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10월 31일 ‘일본 국립대학 법인화 사례에 관한 국제화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일본 국립대학 독립법인화의 역사적 배경(야마구치 카즈타카. 사이타마대학 교육학부 학부장), 일본 국립대학 독립법인화의 추진 현황(오오타니 스스무, 츠쿠바대학 인간종합과학연구과), 일본 국립대학 독립법인화의 재정적 및 교육적 성과(야오사카 오사무, 큐슈대학 교육학부 학부장) 등의 세 가지 사례가 발표됐다.

이 글에서는 그날 토론에 참여하면서 필자가 새롭게 알았거나 느꼈던 것 중에서 대학 구성원이 궁금해 할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당일 발표에 나선 3인의 일본 학자들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국 내에서는 눈치를 보느라 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터놓고 할 수 있어서 가슴이 후련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인지 그날 세미나에서는 그 동안 연구물을 통해 접했던 이야기를 넘어서는 내용에 접할 수 있었다.

짐작한대로 일본 측 발표자끼리도 자신이 속한 대학의 상황과 자신의 처지에 따라 법인화를 바라보는 관점, 법인화의 성과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서로 달랐다. 가령 소규모 대학인 사이타마대학에 근무하는 야마구치 카즈타가는 법인화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법인화에 대한 우리나라 학자들의 질문에 대해 법인화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에 따르면 굳이 법인화의 효과를 들라고 한다면 전혀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던 일부 교수들이 법인화 상황에서 약간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것 정도를 들 수 있다고 했다. 반면에 대규모 대학인 큐슈대학에 근무하는 야오사카 오사무는 역량이 있는 대학의 경우에는 법인화가 긍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는 것을 강조했다. 86개 법인화 대학 중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대학은 15개 정도이며, 법인화 이후 상위 30개 정도의 대학을 제외하고는 생존이 급급한 상황에 처하고 있다는 것에는 모두 공감했다. 이하는 단순히 그날 토론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사실 여부를 확인한 것은 아님을 미리 밝힌다.

제1기 법인화 강행(2004~2009)

일본에서 그렇게 빠른 속도로 법인화가 강행된 이유는 무엇이고,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법인화를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에서 법인화를 추진하게 된 근본 이유 중의 하나는 저출산에 따른 대학 수요 감소 때문이라고 한다. 지역적으로 대학 수요에 차이가 커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 때문에 대학 통폐합이 화두였었고, 대학들이 대학 통폐합 논의에만 치중하고 있을 때 갑자기 대학 법인화가 진행되어 일본 국립대학들이 미처 대항할 여유를 갖지 못했다.

대학들에 의한 조직적인 저항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답이 나왔다. 하나는 우수한 여건에 있는 대학들과 나머지 그렇지 않은 대학들 간에 이해관계가 달라서 힘을 모으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다른 국가기관이 독립행정법인화 됨에 따라 국립대학들이 저항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50개의 고등전문학교는 독립행정법인인 국립고등전문학교 기구 아래 놓여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대학의 자치는 교수회의 자치가 아니라 대학 본부 중심의 자치여서 교수들의 체계적인 저항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일본 대학들의 반대 시도 또한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해 결국 실패하게 됐다. 당시 공무원의 노동 운동이 격심하였고, 부패상이 자주 드러나자 구성원이 공무원인 대학에 대해서도 국민의 여론이 좋지 않았다. 일반 국민의 정서는 민간 부문만 고생할 것이 아니라 같이 고생하며 일하자는 것이었다. 그동안 일본 대학이 사회와 괴리된 채 사회의 어려움을 방관하며 살아온 결과 법인화의 폐해에 대해 사회에 알릴 수 있는 통로를 찾지 못했던 것이 결국 반대 시도가 벽에 부딪친 근본 이유가 됐다.

법인대학 총장 선출 및 운영

법인화 이후 대학 총장 선출에는 어떠한 변화가 생겼을까? 일본 대학법인은 6년 단위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들이 법인화 평가시기에 맞추어 6년 임기의 총장을 뽑고 있다. 총장은 1차에서 교수와 교직원이 참여하여 3인의 후보를 선출한다. 그러면 대학구성원과 외부인이 각각 절반으로 이루어져 있는 총장선출위원회가 후보 3인 중에서 총장을 선출한다. 총장선출위원회에서 1차 선거 순위가 바뀌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총장은 대학이사장이 되고, 총장이 이사(주요 보직자)를 임명하고 그 이사들과 함께 대학을 운영한다. 따라서 법인대학에서는 총장이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법인화 결과

86개 법인대학 중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은 15개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소규모 대학에 대한 국가 지원은 절반 이하로 줄게 될 가능성이 크다. 법인화 이후 의무적으로 매년 1%의 예산을 줄여가고 있기 때문에 교수와 직원 인력 감축을 통해 이에 적응하고 있다. 정년퇴직자 자리를 충원하지 않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데 사이타마대학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매년 3인씩을 줄여가고 있다.

또한 법인에게 매년 정원 감축 목표를 정해 주고, 법인에게 허용한 교수와 직원 정원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퇴직금 등은 법인이 책임지게 하고 있다. 그동안 법인대학에 대한 국가지원 삭감 금액은 630억 엔으로 사이타마대학 1년 예산 63억 엔과 비교할 때 10개 대학 예산이 삭감된 것과 동일하다.

법인화가 되면 법인의 재산처분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법인화가 되었다고 해서 법인이 마음대로 학교재산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국가 기여 재산이므로 매각 시에는 50%를 국가에 반납하도록 규정되었다. 따라서 대학들이 재산을 마음대로 매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학생 수를 증가시키거나 등록금을 10%이상 인상할 경우, 거기로부터 창출되는 수입 증가분만큼은 국가 지원 예산에서 삭감하고 있다. 그 결과 등록금 인상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사립대와 국립대 등록금 차이가 거의 없어진 상황이어서 법인대학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등록금으로 학생을 유치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법인화 이후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는 법인대학에 대한 문부과학성의 낙하산 인사가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법인화가 미치는 영향이 전공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주로 외부에서 돈을 많이 벌어 오기 어려운 문과계가 더욱 불리해지고 있다고 한다.

제2기 법인화 (2010~2015) : 법인대학 평가

6년마다 이루어질 법인대학 평가를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할지에 대해 아무 것도 정하지 않은 채 법인화를 진행하였다. 그래서 달리면서 대학 법인화를 설계했다는 농담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평가 결과에 따라 예산 감축 비율 계수를 달리 적용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어려운 대학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대학들은 실질적 성과가 아니라 외형적, 수량적, 객관적 기준을 맞추는 데 노력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제2기에는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대대적인 대학통폐합이 다시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 동안 학생이 없이 학과만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내부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종합대학이 생존을 위해 우선순위를 정해 구조조정을 단행할 경우 교육계통의 학부와 학과가 우선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현재 일본에서는 행정구역 변화가 논의되고 있는데 행정구역이 변화될 경우 이러한 변화가 법인대학 통폐합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일본 대학 법인화의 시사점

우리나라 대학에의 시사점

일본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법인화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들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단순히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사이의 이견뿐만 아니라 국립대학 사이의 이견도 커질 수 있다. 국립대학 전체를 어렵게 하는 법인화에 대해서는 국립대학들이 힘을 모아 반대하겠지만 우리 정부가 일본처럼 이분화 정책을 사용한다면 우리나라 국립대학들도 분열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 있다.

세계에서 사립대학 재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한국과 일본이 그나마 가지고 있는 국공립대학마저 법인화하려고 하는 것이 타당한 정책 방향인가 하는 것이다.2) 일본의 경우 앞에서 본 것처럼 법인화 이후 법인대학에 대한 국가지원이 크게 줄었다. 그리고 당초 약속과 달리 법인이 마음대로 학교재산을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학생 수를 증가시키거나 등록금을 인상하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비추어볼 때 개별 대학들이 단순히 자기 대학에 미칠 손익만을 따져 대학에 대한 국가의 부담을 더욱 줄이려고 하는 법인화 정책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표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나아가 개별 대학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 상황에서는 대학들이 목소리를 모아 대학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늘리도록 주장해야 할 것이다.

일본 대학이 사회와 괴리된 채 사회의 어려움을 방관하며 살아온 결과 법인화의 폐해에 대해 사회에 알릴 수 있는 통로를 찾지 못했던 것이 결국 반대 시도가 벽에 부딪친 근본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립대학도 사회의 어려움을 방관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법인화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회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립대 법인화 앞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교수가 아니라 교직원들이다. 법인화가 될 경우에 대비해서 직원들에게 어떠한 능력을 기르도록 연수를 시키고 준비를 시켜가야 할지에 대해 오오타니 교수의 논문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에 따르면 법인화에 잘 적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단순히 일상 업무를 처리하는 관리능력이 아니라 기획하고 이를 실행하는 경영능력이 필요하다. 제너럴리스트가 아니라 대학경영 스페셜리스트가 되도록 직원들을 준비시켜가고, 직원들도 스스로 그러한 준비를 하도록 이끌 필요가 있겠다. 대학 직원들이 이를 대비할 수 있도록 관련 전공을 개설하여 제공하는 것 또한 대학의 역할일 것이다.

우리 정부에 주는 시사점

대학을 경쟁의 장으로 내몰 때 고려해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쟁을 시키기 전에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여건을 갖추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쟁 속에서 서비스가 제공될 때 손해 볼 수요자를 배려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여건에 있는데 동일하게 시장으로 내몰 경우 결국 열악한 여건에 있는 대학들은 생존이 어려울 것이다. 남아도는 대학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사회와 국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학이 없어지거나 아니면 겨우 살아남더라도 목적을 상실한 채 생존에만 연연하게 될 경우 득과 실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클지는 따져볼 일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때문에 세계인은 자유경쟁적 시장경제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국립대학 법인화가 강자를 더욱 강하게, 약자를 더욱 약하게 하는 쪽으로 몰아간다면 업적주의 사회 도래를 집필했다가 죽기 직전 업적주의 타도를 주장한 마이클 영의 예언대로 양 쪽 간격이 너무 커져 결국 사회는 폭발하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국립대 법인화가 이러한 파국을 막을 수 있도록 양쪽의 간격을 더 넓히는 쪽이 아니라 양쪽의 간격을 좁히고, 나아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쟁과 갈등이 아니라 배려와 사랑이 자라게 하는 따스한 모습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박남기.(2008.10.31). 일본 국립대학 법인화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일본 국립대학 법인화 사례에 관한 국제세미나(57~62). 세미나자료집.

OECD(2007). Education at a Glance. Paris: OECD.

1) 이하 내용은 세미나 토론 결과와 토론 원고 “일본 국립대학 법인화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박남기, 2008)을 토대로 정리한 것임.

2) 2005년 현재 4년제 이상 사립 대학생 비율은 우리나라가 84.2%로 OECD 국가 중에서 최고이고, 일본이 75.6%로 그 다음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자본주의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미국은 27.4%에 불과하다(OECD, 2007: 296).

※ 본 기사는「대학교육」제 157호에 게재된 박남기 총장(광주교대) 원고 전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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