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탓' 가면 쓴 대학상업화

※ 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 없음

[U's Line 기획취재팀] 대학 측과 오랜 기간 동안 존폐를 두고 씨름했던 세종대 생활협동조합(생협)이 26일 결국 문을 닫게 됐다. 세종대 생협이 도서관 사물함 보증금 반환을 끝으로 14년간 이어온 생협 사업의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대학생협 관계자는 “세종대 생협의 폐쇄는 한국 대학내 유통의 상업화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며, 아카데미 프라이스로 보호받고 자체적인 복리를 구성하는 대학생협의 종식을 고하는 서곡”이라고 의미를 달았다.

세종대 생협은 지난 2009년 대학 측으로부터 교내 생협 매장을 퇴거하라는 요구받았다. 대학 측이 생협매장 자리에 영리매장을 들여놓고 임대료를 받으려 했다. 이에 소송으로 맞섰으나 법원은 대학 측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지만 세종대 생협은 학생들에게 생협의 가치를 알려나가 2012년 말 대학 측과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계속해서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 측이 새롭게 제시한 약정서 합의에 의해 생협이 운영하던 매장 일부를 대학 측에 넘겼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로 인해 생협 수익구조가 악화됐고 이 악화된 수익구조가 빌미가 돼 폐쇄에 이르게 됐다.

세종대 생협은 “앞으로 기숙사와 새날관(연구동)이 완공되면 생협과 무관한 여러 상업시설들이 입점할 예정이다. 생협의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돼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1990년 조선대 생협을 시작으로 전국 33개 대학에서 생협이 설립돼 운영 중인데, 사업을 중단한 건 세종대 생협이 처음이다.

▲2012년 대학 측 생협 폐쇄에 맞서 세종대 생협 직원들이 생협의 존재가치를 알리는 홍보를 대학 구성원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국 대학의 생협은 25주년을 맞았지만 조합원 가입률은 2004년 29.4%에서 2013년 17.3%로 떨어졌고 2004년 학생 조합원 가입률은 33.8%를 기록했으나 2013년에는 16.6%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배경을 대학생협 관계자들은 취업난으로 인해 학생들의 조합원 참여가 저조하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대학 당국의 복지 인식이 미비해 지원이 부족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사립대학의 경우 입점비 수익이 큰 외부업체를 선호해 대학 생협을 반기지 않는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대학내 상업화’는 등록금 5년째 동결로 인한 학교재정 곤란함에 따른 학교발전기금을받을 수 있다는 명분으로 포장돼 합리화 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 대학의 생협에서 취급하는 업종의 단순함도 수익을 악화시키고 발전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대학생협연합회 자료를 보면, 일본의 대학 생협은 서적이나 교재, 문구, 식품 공동구매부터 식당 운영, 테마여행, 학생 공제 등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대학협동조합은 주거비가 부담스러운 학생들에게 주택을 싼값에 임대하는 사업까지 한다. 외부 상업시설들의 ‘장기 침투’로 생존마저 위태로운 국내 사정과는 딴판이다.

이러한 일은 서울대에서도 벌어졌다. 지난 5일 서울대의 새 중앙도서관 ‘관정관’ 준공식이 열렸다. 서울대생 8명이 중앙도서관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준공식에는 성낙인 총장과 중앙도서관 신축기금 600억원을 기부한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의 이종환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학생들은 “관정관에 들어서는 상업시설 수익금은 관정교육재단에서 가져간다. 기부채납을 빙자한 임대업”이라고 소리 질렀다.

이 관정관 지하에는 롯데리아, 파리바게뜨, 할리스커피, 편의점 씨유(CU) 등 그동안 서울대에서 볼 수 없었던 상업시설이 대거 입점했다. 대학 내 여론은 분분하다.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기부를 받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의견과 “대학의 상업화”라며 반대하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생협 수익의 일부는 장학금으로 다시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학생식당 역시 기업체가 운영하는 식당보다 저렴한 편이다. 학생식당에 1700원짜리 메뉴가 있는 서울대 생협은 매점이나 학교 기념품 판매, 임대수입 등을 통해 식당 운영 적자를 메운다.대학 생협 한 관계자는“이익만 따지는 기업과 달리 비영리인 대학 생협은 위생과 품질을 우선하면서도 저렴한 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 생협 한 관계자는 “기존 편의시설 이용자의 20%가 새로 입점하는 관정관 내 상업시설로 이동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25억~27억 원의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며 “수익의 악순환은 결국 대학 생협의 폐쇄로 이어지게 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대학은 수익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고려대나 이화여대, 서울대처럼 새 건물을 기부 받는 대가로 20~30년 짜리 장기 임대권을 내주는 학교들이 늘고 있다. 대학은 건물을 받고 장기 임대권을 기업에게 주면서 대학은 비싼 가격 구매를 학생에게 전가하는 상황이다. 조만간 세종대 생협의 전철을 밟을 대학 생협들이 적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학 생협은 이른바 ‘자본의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 학생들의 복지와 생활 지원을 해왔다. 생협을 해체하는 것은 단순히 생협 해체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학교육의 공공적 목적과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대학 다수의 구성원인 학생을 보호한다는 취지가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이나 일본 대학보다 더 심한 시장의 성격이 더 강한 한국 대학은 시장이다”는 K대의 교환교수로 와 있는 한 교수의 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대학생활협동조합연합회(이하 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대학생협을 운영하는 대학은 총 33개다. 수도권에서는 △경희대 △국민대 △동국대 △서울대 △서울과기대 △세종대 △숭실대 △연세대 △이화여대 △인천대 △인하대 △한국방송통신대 △한국외대, 지역권에서는 △강원대 △동아대 △상지대 △목원대 △충남대 △한국기술교육대 △충북대 △경북대 △금오공대 △안동대 △경상대 △부산대 △창원대 △부경대 △한국해양대 △군산대 △전북대 △전남대 △조선대 △제주대가 대학생협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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