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가 된 대학강사가 바라본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지난해 10월 어느 기업보다 더 신자유주의적인 대학의 노동력 착취 실태를 고발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출간하고서 홀연 대학을 떠난 김민섭 씨가 대리운전 기사로 변신했다.

이전에 맥도날드에서 일하면서 했던 다짐, '이 육체노동을 계속해야겠다' 때문이기도, 먹고 살기 위한 방책이기도 한 듯하다.

저자는 시간강사로서 번 돈으로 도저히 새로 태어난 아들을 먹여 살리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날로 맥도날드 매장에 취직해 물류하차 일을 하게 됐다.

맥도날드에서의 노동은 그에게 그동안 세상의 전부라고 여겼던 대학을 새롭게 보게 했다.

4대 보험을 보장해주고 명절이면 선물을 주는 맥도날드가 저자를 대학보다 '노동자'로서 '사회인'으로서 더 잘 대해줬기 때문이다.

당시의 경험을 담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쓴 저자는 대학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깨닫고 거리로 나섰다.

저자는 1년간 대리기사로서 일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거리에서 때로는 책상에서 기록해 새롭게 '대리사회'라는 책을 냈다.

저자가 전하는 대리운전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대리운전에 필요 없는 모든 행위는 금지된다. 내 차가 아니기에 의자의 기울기를 조절할 수도 없고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 수도 없었다.

손님이 먼저 말을 건네기 전까지 먼저 말하는 것도 주저하게 된다. 손님이 던지는 말에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만 할 뿐이다.

주체적으로 행위하고 말할 수 없게 되니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사유의 통제다.

저자는 대리기사가 겪는 이런 주체성의 통제가 단지 대리기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대리기사의 삶을 우리 사회의 알레고리로 읽는다. 바로 이 사회가 거대한 대리사회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공인 것처럼 좌석에 앉아 도로를 질주하지만 이미 조수석에 누군가가 앉아 있다.

이 타자의 욕망은 내비게이션을 통해 끊임없이 전달되고 우리는 내비게이션의 들려주는 길 안내에 따라 운전한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의 관계에서 학교 교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이런 '을의 공간'에 순응하는 법을 체화했기에 우리는 남의 운전석에 앉아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저자는 그 공간에서 다른 대리인간에 의해 밀려나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라고 충고한다. 그래야만 조수석에 앉아 있는 타자의 존재, 즉 자기 욕망을 대리시켜온 대리사회의 괴물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때부터 '사유하는 주체'가 되고 자신에게 강요되는 천박한 욕망을 거부할 용기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와이즈베리. 256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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