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강행한 대학입시 자율화 정책이 예상대로 대학의 방종과 수험생의 불이익으로 귀결되고 있다. 정부가 대학입시 정책 권한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이관하면서, 대학들이 입학전형 계획을 제때 발표하지 않거나 자의적으로 바꿔 수험생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서울 소재 34개 대학 가운데 17개 대학이 지난해 12월 대교협을 통해 발표한 전형계획을 멋대로 변경하고 8개 대학은 지금까지 구체적인 전형일정과 모집정원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나, 그로 말미암아 학교 현장이 진로진학 계획에 큰 혼란에 빠진 것은 그 적나라한 현실이다.

관련 지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별 주요 전형계획은 입학 전년도 3개월 전 대교협을 통해 발표해야 하고, 이의 수정은 학생부 반영 비율을 올리거나 학과 통폐합 등 피치 못할 사정이 발생한 경우에만 한정해 대교협의 심의를 거쳐 하도록 한 대교협 지침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부 지침도 무시하던 대학이 민간단체의 지침을 두려워할 리 만무다.

고려대·경기대 등은 아예 일부 수시전형에서 학생부 반영 비율을 내리기 위해 전형계획을 수정했다. 세종대 등은 구체적인 전형일정을 아직까지 공지하지 않고 있다. 수험생을 최대한 끌어들이기 위해 다른 경쟁 대학의 계획을 곁눈질한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수험생 수는 거의 공돈인 전형료 수입으로 직결되는데, 올해부터 수시 지원 횟수가 6회로 제한되는 까닭이다.

문제는 이런 무책임과 방종을 견제할 기구가 없는 현실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대교협에 정책 권한을 넘겼기 때문에 나설 처지가 아니라며 팔짱을 끼고 있다. 그러나 대교협은 대학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구로서 태생적 한계가 있다. 이익단체가 회원사를 규제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러다 보니 피해는 수험생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학교는 입학 진로 상담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학생들은 고액의 사교육기관 입시컨설팅으로 내몰린다.

대학입시 자율화 자체를 비난할 순 없다. 그러나 입시 시장에서 절대 강자인 수도권 주요 대학들이 약자인 수험생을 농락하는 현실을 무시해선 안 된다. 누군가는 이런 방종과 불공정을 규제해야 한다. 대교협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익단체에 그런 권한을 주면서 자율화 운운한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직접규제는 아니더라도, 대학의 공공성 및 사회적 책임 실천과 정부 지원을 연계하는 등의 간접규제 방안이라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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