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악 대학’ 쉬머대에서 대학의 미래를 엿보다

▲ 쉬머대는 원전의 고전과 소크라테스식 토론이 수업의 전부다. 본질로의 접근 인간으로의 접근은 쉬머대가 추구하는 영원한 주제다. 화려한 캠퍼스 보다 무엇을 토론해야 하는지가 몇 배배 더 중요하다. <사진출처 가디언>

“학문은 없어지고 학교만 남은 대학”…본질과 토론만이 대학의 갈 길

미국 시카고 남쪽 브론즈 빌에 소재하는 ‘쉬머대학교’(Shimer University)는 참으로 작은 대학이다. 일리노이 공과대학에서 빌린 2개 층에서 운영되는 초미니 대학이다. 대학을 찾은 이날도 작은 강의실에서는 10여명의 학생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한쪽에서는 비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옹호론적인 주장을 소크라테스식 방식으로 진지한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쉬머대에는 철학 이외에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 대학들이라면 하나 둘은 쉽게 있을 스포츠 팀은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어찌 보면 필요하지 않다는 게 쉬머대만의 특징인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이런 독특한 쉬머대를 한 잡지사가 “미국내 ‘최악의 대학’(the No 1 worst college in America)”이라고 지정했다.

그러나 이 대학 교수와 학생들은 그 선정 기준에 큰 불만을 표시했지만 그들은 대학에 대한 큰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선정순위가 발표되자마자 쉬머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이들이 갖고 있는 자부심을 한 재학생의 말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캐믈러는 “쉬머대는 매우 조그맣고 보잘 것 없지만 이 대학 안에 든 우주와 철학은 세계에서 가장 큰 대학”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쉬머대가 자신에게 던지는 지적 자극은 항상 끝이 없는 지식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쉬머대 교수와 학생들은 최고, 최악의 대학 선정기준이 뭔지 모르겠다며 웃으면서 되묻는다.

쉬머대 대화법은 ‘고전’과 ‘소크라테스식 토론’

이 특이한 대학 쉬머대에는 전공이 하나 밖에 없고, 교수법도 하나 밖에 없다. 그 하나의 전공은 ‘고전’이다. ‘서양 고전’이 전공이며 교수라고 말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첩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카프카와 데리다와 니체,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와 마키아벨리와 셰익스피어 등 고전적인 문학서와 철학서에다 토론이 얹혀지면 몇 시간이고 또렷한 눈망울을 한 학생들의 진지한 수업이 진행된다.

그러나 고전 중에도 번역된 교재는 금지된다. 원전(原典)을 보는 것만이 허락된다. 원전을 보는 이유는 번역서를 보면 너무 쉽게 공부하는 것을 차단한다는 것과 원전의 깊은 의미를 알아야 제대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게 쉬머대의 교수법이다. 학생은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자유롭게 배울 수 있고, 페미니즘 이론이나 동양의 선 수행(仙修行)을 공부할 수도 있지만 모두가 고전이고 필요하다면 교수가 참관해 학생들의 자유로운 소크라테스식 토론을 이끈다,

쉬머대 홈페이지에는 ‘매우 작고’, ‘집중적이며’, ‘엄격한’, ‘오염되지 않은 정보의 무한한 아카이브’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very small’ and ‘focused’ and ‘rigorous’, and geographically close to ‘endless archives of unadulterated information’”) 쉬머대의 교육목적과 수업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또한 쉬머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출신도 참 다양하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천재, 퇴역군인, 공상과학소설 작가, 화가, 철학자 등 자신이 동·서양 철학이 필요한 사람은 쉬머대를 입학할 자격요건이 된다. 철학적 소양이나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 쉬머대를 진학하면 학교생활이 유지되지 못한다. 강의를 슬슬 듣다가 학점을 이수하고, 그러다 졸업하는 일반대학을 떠올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쉬머대는 그런 대학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공부하는 대학 아니라 인생본질 접근하는 대학

이 학교 재학 중인 카라는 노숙자 생활을 오랫동안 했다. 공부가 그렇게 싫었던 그가 이 대학을 찾은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는 느낌 하나였다. 카라가 공부를 멀리하게 한 것은 공부 자체가 아니었고, 공부에 다가서는 방법이었다. 그러던 카라에게 쉬머대의 홍보물이 눈에 띠었다. 그는 “중학교 때 쉬머대 홍보물을 접하게 됐어요. 그 순간 느낌이 참 좋았어요. 흥미를 느끼게 한 것은 내가 잘 하던, 못하던 그 강의를 듣다보면 재미가 있을 것 같았고, 그런 느낌은 처음 들었어요”라고 당시 소감을 전했다.

이후 그는 고등학교 내내 쉬머대 홍보물을 지니고 다녔고, 노숙자 생활 당시에도 쉬머대 홍보물을 소지품에 간직하고 다녔다고 했다. 카라의 모습에서 많은 학생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들어있다. 대학이라는 곳이 고등학교의 연장선상뿐인 지식공장 이상 이하도 아닌 것에 염증을 느끼거나, 취업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마지못해 졸업장을 따야하는 현실은 우리들로부터 대학이라는 기능과 역할을 저 멀리 떠나보내면서 우리 사회는 어떤 손실을 봐야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대목이다. 카라가 단순한 공부가 아닌 인생에 필요한 공부, 인생에 필요한 철학을 찾아 쉬머대를 찾아 온 것은 사회에서 대학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노숙자 카라의 인생은 누가 책임졌을 것인가. 카라는 말했다. “자신이 대학이라 곳에 원서를 낸 것은 쉬머대가 유일했다”고.

이런 쉬머대에 위기가 찾아왔다. 살아남기 위해 교수진은 봉급 삭감을 감수하는 중이고, 최악의 대학이라는 순위는 작은 대학을 더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쉬머대는 2012년 미국에서 두번째로 작은 대학이 됐다. 전성기이던 1960년대 무렵 총 학생수는 400명. 2011년 126명, 2012년은 112명으로 감소하다가 지난해 2014년에는 74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줄어드는 학생수에 대해 이 학교 교수들 분석은 다양하다. 학문의 본질을 추구하는 쉬머대의 철학을 세상이 외면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대학졸업장이 필요한 세상이 됐다는 소리다. 또 다른 분석은 쉬머대가 고집하는 수업방식이다. 토론하고, 그 토론에 참여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면 학점을 주지 않는 철저한 토론식 수업을 쫓아가기 힘들어 하기 때문에 쉬머대를 외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학, 캠퍼스 크기 중요하지 않다”

어려운 모교 소식을 들은 이 대학 동문들은 자발적인 모교홍보에 나섰다. 동문들은 쉬머대가 존재는 미국사회 진정한 철학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고, 쉬머대의 죽음은 미국사회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는 말을 한다. 하버드대, 예일대가 미국사회의 철학의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미국에서 두 번째로 작은 쉬머대가 미국사회의 철학을 꾸려가고 있다고 그들은 자부하고 있다. 대학본부 측은 내년 입학생은 증가세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참 다행스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인문학 교수인 알버트 페르난데스 교수는 미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학순위에 대해 코멘트를 했다. “학문은 없고, 학교만 남았다”는 표현을 했다. 대학은 커다란 강물같이 거친 사회를 나가기 전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흘려나가지 않도록 지탱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철학적 기반을 무장하는 곳인데 졸업생이 몇 명이고, 논문피인용수 등이 어떻고 하는 것은 학문을 보여주기 식으로 만들고 있으며, 기득권을 수치로 유지하려는 변화를 무서워하는 겁쟁이들의 쓸데없는 장난이라고 쐬기를 박았다.
 

▲ 쉬머대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순히 캠퍼스 크기나 피인용자수 논문에 있지 않고 서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라고 언급한다.


알버트 페르난데스 교수는 “세상에는 큰 물결이 밀어닥치고 있습니다. 그 물결은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철학적입니다. 이런 물결을 인간이 맞설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목적, 사회속의 나를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철학과 밀접해질 수밖에 없고, 이 길이 인간이 모두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쉬머대의 존재는 단순히 크기의 문제가 아니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문제라고 언급했다.

또한 그는 “수업을 따라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작은 방에 예닐곱 명 되는 학생과 둘러앉아 자기의견에 도전을 받는 게 쉽겠습니까? 교육의 질이 높기 때문에 졸업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보니 이를 사람들이 기피하고 있는 것입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의 대학순위에서, 상위권에 꼽힌 대학들이 제공하는 교육은 질적인 것과는 별개라는 것을 지적했다. 대학들이 정말 교육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공동체를 생각한다면, 수월하게 졸업시키는 시스템은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페르난데스 “대학 이렇게 가면 종말”

쉬머대를 최악의 대학으로 지정한 잡지사 <월간 워싱턴>는 애리조나 주립대 순위를 28위, <플레이보이>지 파티스쿨 순위에서 4위에 올랐다. 유튜브에 올라온 이 학교 졸업식 영상은 그야말로 볼만하다. 보랏빛 가운과 학사모의 무리가 거대한 풋볼 경기장을 가득 메우며 줄지어 선 가운데, 레이저 쇼와 폭죽으로 그 대미를 장식한다.

페르난데스 교수는 “그런 학교에선 좋은 학점을 받고, 학위를 따서 경제활동인구 일부로 순조롭게 편입되는 게 최대의 목표죠.”라며 “대학을 일종의 투자로 여기는 사람의 입장도 이해는 가요. 사람들은 불경기로 걱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고대며 중세 고전이나 읽고 있고 교재도 따로 없는 데다 풋볼 팀도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덧붙였다. 그것만이 대학의 전부라면, 우린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올해 열여섯 살이 되는 학생들은 대학을 가야만 하는지, 그럼 대체 왜 가야 하는지 고민한다. 2013년 미국 대학졸업자의 절반이 취직을 못 했거나 실업 상태다. 대학등록금은 1978년에 비해 1천120%나 올랐다. 미 경제 전체를 통틀어 어떤 재화나 서비스도 그 정도의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했다.

애리조나 주립대의 유튜브 동영상이 보여주듯이, 대학은 화려한 외형적인 명성을 좇느라 여념이 없다. 명성을 획득하려면 최고의 대학순위에 올라야 한다. 뉴욕 대학의 사회학자이자 교육학자인 리차드 애럼이 말한다. “대학은 최고의 설비를 갖추기 위한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풋볼 경기장이며 사치스러운 학생기숙사라든가, 최근 미주리 대학에 하나 지어진 일광욕 라운지가 갖춰진 수영장 같은 것들”이라고 말한다.

상아탑이 다다르게 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 보자. 교수는 가르치는 대신 연구에만 몰두하고, 학생은 파티에 모든 신경을 쏟고, 오직 수업이 ‘쉽기’ 때문에 높은 교수평가를 받는 그런 상황을 말이다. 모두가 행복해 한다. 학생이 수 천 수만의 학자금 빚을 지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 돈은 교육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 일광욕 라운지에 들어간다.

페르난데스 교수가 덧붙였다. “대학이 이런 추세로 가다보면, 그런 대학은 분명 종말을 맞고 말 겁니다.”라고 언급했다. 미국 ‘최악 대학’ 쉬머대 텅 빈 교실에 앉아 페르난데스 교수가 돈과 각종 시설과 명성으로 넘친다는 대학들 설명 속에는 아쉬움이 배어있다.

대학에는 미래로 난 길이 있다. 그 길은 아스팔트가 깔린 고속도로보다는 비포장도로를 더 닮았다는 생각이 쉬머대를 보면서 든 느낌이다. 대학은 어느 나라에서든 중요하다. 그 이유는 대학의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양이 바뀐 하곤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삶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이며 영원한 주제다. 대학이 안고 가야할 학문의 본질이며, 이 세상의 과제다.              

                                                         김성환 U's Line 뉴욕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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