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입'기준 만 보는 계량화 문제 ···학생 주체 빠진 허점 투성이

지난 9월 발표된 2011 중앙일보 대학평가를 본 본교 구성원들은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국내 대학 순위 5위라는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표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자. 지난 2006년 고려대는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의 세계대학평가에서 아시아 사립대학 최초로 100위권에 진입했다. 당시 본교의 분위기는 경쟁대학을 누르고 이러한 ‘쾌거’를 이뤄냈다 사실에 축제 분위기였던 것이다. 이는 비단 고려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렇게 언론사에 의한 대학평가 결과에 따라 국내의 대학들은 일희일비(一喜一悲)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평가란 무엇인가

한국에서의 대학평가는 본격적으로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대학평가를 시행했으나 90년대 들어서 교육부, 언론사 등 평가의 주체가 다변화 되었다. 특히 요즘에는 언론사에 의해 시행되는 대학평가가 큰 영향력을 가지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의 언론사가 대학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대학평가의 순기능

대학평가를 시행하는 언론사들은 대학을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는 것이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먼저 학생과 학부모들이 대학평가를 통해 각 대학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경우 중앙일보교육개발연구소 사이트(www.jedi.re.kr)에 접속하여 회원가입을 하기만 해도 각 대학 별로 세부 평가항목에 대한 결과를 볼 수 있다. 이처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대학평가 자료들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들은 대학과 학과를 선택할 때 큰 도움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대학평가가 시행되기 이전에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대부분 시중의 ‘풍설’에만 의존하여 지원 대학을 정해왔다. 지금처럼 수치적으로 객관화된 대학 평가 자료를 얻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순위 경쟁을 형성하여 기존 대학들의 변화와 발전을 유도한다는 것 또한 대학평가를 시행하는 이유 중 하나다. 언론사들은 대학을 평가하여 그 결과를 통해 대학들의 순위를 정한다. 이렇게 공개된 대학 간의 서열은 앞서 살펴본 교육소비자들의 대학 선택, 대학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투자 등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는 곧 우수한 신입생의 확보, 대학 재정 확충 등 대학의 발전과 직결된 사안이다. 때문에 각 대학들은 높은 순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이러한 대학평가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한 변화를 꾀하게 된다. 이처럼 대학평가 시행하는 언론사 측은 평가항목에 부합하기 위한 대학의 변화가 곧 대학의 전반적인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학평가 시행, 그에 따른 변화

실제로도 대학평가로 인해 대학들이 스스로 변화하는 사례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평가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대학들은 자체적으로 부족한 부분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경희대는 연간 SCI(논문인용색인)급 논문 생산량을 5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늘렸다. 이에 따라 지난해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평가 중 학계 평가 순위 89위에서 올해 48위로 급상승했다. 또한 전북대는 2007년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43위를 차지했었으나 지난해 평가에서 22위로 도약했다. 정교수 승진 요건의 강화, 교수 퇴출 제도의 시행, 세계적 학술지 논문 게재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등 연구 분야의 발전을 북돋아준 결과다.

고려대 The HOANS 이가영․ 오동희 기자 dlrkdud73@

언론사의 대학평가, 이대로 괜찮은가

언론사에 의한 대학평가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해당 대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대학 간 경쟁을 유발하여 발전을 장려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학평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대학 평가에 사용되는 기준에 있다. 언론사가 부적절한 기준을 가지고 대학을 평가하려하고 어쩔 수 없이 대학들도 이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키면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학평가의 허점을 The HOANS가 취재했다.

국내에서 언론사가 시행하는 대학평가는 1994년 중앙일보가 처음 시작했다. 그 후 2008년부터는 조선일보가 영국 리서치 전문 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와 공동으로 아시아 대학평가를 시작했고, 2010년부터는 경향신문이 대학지속가능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이들 중 중앙일보 대학평가가 가장 영향력 있는 대학평가로 여겨진다. 하지만 각 대학평가마다 세부적인 평가항목과 방식의 구체적 이름만 다를 뿐 현실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바는 전반적으로 유사하다. 연구 부문의 성과, 외국인 교수 비율이나 영어강의 비율로 측정하는 국제화 지수, 졸업생들의 평판 등이 그렇다.

영어 강의를 늘리면 ‘국제화’된 대학?

이번 2011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교육여건 110점, 국제화 60점, 교수 연구 110점, 평판 및 사회진출 70점 총 4개 부문 32개 지표를 통해 이루어졌다. 특히 이번에는 교수 당 학생 수(10점)보다도 외국인 교수(15점)나 영어 강의(15점)에 더 많은 점수 비중을 두는 평가 기준이 사용됐다. ‘국제화 지수’에 무게를 둔 평가기준이다. 따라서 대학들은 이러한 국제화 지수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영어 강의를 앞 다투어 개설하고 수강을 의무화하는가 하면 교수 임용을 영어 강의 가능자에 한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 기준에 맞춰 대학들이 변화를 꾀한다고 해도 진정으로 발전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오히려 대학을 '속 빈 국제화'로 만들 뿐이다. 대학 수업이 영어로 이루어지는 것과 ‘국제 교류의 증진을 통해 대학의 수준을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수준으로 향상’한다는 국제화의 개념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사들은 영어 강의를 국제화의 지표로 계산하여 대학들에게 영어 강의를 늘릴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각에서는 외국 학생들이 한국 대학을 찾게 하여 교류를 증진시키려면 많은 영어 강의를 개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외국 유학생들을 한국 대학에 유치시키기 위해서는 영어 강의 확대보다도 대학 자체의 학문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다. 오히려 영어 강의 확대와 수강 의무화는 여러 문제점을 야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 대학의 강의가 모국어인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진행될 경우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고 이에 따라 강의의 질 또한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 학생들이 영어 강의를 수강할 경우 수강 과목에 대한 소양보다 학생의 영어 능력이 성적을 좌우한다는 문제점 역시 발생한다. 이에 따라 현실적으로 사교육을 통한 영어 학습이 학생들의 영어 능력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한국에서는 형평성 문제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영어 강의에만 초점을 맞춘 국제화 지수 평가는 많은 부작용을 야기하게 된다.

사회적 평판 기준, 객관적인가

대학평가의 주요 평가 기준인 평판, 사회인지도 부문에는 ‘신입사원으로 뽑고 싶은 대학’, ‘업무에 필요한 교육이 제대로 돼 있는 대학’, ‘향후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대학’, ‘입학 추천하고 싶은 대학’, ‘기부하고 싶은 대학’ 등이 주요 지표로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항목들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채용하고 싶은 대학이라든지, 기부하고 싶은 대학 등 한 대학에 대한 평가자의 선호를 보여주는 이러한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다. 즉 공정한 수치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업무에 필요한 교육이 제대로 돼 있는 대학’이나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대학’과 같은 지표는 기업에서 선호하는 학과나 계열이 발달되어있는 대학들에게만 유리하다. 이것은 다양한 대학의 특성과 발전목표, 계열·학과별 차이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동일한 척도를 강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현행 대학평가는 그 공정성에 있어서도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대학평가로 인한 언론사의 권력화

대학평가는 이처럼 기준 자체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언론사들이 대학평가를 시행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미국에서 최초로 대학 평가가 시작된 것은 지난 1983년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U.S News and World Report)’라는 잡지사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대학을 수치화하여 평가한 결과를 보도하며 인지도를 키웠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 고등학교 학생을 위한 대학 진학 가이드북을 펴내 수입을 올렸다. 그리고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미국에서도 많은 언론사들이 후발 주자로 대학평가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언론사들에 의한 대학평가가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되자 이들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력은 곧 언론사의 광고수입의 증가와 직결되었다. 순전히 대학의 올바른 평가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하나의 사업이 되어 대학평가가 언론사들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다. 중앙일보가 처음 대학평가를 시행하였을 때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대학 측에서는 ‘일개 언론사가 대학을 평가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라고까지 폄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중앙일보의 대학평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목한다. 또한 중앙일보는 자사의 대학평가를 통해 새로운 부가 서비스를 개발해 점차 이를 사업의 영역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렇게 대학 평가에서 언론이 우위를 점하게 되자 대학들은 무력하게 언론의 기준에 끌려가게 되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대학들은 언론사가 정한 대학평가 기준에 따라 학교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각 대학마다 추구하던 고유의 특성들은 무시되고 언론이 정한 평가 기준에 따라 학내 정책이 정해지고 있다.

고유성 잃어가는 대학 교육

게다가 그 평가 결과에 따라서 대학들은 그 구성원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 모 교수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평가 결과는 학과 지원금 규모와 교수들의 승진·정년보장에 연계되기 때문에 교수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일반인의 상상 이상이다”라고 답했다. 또한 모 사립대의 교수협의회장도 “방학이면 교수들은 숙제하듯 평가 기준치에 맞추려 할당된 논문 량을 채워내느라 머리를 싸맨다. 또 입학처 관계자들은 중국과 몽골 등을 돌아다니며 현지 학생 유치 경쟁에 나서는 촌극이 빚어진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권력화 현상에 쉽게 저항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대학의 구성원들은 이러한 언론사 평가에 많은 불만을 토로하지만 그 자체를 거부하지는 못한다. 이미 언론사의 대학평가 자체가 한 사회 내에 존재하는 많은 주체들의 사고와 행동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대학평가의 부작용과 기준의 부당함을 알고 있지만 이미 평가가 가지고 있는 사회 속 영향력이 너무 크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학 구성원이 대학평가의 주체가 돼야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점들을 없애고 대학평가의 순기능을 살릴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먼저 평가 과정에서 대학 구성원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대학을 외부 시점에서만 평가할 경우 교수진, 교육 시설, 교육 재정과 같이 ‘투입’을 중심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투입중심의 평가 기준은 교수와 대학생의 소통과 같은 ‘과정’을 도외시하게 만든다.

이는 모두 대학의 중심이 되어야할 학생들의 관점에서 보는 대학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 교육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해당 대학에서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대학평가의 목적인 ‘고등교육의 발전’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 평가에 있어서 대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지표를 개발해내야 한다.

덧붙여 평가 과정에 앞서 평가의 기준 자체는 것에서부터 대학의 구성원들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현재의 대학평가가 획일적으로 요구하는 기준에서 벗어나 각 대학이 가지는 특성이 공정하게 평가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각 대학의 특성은 무시된 채 모두 동일한 모습으로 변화되길 요구 받을 것이고 이로 인해 부작용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대학의 수준은 그 사회의 수준을 결정한다. 이렇게 학문 연구를 통해 사회의 발전 기여하는 대학에는 다양성이 필수적이다. 대학마다 개성을 가지고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정진해나가는 것이 사회 전체의 효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상업적 목적의 대학 평가는 이러한 다양성의 가치를 무시한 채 나아가 대학의 존립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대학 구성원들이 주체가 되지 않는 대학 평가는 지성의 공간인 대학을 획일화시킬 뿐이다. 대학 평가에 대한 학교 구성원들의 참여가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고려대 The HOANS 이가영․김화윤․조아란 기자

dlrkdud73@

<고려대'The HOANS' 기사를 전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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