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선발방식으로 개인교습이나 전문학원 강습을 받기도

[U's Line 박병수 기자] 주요 대기업들이 이른바 ‘스펙’보다 직무능력을 보고 채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이 직무능력이란 게 뭔지, 취업준비생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SK, LG, 현대차 등 대기업들은 입사 지원 서류에서 외국어 점수나 수상 경력을 적는 이른바 스펙란을 아예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있다.

취업 준비생들은 이 같은 현상이 반갑지 않다. '탈 스펙'을 오히려 특별한 스펙을 요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끼나 창의성, 스토리가 강조되면서 기본 스펙에다 준비해야 할 항목이 더 늘어난 꼴이 됐다는 불만이다.

SK그룹은 지난 9일부터 진행한 대졸 신입사원 채용 원서접수에서 지원자들에게 이른바 '스펙성 항목'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수상경력, 동아리경험, 해외 경험 등을 쓰지 않도록 입사지원서를 간소하게 바꿨다. 외국어 성적이나 자격증은 필요한 직무에 한해서만 선택적으로 입력하도록 했다. 심지어 지원자 사진도 붙이지 않도록 했다. 사진도 붙이지 않도록 하는 것은 외모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구현서 SK그룹 채용담당은 “해당 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어떤 능력이 쌓였는지 해당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입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아직은 직무능력의 무엇인지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모든 기업이 같은 방식을 도입한 것도 아니어서 취업준비생들에겐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서울소재 H대학 김철주 취업준비생은 “학점 채우고 토익 준비하고 여러 가지 경력 쌓고 이런 거에 익숙해져 있다가 갑자기 수치화된 경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니 이것 또한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며 “스펙이 됐든, 직무능력이 됐든 어려운 취업관문을 뚫기는 매 한가지 아니겠냐”며 푸념을 했다.

LG그룹은 지난해에 이어 지원자 기재 항목에서 어학, 자격증, 사진 등의 항목을 없앴고, 2일부터 원서접수에 들어간 현대차 역시 올해부터 동아리와 봉사활동 기재란 등을 없앴다.

정동희 LG유플러스 채용담당은 “백화점이나 마트나 이런 현장에서 실제로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을 쓰는 게 영업직원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단순히 경험을 나열하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역량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면서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능력이 직무와 관련이 많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게 채용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수도권 A대학 4학년 정원식 씨(26)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스펙' 위주로 보는 것에서 이제 직무능력이 하나 더 추가된 거라고 대부분 생각하는 것 같다”며 “예전에는 학점을 높힌다거나 토익 점수를 올린다던가 등 객관적인 기준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 범위가 좀 넓어진 것 같아서 부담이 더 가중되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S대학 4학년 김순규 씨(25)는 “예전 스펙중심이 어학, 봉사활동 등을 봤다면 이제는 실제 지원업무와 유관한 경험을 얼마나 했냐는 것을 보겠다는 의미로 취업준비생들은 이해하고 있다”며 “업무현장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지원자를 선발하겠다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지만 오히려 어학이나 봉사활동 등 시간을 투자하면 가능했던 예전 스펙중심보다 경험할 기회가 훨씬 적기 때문에 더 어렵게 됐다”고 걱정했다. 그는 신입사원을 뽑는 것인지, 경력직을 뽑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떨궜다.

일부 구직자들은 기존의 방식을 벗어난 채용방식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개인교습이나 전문학원 강습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송민수(27)씨는 "기업들이 면접에서 스토리나 개성을 중요시하면서 주변에 면접 과외를 받는 친구들도 있다"며 "기존에 취업 관련 온라인 카페나 스터디 모임에서 족보를 공유하거나 이슈를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전형을 넘어갈 수 없고 차별화도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형이 세분화되고 독특해질수록 답답한 구직자들이 외부에 의존하는 경향은 더욱 심하다. 대학 교육과정에서 활발한 토론이나 개인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해 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취업을 앞두고 이 같은 역량을 발휘해야 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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