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보드· LMS 네트웍으로 U-Campus 구축

반값 등록금이 나라의 화두다. 만만치 않은 주제다. 정치권에서는 정치적 논리로, 나라에서는 대학에 감사원을 보내 으름장을 논다. 모두 다 수수께끼 같은 반값등록금 문제를 푸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이상한 나라의 해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현장다운 발상이다. 그 해법을 기획시리즈로 제시한다. <편집자>

울산과기대, “홍콩과기대 게 섯거라”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 제2공학관 실무전산(Practical IT) 강의실. 나노생명화학공학부 수업의 열기가 뜨겁다. 교수의 열정적인 강의와 학생들의 진지한 수업자세에서 울산과학기술대 조무제 총장이 기자에게 던진 의미심장한 말이 떠올랐다. “홍콩과기대가 개교 당시 포스텍을 롤모델로 벤치마킹해 갔다. 몇 년 만에 홍콩과기대가 포스텍을 훌쩍 추월해버렸다. 봐라. 이제 울산과기대가 홍콩과기대를 다시 추월할 것이다”는 목표 상대가 정해진 정확한 출사표였다.

이런 말을 자신만만하게 던지는 조 총장에게 ‘무엇인가 믿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그게 무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 총장이 내심 품고 있었던 복안은 오프라인 교육과 온라인 교육의 매칭에 있었다. 그렇다. 대학도 경영이다. 대학 경영의 최종 목적은 교육과 연구의 질적 제고에 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투자가 잇따른다. 그러나 투자재원은 제한적이다. 가장 많은 투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교육과 연구의 질적 제고를 담당하는 교수와 시간강사들의 학사비용이다.

따라서 학사비용을 줄일 수만 있다면, 아니 동결만이라도 가능다면 교육의 질적 제고와 더불어 최근 한국사회의 화두인 반값 등록금 실현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조 총장의 확신이다.

울산과학기술대의 온라인 교육의 매칭 현장을 좀 더 들여다보자. 나노생명화학공학부 남덕우 교수는 70여 분간의 2학기 첫 강의를 마치면서 학생들에게 독특한 주문을 했다. 다음 주 두 번째 수업부터 온라인으로 예습공부를 해 오는 게 남 교수의 주요한 숙제다.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인 ‘마이 IT 랩(My IT Lab)’에 들어가 배울 내용을 미리 공부해 연습문제까지 풀어오라는 것이었다. 강의실을 나온 학생들은 바로 실습실로 이동했다. 여기에 ‘에이아이(AI)’라고 불리는 조교가 ‘마이 IT 랩'실 이용 방법을 학생들의 질문과 기본 매뉴얼을 통해 상세히 알려주기 시작했다.

울산과기대는 지난 2009년 개교 때부터 모든 강의를 ‘블랙보드’와 ‘100% 영어 강의’를 IT 기반의 학습관리시스템을 이용해 시간강사 없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의 자료를 미리 블랙보드에 올려놓고 학생들로 하여금 선행학습을 하게 한 후 강의시간에는 토론수업 위주로 진행한다.

또한 대학교 홈페이지 사이버 학습(E-Education) 전용 프로그램인 LMS(Learnning Management System)에 접속해 개설과목의 단계별 과정을 모두 통과해야 학점이 부여된다. 이런 식으로 대부분의 신입생이 영어 중급과 고급을 모두 통과해 4학점을 따낸다. 전체 500명 가운데 400명가량이 1학년을 마칠 때쯤 되면 영어 중급이나 수학 등 이미 한 과목 이상을 통과하고 있다.

IT 교육기반 ‘과목 리디자인’이 핵심

이를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접목시키기 위해 대학 측은 모든 캠퍼스에 와이파이 망을 설치하고 지난해 초부터 전체 교수와 학생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해서 언제 어디서든지 블랙보드에 접속해 선행학습을 할 수 있게 했다. 교수들과 토론 및 질문까지도 가능하게 해 실질적인 유비쿼터스 캠퍼스 구축을 해나가고 있다.

과목에 따라서는 온라인 선행 학습을 한 후 일주일에 두 번 하던 교수의 대면 수업을 한 번으로 줄이는 블렌디드 모델을 적용하여 교육의 질 향상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달성했다.

이 방법은 울산과기대의 100% 영어 강의 조기 정착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됐다. 최근 KAIST 사태로 대학의 영어 강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울산과기대에서는 학생들이 오히려 대학의 100% 영어 강의 정책을 후퇴시키지 말라고 대학에 건의하는 것을 보면 학생들이 영어 강의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울산과기대 온라인 교육의 발상은 ‘과목 리디자인(redesign·재설계)’ 에있다. IT기반으로 수업과 강의가 가능하도록 수업방식의 골조를 확실히바꿨다. 실무전산 과목은 이 대학이 2년 전 시작한 시범 리디자인 첫 과목이다. 이어 수학·화학·물리 등 12개 기초과목과 7개 인문학 과목을 재설계했다.

‘재설계’는 정보기술(IT)을 교육에 적용하는 작업이다. 수업의 일부를 인터넷 강의 등으로 대체하는 것뿐 아니라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의 구조를 뜯어고친 것이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기초적인 질문은 교수나 석·박사급 조교가 아니라 학생지도를 전담하는 AI라는 조교가 대답해 준다.

이후 학생은 강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관련 교재를 읽고 그와 관련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교수는 학생 개개인이 그 교재를 언제, 얼마나 읽고 문제를 풀었는지, 몇 개나 틀렸는지를 수업 전에 온라인상에서 점검한다. 실제 강의실에선 단순 사실 전달을 넘어선 심화학습을 한다. ‘교수는 말하고, 학생은 듣는’ 전통적 수업 방식과 다르다. 미리 공부를 많이 하고 가서 이해가 빠르기 때문에 수업의 절대시간이 줄어든다.

수업방식의 리디자인으로 ‘실무전산’의 경우 일주일에 두 번이던 강의시간을 한 번으로 줄였다. 100명 넘게 듣는 대형 강의지만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재수강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는 게 대학 관계자의 설명이다. 컴퓨터공학부 한 수강생은 “전산 실무에 대해 아무 것도몰랐지만 예습과 강의·실습을 반복하면서 한 학기 만에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방법으로 학생의 창의성을 개발하고 학습의 질을 향상시킨다. 이 대학 공부벌레들은 영어·수학(미적분학)과 기초 화학·물리·생물 등 기초과목에 대한 교실수업을 아예 받지 않는다.

IT 교육으로 학사비용 절감 등 1석3조 효과

울산과기대는 이런 수업 방식을 대부분 교과목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교수는 강의 부담이 줄고 ▲학생은 질 높은 강의를 듣고 ▲학교는 학사비용을 줄이는 1석3조의 효과를 기대한다.

임진혁(58· 경영정보학) 학술정보처장은 “기존 틀로는 늘어나는 인건비 등으로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을 피할 도리가 없다. IT를 활용해 강의 등 대학 운영을 효율적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과기대는 급기야 학생과 교수·직원 전원에게 애플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나눠줬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해 동영상 강의나 관련 교재를 공부할 수 있게 한다는 것. 교수·교직원·학생 간의 소통도 편해진다. 아이폰에서 구동되는 학습관리시스템(LMS) ‘블랙보드’를 통하면 된다. 미국 대학의 60% 이상이 쓴다는 블랙보드는 학생들의 예습 여부를 교수가 이동 중에도 체크할 수 있다. 또 강의 자료를 수시로 올려놓거나 내려 받기에 편하다. 예일·MIT·스탠퍼드 등 유명 대학의 강의를 무료로 보는 애플 ‘아이튠즈U’ 콘텐트도 활용할 수 있다.

울산과기대는 이를 위해 KT와 FMC(유·무선통합 통신망) 구축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캠퍼스 안에서 무료로 인터넷 접속과 음성통화를 하는 유비쿼터스 캠퍼스가 실현되는 것이다.

IMD, 강사 비용 절반만 줄여도 2500억원 절감효과

나라가 ‘반값 등록금’ 논쟁에 휩싸인 가운데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최근 발표한 ‘2011년 국가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교육에 대한 수요 만족도는 조사 대상 59개국 중 39위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 순위가 29위인 것을 감안하면 대학교육의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에 한참 못 미치는 셈이다.

한 국가의 경쟁력은 그 나라의 대학 경쟁력에 비례하고 대학교육의 질은 대학의 재정 투자에 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세계 대학들은 교육의 질 향상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이루기 위한 파괴적 교육혁신모델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각국마다 정부와 기업에서도 이를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

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지난해 2월 새 연방기구로 교육선진화연구기관(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Education)을 설립하고 미래형 교육혁신모델 개발을 특별 지시했다. 빌게이츠 재단은 2010년 10월 ‘다음 세대 학습 도전’이라는 연구 과제를 공모하는 등 파괴적 교육혁신모델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획기적으로 진화, 발전하고 있는 정보기술(IT) 관련 기술을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교수만이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기존 교육의 전제에서 탈피해 컴퓨터 기반의 학생 주도적 맞춤식 교육모델을 개발하여 교육의 질 향상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미국 MIT대, 콜럼비아대 등은 이 같은 방법을 통해 30% 이상의 비용 절감과 교육의 질 향상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가 다수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대학교육의 시간강사 의존율이 매우 높다.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시간강사 인건비는 줄잡아 연간 5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컴퓨터 기반의 새로운 교육모델 개발로 시간강사 의존도를 절반만 줄여도 연간 약 2500억 원의 등록금 인하 효과를 낼 수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다. 반값 등록금 문제 해법은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교육현장다운 발상에서 출발해야 한다. 진지하게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교과부의 대학 재정지원 사업의 지표를 온라인 교육 시스템 기반을 항목에 추가하는 것도 제안한다.

이번 대학의 반값 등록금 문제 제기를 대한민국 교육모델을 기존 교육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파격적 혁신을 통한 미래형 모델로 바꾸는 계기가 된다면 지금 분출하고 있는 막대한 사회적 에너지는 나름 가치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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