야 전반에 걸친 위원 11명로 구성돼는데, 이사진에 정부 파견인사가 한 명도 없다고 밝혔다. 단지 정부와 1년에 두 차례씩 의사소통을 위한 토론회가 있을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KAIST 이사회(총 14명)에는 3명의 정부인사가 당연직 이사로 차지하고 있다.

구젤라 총장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학의 역할이 크게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대학이 지식을 외우게 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스마트폰 검색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은 정보를 곧바로 얻을 수 있다"면서 "학교내 창업 프로젝트나 기업과의 협업 등을 통해 이런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게 대학, 특히 공과대 역할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수는 학생이라는 등반가를 돕는 ‘세르파’

그는 “취리히연방공대에서는 매년 30여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이 탄생하고 5년 뒤에도 95%가 살아남는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중요한 능력으로 창의성이나 아이디어를 꼽는다. 흔히 타고난다고 생각하는 능력이지만, 교육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다. 교수와 대학은 끊임없이 어떤 교육이 이런 능력을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교육의 주된 내용이 됐다."고 강조했다.

취리히연방공대는 현장위주 교육으로 창업가를 많이 배출하는 대학으로 명성이 높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제품이나 서비스와 관련된 과제가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주어지고, 학생들은 팀을 만들어 이를 풀어내는 교육방식을 쓰고 있다. 학업 수준이 높아질수록 과제는 난이도가 높아진다. 교수들은 해법을 알려주지 않고, 보조역할만 한다. 구젤라 전 총장은 교수들의 이런 역할을 히말라야 등반가들을 돕는 '셰르파'에 비유했다.

▲ 취리히연방공대 전경

그는 대학과 지역의 긴밀한 연계도 강조했다. 만든 지식을 대학 내에서 인큐베이팅하도록 2년간 지원한 뒤 지역에 내보내는데, 이들을 받아 성장을 도울 인큐베이터가 대학 주변에 산적해 있다. 여기에 원래 강했던 기초과학 연구 능력이 더해져 대기업도 찾아오며 자연스럽게 산업 기반이 탄탄해진다고 설명했다.

구글맵 연구소가 취리히에 세워져 3000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게 대표적 예다. 구젤라 전 총장은 “측지 분야 선구자를 배출하는 등 취리히연방공대가 지리정보 분야 기초과학을 선도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수와 학생이 기초연구 외에 들이는 시간을 언급했다. 구젤라 전 총장은 “보통 세계의 대학은 일주일에 하루 꼴인 20%의 업무를 외부 기관 및 기업 자문 등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며 “하지만 취리히연방공대는 나머지 80%의 ‘본연의 업무’ 시간에도 산업과 협력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연구를 통해 발견한 새로운 현상의 특허를 얻고 산업화하는 것도 다 취리히연방공대의 업무로 본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 제조업 강국 한국 절호기회”

그는 “특허나 산업화에 필요한 관련 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교수들이 모든 과정을 번거롭지 않게, 완전히 투명하게 할 수 있도록 20명의 상근자로 구성된 전담조직이 행정처리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구젤라 전 총장이 젊었을 때에는 스위스도 교수가 산업에 관여하는 것을 나쁘게 여겼지만, 이런 노력들 덕분에 지금은 오히려 장려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는 ”대학의 기초과학이 산업으로 확대되길 바란다면 교수 창업과 기업활동 약해서는 안된다. 취리히연방공대는 특허나 산업화 업무도 부가업무가 아닌 대학이 해야 할 본연의 업무로 보고 적극 지원한다. 20명의 풀타임 전문가가 포진한 전문행정조직 지원도 그 중 하나다."고 설명했다.

구젤라 총장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같은 기술이 산업을 바꾸고 있지만 결국 생산성을 높이고 효율화해야 한다는 산업의 근본 원칙은 바뀌지 않는다"며 "신기술은 어디까지나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팔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 공부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새로운 기술을 써보고 적용하는 도전에 곧바로 나서라는 것이다.

▲ 취리히연방공대는 취리히연방공대는 현장위주 교육으로 창업가를 많이 배출하는 대학으로 명성이 높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제품이나 서비스와 관련된 과제가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주어지고, 학생들은 팀을 만들어 이를 풀어내는 교육방식을 쓰고 있다. 교수들은 해법을 알려주지 않고, 보조역할만 한다. 구젤라 전 총장은 교수들의 이런 역할을 히말라야 등반가들을 돕는 '셰르파'에 비유했다.

그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같은 새로운 첨단기술을 산업현장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산업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 강국인 한국에 절호의 기회."라고 언급했다. 그는 한국 역시 스위스와 같은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구젤라 총장은 "반도체와 자동차, 중공업 등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이미 다른 나라를 압도하고 있다"며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하더라도 출발점이 훨씬 앞서 있기 때문에 더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공대, 인문학부 역할 더 중요해진 이유 알아야”

구젤라 전 총장은 “학생 때부터 부딪혀보고 실패하는 경험을 익힌 게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취리히연방공대 학생들은 1학년 2학기 때부터 이론수업을 빼고 일단 무언가를 만드는 수업에 참여한다. 예를 들어 정원 400명의 기계공학과 학생은 20명씩 20개 팀으로 나눠 ‘로봇으로 공을 던져 목표를 맞추는’ 과제를 직접 수행하며 문제해결과 실패 경험을 쌓는다고 한다.

그는 “한국 등 동아시아보다는 낫지만, 스위스에서도 실패는 힘든 경험이다. 하지만 실패에 관대한 문화가 있어 창업을 향한 도전을 막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무작정 ‘한번 해볼까’하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구가 심도 있게 뒷받침하지 않으면 기술 창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구젤라 전 총장은 “취리히연방공대는 연구 및 교수법 센터를 따로 운영해 자율적인 연구과 교육을 돕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말로 ‘공학자가 되기 이전에 인간이 돼라’는 격언이 있다. 이는 취리히연방공대가 인문학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며 "20년만 지나면 인공지능(AI)이 한층 발전해 ‘로봇 사피엔스’를 이룰 것이다. 이는 호모 사피엔스를 기능적으로 뛰어넘을 것이고, 인간의 정체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앞으로 창의력과 지혜, 통찰력 등 인문사회학적 가치가 더욱 요구되는 것은 인문학적 가치관을 반영한 대학의 새 역할로 ‘지속가능성’이 추구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리노 구젤라 전 총장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같은 새로운 첨단기술을 산업현장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산업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 강국인 한국에 절호의 기회."라고 언급했다. 그는 한국 역시 스위스와 같은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사진: 취리히연방공대 홈페이지>

구젤라 전 총장은 앞으로의 대학은 단순한 기술전문가가 아닌 인문학적 가치를 갖춘 인재양성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공계 전문 교육기관인 취리히연방공대에 인문학부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에는 인류의 발전과 복지 증진을 위해 학생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을 주입하면 됐지만 이제는 지식을 넘어 창의적인 사고와 상상력,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기업가정신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리히연방공대는 1년에 한 번씩 학생들을 대상으로 창업경진대회를 열어 수상자들의 창업을 지원한다. 1996년 이후 여기서 탄생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은 380개에 이른다. 매년 30개 가까이 탄생해 5년 뒤에도 95%가 살아남는다고 한다.

글로벌 기업은 취리히연방공대의 이런 풍토를 좋아한다. 대학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 안에 구글과 IBM, 디즈니, ABB 등 글로벌 기업의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다. 취리히공대는 2015년 디즈니 연구소와 함께 수직 벽을 바퀴와 프로펠러의 힘으로 등반하는 로봇을 개발했다. '버티고(Vertigo)'라는 이름의 로봇은 위험한 곳을 접착물이나 등반 장치 없이 움직이면서 사람 대신 작업하는 것이 목표다.

취리히의 구글 캠퍼스에는 인공지능 전문가 250여 명을 포함해 2500여 명의 엔지니어가 근무하고 있다. 구글 사옥 중 캘리포니아 구글 캠퍼스 다음으로 최대 규모다. 취리히공대를 오가는 넷 중 한 명은 글로벌 기업의 연구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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