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편의 밋밋한 논문보다 파급력 있는 1편의 논문에 대한 기다림

▲ 마르코 후터 취리히 연방공대 교수 연구진은 지난 1월 16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인공지능을 학습시킨 다음 이를 실제 네발 로봇 '애니말(ANYmal)'에 적용해 보행 안정성과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네발 로봇‘애니말’. 인공지능의 강화학습 덕분에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터득했다. <사진 :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U's Line 유스라인 특별취재팀] 라파엘로 단드레아 취리히공대 교수가 취리히공대내에 가로·세로·높이 10m인 실내 드론 훈련장인 '플라잉 머신 아레나'를 만들고 드론들이 서로의 위치를 위성항법장치(GPS)로 확인하면서 충돌 없이 비행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바로 평창올림픽 때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드론 군무(群舞)' 기술의 탄생자가 라파엘로 단드레아 교수다.

라파엘로 단드레아 취리히공대 교수는 창업으로 엄청난 부를 얻었다. 공동 창업한 물류 로봇 개발사 '키바 시스템스'를 2012년 7억7500만달러(약 8700억원)에 팔았다. 상대는 아마존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는 미 코넬대 교수를 지내다 2007년 취리히공대로 자리를 옮겼다.

취리히연방공대에서 융합 로봇연구를 이끌고 있는 로버트 리너 교수도 독일 뮌헨공대에서 취리히공대로 옮겼다. 그는 취리히의대 연구진과 함께 팔에 장착하는 재활 로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이미 상용화돼 850대 이상이 각국 병원에서 쓰인다. 리너 교수는 재활 로봇을 만드는 벤처기업 '호코마'를 창업했다. 2016년 장애인을 위한 로봇이 기술을 겨루는 국제대회 '사이배슬론' 대회를 개최한 것도 리너 교수였다.

단드레아, 리너 교수처럼 취리히공대 교수의 60%는 세계에서 뛰어난 외국인교수들이다. 김상배 미국 MIT 교수는 "파격적인 지원 덕분에 저명한 미국 교수들이 취리히공대로 스카우트되기도 한다"며 "MIT 교수였던 에밀리오 프라졸리 교수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프라졸리는 자율주행차 분야의 선두를 달리는 벤처기업 '누토노미'의 창업자다. 그는 2015년 취리히공대로 자리를 옮겼다.

취리히연방공대의 뛰어난 업적 뒤에는 빡센(?) 공부가 뒷받침이 뒤따라 있었다. 이들은 공부 체크는 중간고사, 학기말고사로 하는 게 아니라는데서 출발한다. 심지어는 방학중에도 시험을 본다. 이러다보니 졸업 대상자의 25%밖에 졸업을 하지 못한다. 이러다보니 중도탈락자나, 아예 포기하는 학생도 적지않다. 시시때때로 보는 시험만으로도, 노력했다해서 졸업을 시켜 주지 않는다.

취리히연방공대는 밋밋한 논문 100편보다는 우수 논문 1편을 쓰도록 하는 분위기다. 학계에 파급력이 높은 결과물을 요구한다. 연구성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보채지도 않는다. 다만, 과정은 입증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초과학의 경우 학교의 기다림의 미학이 학문적 토양이 되고 이를 통해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나간다고 취리히연방공대 구성원들은 믿는다. 한편으로는 취리히연방공대는 평가가 엄격하지만 교수와 학생 지원은 최고를 지향한다. 한국처럼 대학평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재정지원을 받기 위한 지표를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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