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고현철 교수

부산대 총장 직선제 폐지 방침에 항의하며 17일 투신자살한 고현철 부산대 교수는 부산 문학 평론 분야에서 활약해 온 중견 평론가였다. 대학에서는 국문학과에서 현대시를 가르치는 평범한 교수였다.

그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성품이었지만 평론에 있어서만은 주관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의 동료와 지인들은 “평소 자기주장을 잘 펴지 않는 매우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의 스승 고 김준오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한 대표적인 내용이 부산평론이 중앙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 영역을 구축할 수 있도록 이끈 스승 평론관을 따르려 애썼다.

부산대 한 교수는 “감투를 쓰거나 자신의 주장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그가 목숨을 던지는 선택을 한 것에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이번 '투신 선택'은 고 교수의 이런 성품이 고스란히 나타난 것이라고 주변에서는 말하고 있다.

부산대 교수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 15일 학교 본부 앞 단식농성장에 고 교수가 방문해 ‘몸이 안 좋아서 함께하지 못한다. 미안하다’고 했다”며 “그는 김기섭 총장의 지지자였다. 김 총장이 진정한 대학 민주화를 이룰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 총장이 간선제로 입장을 번복하면서 괴로워하고 학생들 보기 부끄러워했다”고 전했다. 인문대 출신 총장의 행보가 실망스럽다는 얘기를 종종 해 왔다고 한다. 지난 주말에는 대학 본관 앞 단식 농성장을 직접 찾아 "건강이 좋지 않아 진작 찾아뵙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1991년 비평전문지 '오늘의 문예비평'에 평론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평론가의 길을 걸었고,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층 엄격한 비평 활동을 이어갔다. 시 비평을 중심으로 활약한 고 교수는 평론집 '탈식민주의와 생태주의 시학'에서 우리 시에 내재한 식민성을 지적하는 등 독자적 시론 정립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구체성의 비평' '현대시의 패러디와 장르이론' 등의 평론집을 남겼다.

부산대 국문과를 졸업한 고 교수는 1990년대 초반 무크지 <지평> 등에 시를 발표한 시인이기도 했다. 평론에 앞서 시로 문학을 시작한 그는 1992년 무크지 '지평' 10집에 시 6편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그 꿈을 놓지 않아 1990년대 초반 썼던 시들을 엮어 2013년에 첫번째 시집 <평사리 송사리>를 냈다.

그의 1990년대 초반 시들은 사회를 고발하고 풍자하는 내용이 많았다. 당시 한국에 새로 들어온 노래방 풍속도를 그린 ‘노래방에서’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수서택지분양사건을 그린 ‘수서는 쑤셔’ 등이 대표적이다. 고 교수는 문학과 더불어 영화에도 관심이 많아 영화 평론가로도 활약하며 부산대 영화연구소 소장을 맡기도 했다.

대학 동기인 부산지역의 한 교수는 “시와 영화평론을 많이 했는데, 2년 전 활동이 뜸하다가 얼마 전 다시 만났다. 조용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미뤄 갑자기 투신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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