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스템이 사회문제 숙주, 계층간 이동사다리 교육개혁 서둘러야”

▲ 김희삼 KDI인적자원연구부장(사진)은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점점 계층간 이동사다리 역할이 희박해지고 있고, 이는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숙주 노릇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부장, 정책세미나에서 문제 제기

KDI “現 교육시스템, 계층 대물림”…40代 대비 체감지위, 51개국 중 50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사회에서 계층이동이 가능토록 하는 '이동성 사다리'를 복원하고 성장 잠재력의 핵심인 창의성을 높이려면 근본적으로 교육개혁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교육시스템으로는 가난의 대물림, 경제구조의 고착화를 오히려 교육이 조장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다.

김희삼 KDI 인적자원정책연구부장은 최근 정책세미나에서 '이동성과 창의성, 구조개혁의 키워드'란 주제로 발표했다. 김 연구부장은 "우리 경제는 진정한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을 이어갈지, 일본과 이탈리아처럼 정체나 퇴보의 시간을 가질지 기로에 서 있다"면서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생산요소의 활용이 고부가가치 성장의 비결이지만 한국은 이동성의 함정과 창의성의 장벽에 부닥쳐 있다"고 우려했다.

과거 교육은 계층이동의 핵심수단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해 심지어 '교육은 계층 대물림'의 통로로 인식될 지경에 처했다는 지적이다. KDI가 통계청 사회조사를 근거로 제시한 자료에서는 계층 고착화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아진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식 시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대한 비관론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질문에 대해 가능성이 '매우 낮다'와 `비교적 낮다'고 답한 부정적인 의견의 비율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크게 늘어났다.

이런 비관론은 2006년의 경우 전 연령층에서 30% 근처거나 그 아래였으나. 2013년에는 6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그 비율이 40%를 훌쩍 넘겼고, 30대는 50%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비관론 확산의 책임이 전적으로 교육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교육 말고는 계층상승의 엔진이 거의 없는 현실을 고려하면 교육의 책임은 매우 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우선 이동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으로 ▲빚에 의존하는 좀비기업 연명보다 기회추구형 창업을 장려하는 기업 구조조정, ▲소수 과보호를 해소하고 해고 파업의 쌍방 공포를 완화하며 재훈련 전직을 촉진하는 고용 유연성 제고, ▲한정된 토지를 보다 생산적 활용이 가능한 주체가 이용하게 하는 고액 부동산 보유세 인상 및 거래세 인하, ▲‘치장술’보다 잠재력을 평가하는 대입 균형선발과 천부적 능력의 만개를 지원하는 아동기의 조기개입, ▲스펙 연공 연줄을 타파하는 능력중심 인사정책 등의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개개인 적성·진로에 맞는 교육과정 시급

특히 현재 교육시스템은 창의성을 제약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본형성에도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서둘러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부장은 기업가정신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등 미래 인재에 필요한 창의성과 인성을 함양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교수법을 혁신하기 위해 교직을 개방하고 교사에게 자율권 부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학생 개개인의 적성 및 진로에 맞는 개별화된 교육과정과 이에 적합한 대입전형 및 대학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의성와 관련해서는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진로에 맞는 개별화된 교육과정과 이에 걸맞은 대입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게 김 연구부장의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입학은 적성보다는 성적에만 의존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미래인재를 키워낼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받은 전공과 취업한 분야가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를 나타내는 '전공 불일치' 발생률에 있어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 나라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다. 달리 말하면 전공이 직업에 기여하는 정도가 꼴찌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최소한의 전문성조차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창의성을 말한다는 것이 가능한지나 모르겠다는 것이다.

교육개혁의 당위성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지만 문제는 방향이다. KDI는 관료적 통제를 최소화한 가운데 일관성 있는 교육제도 개혁을 주문한다. 이를 위해서는 초당적 교육개혁 로드맵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는 방법론도 내놨다. 정권의 향배에 따라 요동치는 교육개혁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라 할 것이다. 문제는 개혁의 시동을 어떻게 걸 것이냐에 달려 있다. 전 국민이 당사자일 정도로 교육개혁은 민감하고 첨예한 갈등을 유발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결국 교집합을 최대한 넓힌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것이 성패를 가를 열쇠가 될 것이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부장은 홍콩은 "한국과 유사한 교육 환경에서 교육개혁을 성공시킨 사례"라며 "높은 교육열과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에서 2000년 이후 일관된 초중고 교육개혁을 추진, 교육과정의 다양화로 다양한 성공 경로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소득 5만 달러에서도 교육시스템 바꿔 사회체제에 대한 불만을 해소해 경제안정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라며 교육이 갖고 있는 동력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을 했다. 김 연구부장은 지옥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헬(hell)'과 '조선'을 더해서 만든 신조어로, 말 그대로 '지옥같은 한국'이라는 뜻의 '헬조선'을 거론하며 우리 사회가 처한 어두운 현실은 교육시스템이 계층을 고착화하고, 이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비유했다.

한국 20代 상대적 박탈감, 가나 이어 최악

대학생들은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현실에서의 일자리 공급은 큰 괴리를 보이고, 부모 세대들은 자녀들의 계층적 상향 이동에 대한 비관론만 키워나가는 게 현실이다. 김 연구위원은 "청년층의 좌절과 기업 수익성 하락의 이면에는 생산요소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이동성의 저하와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생산요소의 새로운 결합 아이디어인 창의성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간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동성과 창의성을 높이는 정책을 펼쳐야 나라 경제에도 효과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의 20대가 느끼는 사회적 지위는 40대의 61% 수준으로 비교 대상 51개국 중 꼴찌에서 두 번째인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의 ‘체감 지위’가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가나뿐이었다. KDI가 국제조사전문기관인 월드밸류서베이(WVS)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486세대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자료에 따르면 한국 40대의 사회적 지위를 1로 봤을 때 20대의 상대적 지위는 0.61에 그쳤다. 중국, 대만, 홍콩 등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에 거주하는 20대들의 40대에 대한 상대적 지위가 0.7 이상인 것에 비하면 한국 젊은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의미다. 한국 70대의 40대에 대한 상대적 지위도 0.61로 51개국 평균치(0.83)보다 크게 낮았다.

또 김희삼 KDI 인적자원정책연구부장은 사교육 위주의 주입식 교육시스템 때문에 한국의 계층별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KDI와 일본 오사카대 사회경제연구소가 2012∼2013년 ‘인생의 성공요인은 행운이나 인맥이 아니라 노력이다’라는 문장에 대해 연령대별 반응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20대는 50% 정도만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에 비해 중국과 일본의 20대는 60% 안팎이 이 명제에 대해 ‘그렇다’라고 동의했다. 한국 젊은이가 노력의 가치에 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셈이다. 김 부장은 “대학입시정책을 잠재력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개편하고 기업의 인사정책을 능력 중심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좀비기업 정리, 노동개혁을"

김 연구부장은 "우리나라는 독일·싱가포르와 같은 개혁의 성공과 일본·이탈리아가 겪었던 정체와 퇴보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그는 독일과 싱가포르에 대해 "독일은 구조 개혁과 이민자 노동력 수용을 통해, 싱가포르는 개방과 경쟁을 촉진하는 경제로 선진국이면서도 경제활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KDI가 이를 위한 제안한 정책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좀비(Zombi·살아 있는 시체) 기업을 연명시키지 말고 창업을 장려하는 기업 구조조정이다. 김 연구부장은 "건설, 철강, 조선 분야 기업을 중심으로 좀비 기업이 불어나고 있다"면서 "이런 기업들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업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계기업(3년 이상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은 2009년 2698개에서 지난해에는 3295개로 불어났다.

둘째, 소수의 정규직은 과보호하고 다수의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는 열악한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깨는 것이다. 대안으로 KDI는 "소수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 장치를 해소하고, 해고와 파업에 대한 노사 쌍방의 공포심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연구부장은 앞으로 청년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일자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놨다. 그는“일자리 수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일자리 총량 고정설’에 따라 청년 인구가 줄면 일자리에 여유가 생겨 취업난을 자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독일 일본 등 한국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선진국들을 보면 청년 인구가 감소하는 대신 정년 퇴직 시기가 연장돼 청년층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자리는 보통 경제가 성장하면 늘어나는데 지금처럼 국가 성장이 더디고 개인 소득이 늘지 않으면 고용 규모는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연구부장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경제의 이동성과 창의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동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빚에 의존하는 ‘좀비 기업’의 과감한 구조조정, 고용 유연성 제고, 능력 중심 인사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 저하는 교육 개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육이 계층 대물림의 통로가 됐다고 해도 올라갈 사다리는 결국 교육이다”라며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에 따라 신뢰와 협동, 배려와 관용이 다르게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요건은 창의, 인성, 긍정으로 제시했다. 창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역량으로 탄탄한 기초 지식, 인문학적 소양, 기발하고 유연한 사고, 위기대처역량 등을 포함한다. 인성은 더불어 일하고 남과 나누는 역량으로 소통, 협동, 역지사지 능력, 배려심 등을 포괄한다. 긍정은 자기 삶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역량으로 진취적인 도전 정신, 실패 후 재기 역량, 낙관적인 인생관 등을 함축하고 있다.

이런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한국 교육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김 연구위원은 주장했다. 교과 지식을 전달하고 취업 교육을 하는 현재의 교육 내용은 핵심 역량을 개발하고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하고 주입 및 암기식 교육 방식은 문제해결 방식, 프로젝트 기반 학습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가 일관성 있는 교육 제도 개혁을 추진하되 관료적 통제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장기 계획과 일정이 명시된 교육개혁 로드맵을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쳐 초당적으로 마련해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내용을 법제화해야 한다”면서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최대한 활용하고 정부는 벤처자본가의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Usline(유스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