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물·화재 위주 안전 이외 세균·바이러스 노출 안전점검 확대 시급

 

▲ 전문가들은 건국대 집단폐렴 사태는 한국 대학 실험실 안전불감증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미생물실 실험실 운영수칙으로 볼 때는 모두 해당사항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학실험실 ‘안전불감증’이 원인…최근 8년간 실험실사고 90.5% 대학 발생

[U's Line 김재원 기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최근 발생한 건국대 동물생명과학대학의 집단 폐렴발병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제2의 메르스가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큰 걱정이 앞섰다. 천만다행으로 사람 간 감염 없이 사태는 마무리돼가고 있다. 방역당국은 동물사료 개발관련 실험실 2곳을 사태의 지원지로 추정하고 집중조사중이다.

그러나 건국대 사태는 그동안 대학 실험실의 안전관리는 소화기 등 화재나 폭발 위험 위주로 이뤄졌다면 건국대 사태는 대학 실험실 안전관리 시각이 세균과 바이러스에도 안전수칙과 관리가 시급하다는 비상벨을 크게 울렸다는 지적을 전문가들이 하고 나섰다. 건국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생물 실험실을 갖고 있는 한국의 대학 모두가 해당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는 내용이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연구실 안전관련 통계’ 보고서에서는 세균과 바이러스 등 미생물을 다루는 대학 실험실에서는 미생물이 섞인 폐기물의 뚜껑을 열어 놔 공기 중에 퍼질 위험이 높다거나, 심지어는 S대학에서는 세균전용 실험냉장고에 먹는 음식물을 보관해 감염 위험에 노출되는 등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다수 적발됐음이 확인됐다.

실험실에 상주하면서 일상적인 위험에 노출된 채 연구를 하는 대학원생들의 열악한 조건은 심각하다. 이태준 미래부 연구환경안전팀 사무관은 “대학으로 현장 지도점검을 나가면 가장 많이 적발되는 게 실험실에 실험도구들이 쌓여 있어 유사시 대피가 어려운 점과 실험실에서 생활하는 대학원생들이 ‘노 드링크, 노 푸드’가 원칙인 실험실에서 음식까지 먹는다는 점”이라며 “안전교육을 강화하라고 지침을 내리지만 결국 대학의 시설투자와 관련된 부분이라 개선이 쉽지 않다”고 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취급하는 생물관련 대학 실험실은 ‘생물안전도(Biosafety Level·BL 미생물이 갖는 위해 정도에 따라 등급을 정하고 실험 내용에 따라 밀폐수준을 판단하는 기준)’라는 안전등급에 따라 나눠진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미생물은 위험도에 따라 1~4단계로 구분되고 각 단계에 해당하는 미생물을 다루는 실험실을 BL 1~4로 나눈다. BL1, 2는 위험도가 낮은 미생물을 다루는 실험실로 대학 실험실 대부분이 이 단계에 해당한다. 대학 실험실의 연구원들이 안전등급이 낮다는 평소 인식 때문에 안전 인식이 느슨해지기 쉬운 대목이다.

대학의 실험실 안전 불감증을 방치하는 것이 정부 당국의 관리감독 불감증이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2007년부터 대학 실험시설을 관리감독하고 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이번 건국대 사태를 불러일으킨 또 다른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당국의 관리감독의 허술함에는 실험실 현장점검의 패턴이 지적된다. 대학에 점검을 나올 때 한 달 전에 미리 통보하고 2주전에 해당기관 실험실로부터 점검 현황표를 미리 받아 검토한 후 점검을 나오는 것이 보통이라고 실험실 연구원들은 말한다. 평소 안전의식을 보려면 불시에 해야 현장성을 확보할 수 있음에도 미리 통보하고 나오는 것은 관례적인 관리감독과 당국마저 실험실의 위험성을 못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

당국 ‘뻔한’ 대학실험실 안전점검도 한 요인…예산·안전의식 뒤따라야

이런 식의 현장점검 방식으로는 안전유지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여기다 실험실 안전규정이 물리적 폭발이나 화재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세균이나 바이러스 실험실의 안전은 더욱 취약한 현실이다. 2007~2014년 국내 실험실에서 발생한 사고는 총 965건. 이중 90.5%인 873건이 대학 실험실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원들은 대학 실험실의 허술한 안전관리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본적인 안전수칙조차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단국대 석사 졸업생은 “바이러스 실험은 바이러스 배양실에 격리된 상태에서 하는 것이 원칙인데 연구실에서 그냥 진행했다”고 털어놨다.

선진 외국에서는 어떻게 실험실 안전 관리감독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2012년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발간한 ‘연구실 안전관리 정책방안’ 보고서는 미국 상위 30개 연구중심 대학의 안전관리 전담인력은 평균 52명인 반면 국내 대부분 대학은 1~2명의 인력을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대학 연구실 안전관련 예산은 연평균 1억 원 안팎으로 기관 총예산의 0.3%에 불과하며 안전관리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열악하다. 2013년 개정된 제6차 ‘연구실 안전 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연안법)’에 따르면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을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나와 있지만 몇 명이 안전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고 현실성과 현장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대학 내 실험실 안전 실태가 25년 전의 서구 수준도 못 된다고 지적한다. K대 g한 교수는 “1990년대에 유학을 갔던 캐나다 대학 실험실에는 유해물질 등이 피부에 접촉됐을 때 사용하는 긴급샤워기(urgent shower)나 구급함이 구비돼 있었다. 그걸 우린 이제야 도입하고 있는 거니 말 다 한 거 아닌가”라고 했다.

미래부 관계자는 “전국 대학 실험실에 긴급샤워기나 안구세척기 등은 기본적으로 설치하도록 권고하는데 오래된 대학 건물들 같은 경우는 배수시설이 마땅치 않아서 설치 자체가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미국의 경우, 실험실 안전교육이 매우 엄격하다. 과거 실험실에서 실제 발생했던 사고를 유형별로 알려주며 유사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등 안전교육을 철저하게 진행하고 있다.

미생물관련 실험실 연구원들은 "평소에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게 건국대 사태를 만들어 낸 것이라는 의견이다. 한 대학원생은 “‘무슨 일이 있겠어’ 하는 안전 불감증 인식이 팽배하고 실험에서 생기는 문제도 대충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하려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취재에 협조한 김 모 연구원은 “그동안 대학 실험실 안전관리가 소화기 등 화재나 폭발 위험 위주로 이뤄졌다”며 “이번 건국대 사태를 계기로 세균과 바이러스를 다루는 대학 실험실 안전관리에도 외국처럼 철저하게 이뤄져야 하는 것이 제2의 대학 실험실 사태를 막는 가장 우선해야 할 순서”라고 제기했다.

정부는 대학 실험실습실 환경을 안전하게 개조하는 데 투입했던 1606억원의 예산을 내년도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을 때 마련됐던 예산이 1년 만에 사라졌다. 정부는 그 대신 ‘실험실 기자재 확충사업’이라는 성격이 다른 사업에서 안전환경 조성사업비를 떼어 쓰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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