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진 “중국 정부 선전 수단 활용 학문적 자유 침해” 주장

▲베이징에서 막을 내린공자학원 대회에 105개 나라와 지역의 2,000여 명의 대학 총장과 공자학원 대표들이 참석했다.2011년 중국 국가한어판공실(國家漢語辦公室)은 세계105개 나라와 지역에 350개의 공자학원과 500여개의 공자학당을 세웠다고 밝혔다.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진이 중국 정부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중국어·중국문화 교육기관인 ‘공자학원’의 퇴출을 요구하고 나섰다.

5일(현지시간) 시카고대학 학생신문 ‘더 시카고 머룬’(The Chicago Maroon)에 따르면 시카고대학 교수 108명은 “공자학원이 중국 정부의 선전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학문적 자유를 짓밟고 있다”며 폐쇄 청원 서명을 모아 교수평의회에 제출했다.

시카고대학은 지난 2009년 9월 중국 교육부 산하 ‘한판’과 계약을 맺고 지난 2010년 6월 공자학원 문을 열었으며 5년 계약 갱신을 앞두고 있다.

청원에 서명한 교수들은 시카고대학이 캠퍼스 내에 공자학원을 받아들임으로써 기존의 학문적 가치에 반하는 정치적·계몽적 프로젝트에 휘말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교내 학문적 문제를 관장하는 교수평의회가 당시 공자학원 수용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며 이번 기회에 권한을 발휘, 계약 해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역사·종교학과 브루스 링컨 교수는 “공자학원은 중국 정부의 지원금과 감독을 받는다. 때문에 표현과 신념의 자유를 제한하는 중국 정부의 통치 방식이 프로그램의 학문적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서 “중국 정부가 직접 고용한 공자학원 교수진은 정치적으로 금기시되는 문제들 즉 대만, 톈안먼(天安門) 사태,, 민주화 운동, 티베트 문제 등을 외면하도록 훈련됐다”고 말했다.

또 역사학과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중국 정부가 최근 정치적 관점을 이유로 베이징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의 유망한 교수들을 해고한 사실을 상기하면서 “대학이 다른 정권으로부터 오는 돈을 받아서는 안된다. 교수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일이다. 학문적 자유를 확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중국어 수요 증가에 부응하고 중국문화 콘텐츠를 보급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2004년부터 전 세계 대학과 중·고등학교에 공자학원을 설립하고 운영기금을 지원해왔다.

시카고 트리뷴은 “중국 정부가 기금을 지원하는 공자학원이 전 세계 대학과 중고등학교 400여 곳에 설치돼 있다”며 “중국 정부는 이를 통해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사회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시카고에는 시카고대학 이외에 월터 페이튼 대입준비고에 공자학원이 설치돼 있다. 후진타오 전(前)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011년 시카고 방문 길에 이곳에 들러 학생들과 시간을 보냈다.

트리뷴은 “자국 언어 교육기관에 자금지원을 하는 나라가 중국만은 아니다. 프랑스 정부는 ‘알리앙스 프랑스’, 독일 정부는 ‘괴테 인스티튜트’ 운영 자금을 지원한다”며 “하지만 알리앙스 프랑스와 괴테 인스티튜트가 독립기관인 반면 공자학원은 대학과 중고등학교 내에 설치된다”고 설명했다.

시카고대학 공자학원 디렉터 달리 양 교수는 청원 서명 운동을 벌이는 교수들의 우려가 지나친 것이라며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류학과 마셜 샬린스 교수는 “반(反)공산주의 정서 때문에 공자학원을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학문적 숭고함, 학문적 자유 등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딱 한치 더 깊은 U's Line News in News

어느새 한국 캠퍼스 일부가된중국 공자학원

국내 대학들은 최근 중국 교류 활성화와 대외 이미지 제고를 위해 공자 학원을 경쟁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2004년 11월 ‘서울 공자아카데미’가 설립된 이후 공자 학원은 한국외국어대와 인천대 등 전국 18곳에 들어섰다. 세계적으로는 지난 9년간 112개국 414곳(초·중등학교에 설립된 공자 학당을 포함하면 979곳)에 공자 학원이 세워졌다. 하지만 우리 교육당국은 이에 대해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류(韓流)를 계기로 세계에한국어 교육을 확대하려는 정부에 공자 학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공산 혁명(1949년)과 문화 혁명기(1966~1976년)를 거치면서 한때 공자를 구시대의 인물로 배척했던 중국 정부가 문화 침투의 첨병으로 공자를 내세운 것은 중국을 알리는 브랜드로 공자만 한 인물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더군다나 인간의 도리와 예절을 강조한 공자를 내세워 중국의 성장이 미국에 맞서는 패권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미지 외교에도 활용할 수 있다. 중국 내부적으로도 가구당 한 자녀 정책에 따라 응석받이로 길러진 중국 청소년들에게 공자의 윤리와 도덕관을 강조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센터장은 13일 “중국이 당면한 국제적 문제를 미국과 서구 중심이 아닌 중국의 전통적 가치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공자를 내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지도자들도 공자 학원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부주석 시절인 2011년 12월 태국 방문 당시 공자 학원 방문을 일정에 넣고 전 세계 언론에 이를 홍보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도 2011년 1월 미국 국빈 방문 당시 시카고의 공자 학원을 시찰한 뒤 20여명의 교사와 학생들을 중국으로 초청했다.

중국은 특히 주재국 학생들의 중국유학 경비를 지원하는 등 매년 20억 위안(약 36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전 세계의 공자 학원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20여년간 자국의빈곤 지역 초등학생들을 위해 설립한 1만 5000여곳의 희망학교에 들인 예산이 56억 위안이라는 점과 비교할 때 엄청난 규모다. 중국 정부는 2015년까지 전 세계에 500곳이 넘는 공자 학원을 세워 150만명 이상의 학생을 배출할 계획이다.

공자 학원의 개설과 관리는 중국 교육부 산하의 ‘국가한판’(國家漢辦)이 주도한다. 국가한판은 공자학원을 설립하는 학교에 20만 달러 안팎의 투자금을 지원하며 현지 학교의 요청에 따라 중국인 교사를 파견하고 중국어 교재도 제공한다. 공자 학원은 일반적으로 해당 주재국 현지인과 중국인이 각각 원장과 부원장을 맡아 공동 관리한다. 현지 수요에 따라 특화된 공자 학원도 있다. 2007년 영국에서는 ‘중의(中醫) 공자학원’을, 2011년 호주에서는 ‘관광 공자학원’이나 ‘비즈니스 공자학원’이 개설됐다.

국내에서는 공자 학원이 중국 진출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각 대학은 중국 정부가 초청하는국비 장학생들을 한 해 10명 이상 선발해 중국 유

자료 2013년 기준 <일러스트 : 서울신문> 명 대학에 파견한다. 충남대 공자아카데미 관계자

는 “이번 학기에도 학생 40명이 중국 정부의 국비 장학생으로 산둥대 등 우수 대학에 파견됐고, 2008년부터 박사와 석사, 연수 등 다양한 과정에 장학생 218명을 보냈다”고 밝혔다. 계명대 공자아카데미 관계자도 “이번 학기에 선발된 중국 정부 장학생 25명은 베이징어언대, 허베이전력대 등에서 학비와 기숙사비, 정착비, 생활비 전액을 지원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공자 학원은 중국 문화 소개보다 어학 교육에 치우쳐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 대학의 공자 학원이 개설한 가을학기 커리큘럼을 보면 33개의 강좌 가운데 태극권과 중국서예 2개를 빼고는 어학 강좌 일색이다. 서울의 한 공자학원에 등록하려다 포기했다는 김모(36·대학원생)씨는 “학비나 교재, 커리큘럼 등이 국내 사설 중국어학원과 차이가 없고 강의도 그리 체계적이라는 느낌을 못 받았다”면서 “중국 문화에 대한 강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 사실상 중국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정도가 이점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공자 학원의 국내 관계자도 “중국 정부에서 파견하는 원어민 강사들 가운데 대학을 갓 졸업한 경험 없는 학사 출신들도 많아 강의의 질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기도 한다”면서 “자격 미달 강사들이 한국 대학에 와서 강의보다 박사 학위를 따는 등 잿밥에만 관심이 많을 때도 있다”고 꼬집었다. 김애경 명지전문대 중국어과 교수는 “국내에서는 사설 중국어 교육기관이 난립해 있어 비용 투입 대비 효과가 적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중국센터장은 “국제 사회가 서구 중심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보편적 가치로 내세운 데 비해 중국은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하기 위해 공자를 내세우고 있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문화 콘텐츠를 특화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재철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세계인들이 중국에 대해 관심을 갖는 영역은 중국 문화와 언어라기보다 경제적 잠재력”이라면서 “돈만 있다고 매력이 있는 것은 아니듯 중국이 내세우는 가치가 미국이 내세우는 자유와 인권보다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점에서 공자 브랜드를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친중 인사 양성과 전 세계 인재를 중국으로 흡수하는 수단으로 공자 학원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공자 학원의 확산은 최근의 일이지만, 시작은 1987년 ‘국가대외한어교학영도소조’라는 상설 조직을 설치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여년간 치밀한 준비를 한 셈이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부 교수는 “성과가 미흡한 공자 학원이라도 중국 정부가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폐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자국 문화의 확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우리 교육당국은 공자 학원의 운영 실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미국 정부가 공자 학원이 장래 중국 문화 침투의 교두보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해 5월 자국 내 공자 학원에 근무하는 중국인 교사들에게 방문 학자용 비자가 아닌 정식 취업비자를 받아오라고 통보해 중국 정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지원금이 들어간 사업이고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서 현황 집계를 하지 않는다”면서 “관리나 감독은 각 대학에 일임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공자 학원은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 확산을 추구하는 우리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종학당은 전 세계 51개국 117곳에서 운영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지난해 10월에서야 이를 통합·관리하는 세종학당 재단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재단이 공격적으로 세종학당을 설립하면서 과도한 경쟁과 갈등이 유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부처 간 업무 중복과 부처 이기주의로 인해 볼썽사나운 영역 다툼도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욱 호서대 한국어문화학부 교수는 “중국과 우리의 국력 차이를 감안할 때 한국어가 중국어처럼 해외에서 생활어, 무역어, 제2 외국어로서의 지위를 얻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대통령 해외 방문 일정에 세종학당 방문을 넣고 적극적인 현지화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출처 :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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