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0년간 4만3000명 의대증원에도 반발 없었다"...의대증원명분 파업 '한국뿐'
늘 이긴 한국 의료계 파업일탈, 공권력 보다 의사면허 국가관리 제도화 모색해야
4대 과기원 5년새 1105명 이탈, 우수인재 블랙홀된 의대 미래 성장동력 단절

▲서울대 이공계열이 의료계열보다 낮은 점수의 합격선을 나타냈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해도 서울대 물리학과가 의대보다 앞선 합격점수대를 보였다.  
▲서울대 이공계열이 의료계열보다 낮은 점수의 합격선을 나타냈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해도 서울대 물리학과가 의대보다 앞선 합격점수대를 보였다.  

■기획시리즈 - 의대증원, 해법을 모색한다 ②   

개원의사 연봉 3억 원 vs ‘나로호’ 연구원 9600만 원

[U's Line 유스라인 박병수 기자] '의사'라는 직업은 한국사회에서만큼은 안정적인 성공의 보증수표로 오랫동안 인식돼 왔다. 그러다보니 의대는 뛰어난 이공계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괴물 블랙홀로 비정상 발육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KAIST를 포함한 4대 과학기술원과 포스텍을 다니다 그만둔 우수인재는 5년간 1105명에 달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영재고·과학고 입시응시 인원, 4대 과학기술원과 포스텍 등록을 취소하는 인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서 반수나 재수하는 인원을 합쳐 보면 한 해 전국 의대 입학 정원(3058)과 대략 비슷하다는 게 입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과학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국가가 학비를 지원하는 과학기술원과 영재·과학고 이공계 인재들까지 의대를 선택한 지 오래다

이 같은 의대 쏠림현상에 대해 이공대 교수들은 이렇게 우수인재들이 의대진학 우선시가 10~15년간 더 지속된다면 한국은 굶지나 않으면 다행이다라고 큰 걱정을 한다. 의대는 통상적으로 6년 과정을 졸업하고, 국가시험에 응시해 의사면허증을 취득하면 일정수준 이상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보상이 따라온다. 고교성적이 최상위권인 우수학생들이 평생직업으로 높은 소득이 보장되는 의대로만 몰려가자 과학기술 및 첨단산업 발전을 책임질 인력풀이 마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비정상적 '의대 쏠림' 잡아야 국가미래 잡는다"

김정호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로 몰리면서 진로선택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세계 각국이 이공계, 과학자양성에 올인하는 상황에서 유독 한국만이 이탈돼 있다고 걱정했다. 비정상적인 '의대 쏠림'을 바로잡는 것은 단순히 진로선택의 고른 균형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위기, 국가적 경영차원에서 고민돼야 할 중차대하고, 막중한 과제를 바로 잡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 교수가 걱정하는 도를 넘은 '의대열풍'은 설문조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의대진학 결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유질문에 응답자 절반에 가까운 48.4%(119)높은 소득수준이라고 답변했다. ‘입시성적에 맞춰서’(42.6%), ‘아프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서’(37.0%), ‘높은 사회적 지위’(27.2%) 순으로 답변이 이어졌다

최근 의대증원 정부방침으로 파업을 단행하는 한국 의료계의 뒷모습에는 의대 열풍이라는 괴상스런 현상의 구조화가 출발선이다. 2024학년도 대입 정시합격자 분석결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대기업 취업이 보장되는 ‘SKY 대학의 첨단학과에서도 합격생이 무더기로 등록을 포기했다. 비수도권 대학의 의·약학계열에 중복 합격한 뒤 의대나 약대를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망의 대기업 취업이지만 의·약학계열 앞에선 맥을 못 춘다. '군대에선 계급이 깡패'라는 남자세계의 관용구가 있다. '입시계에선 의대가 깡패'나 마찬가지다.  

의대증원속 연세, 고려대 첨단학과 미등록률 급증

올해 정시 일반전형 합격자 등록현황 분석결과 졸업 후 삼성전자 취업이 보장되는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경우 합격자 25명 중 23(92%)이 등록을 포기해 미등록률이 지난해(70%)보다 22%포인트 늘었다. 역시 삼성전자 계약학과인 고려대 차세대통신학과는 합격자 미등록률이 지난해 16.7%에서 올해 무려 70%로 급증했다. 현대차 계약학과인 고려대 스마트모빌리티학부는 미등록률이 지난해 36.4%에서 올해 65%2배 가량 증가했다. SK하이닉스 계약학과인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도 미등록률이 지난해 18.2%에서 올해 50%로 약 3배가 됐다. 미등록 합격자 대부분은 중복합격한 의·약학계열로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의대 입학정원 논란 와중에도 의대에 대한 수험생 선호도가 지난해보다 훨씬 높아진 결과다.

▲의대진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는 높은 소득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래픽 :동아일보)
▲의대진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는 높은 소득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래픽 :동아일보)

지나친 의대열풍은 비좁은 의대진학’, ‘고된 전공의로 이어지면서 당연한 보상논리가 달라붙고, 이 방향이 수정되는 의대증원 정부방침이 나오면 밥그릇이라도 빼앗기는 것처럼 의대, 전공의, 의협 등은 파업전선에 일렬로 도열을 한다. 의대증원으로 파업결의를 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일본·독일·프랑스·미국 등이 의료 수요증가로 최근 의대증원에 나섰다. 인구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의료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데다 코로나19 이후 건강권에 관심이 커지면서 각국 정부는 의료 인력확충 정책에 속속 나서고 있다. 선진국들이 코로나19 후속방안으로 의료인력을 20~50% 늘리기 위해 의대증원 방안을 발표했다. 그렇다해서 이들 국가중 의사가 집단행동에 나선 나라는 없다. 특히, 일본은 10년간 의대정원을 확대해 의사 43000여 명 늘렸지만 이 과정에서 의사 반대는 없었다.

의사 - KAIST 박사 같은 학업시간, 연봉 5배 차이

의대열풍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의대진학 결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유질문에 응답자 절반에 가까운 48.4%(119)높은 소득수준이라고 답한 것은 과학자 혹은 대기업에 입사하더라도 의사수입에 비교하면 형편없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25개 정부 출연연구기관(출연연) 초임 평균연봉은 2021년 기준 4260만원이다. 특히,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빅3 연구소로 불리며 이공계 박사출신들이라면 한 번쯤은 입사를 기대하는 곳이다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쏘아 올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정규직 연구원 1인당 평균 보수는 9595만9000원(2021년·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공시)에 불과하다. 박사급 연구원 초봉은 5000만 원대다. 3에 입사한 KAIST박사출신 기준 초임연봉 5200~5300만 원 정도, 성과급은 연구개발혁신법에 따라 평균 17%로 잡혀 있다.

▲의대진학을 위해서는 3수, 4수, 5수도 불사한다. 인간생명을 살리는 직업적 의식보다 부귀영화를 구가하려는 목적으로 의대를 고집하는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그래픽 : 머니투데이) 
▲의대진학을 위해서는 3수, 4수, 5수도 불사한다. 인간생명을 살리는 직업적 의식보다 부귀영화를 구가하려는 목적으로 의대를 고집하는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그래픽 : 머니투데이) 

반면, 의사 평균연봉(2020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23070만원으로 집계됐다. 개원의로 좁히면 2억9428원까지 치솟는다. KAIST박사가 학업에 쏟은 시간은 비슷하지만 연봉수준은 5배 이상 벌어진다. 이공계 연구기관 초임연봉이 이처럼 낮은 까닭은 정부가 연구원 업무를 일반 공공기관 사무직과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이공계 비전이 가늠되는 R&D 예산삭감도 '의대 쏠림'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내년도 국가 R&D예산은 259000억원으로 편성돼 올해 311000억원보다 52000억원(16.6%) 삭감됐다. 이공계 인재수혈에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반대로 인재유출을 부추기는 개념 없는 정책을 남발했다. 52000억원 R&D예산이 깎인 것 자체가 1991년 이후 처음인 데다 액수 또한 매우 크다. 정부출연연구소 1200명이 연구를 중단하고 다른 살길을 찾아야 하는 규모다. 낮은 처우에 더해 국가적 지원정책마저 불투명한 상황에서 최·상위권 학생들 마음의 발길이 의대로 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인도 비롯 각국 과학기술 패권 놓고 무한경쟁 돌입 

잠시 인도의 공과대학 육성정책을 보고가면 한국 정부의 개념없는 정책은 더욱 도드라진다. 인도공과대학(IIT·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은 한 해 졸업생 16000명 가운데 3000여 명은 정보기술(IT)분야로 진출한다. 인도에서 연간 배출되는 전체 IT관련 대학 인력 10만 명의 약 3% 비중이다. 한국의 인재들은 모두 의대를 중심으로 한 메디컬계열에 진학하려 이공계 기피가 가속되고 있지만 인도를 비롯한 각국은 과학기술 패권을 두고 무한경쟁에 돌입한 지 오래다.

인도의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에서 착륙선 비크람이 분리돼 인류최초로 달 남극에 성공적으로 착륙했다. 우주개발 강국인 러시아, 일본도 실패한 터라 인도의 성공은 세계우주산업계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찬드라얀 3호의 개발·발사에 든 비용은 총 7500만달러(900억원)에 불과했다. 2013년 개봉한 조지 클루니 주연의 우주 재난영화 '그래비티'의 제작비 1억달러보다도 적게 들었다. 미국 정부가 2021년 달착륙선 예산으로 항공우주국(NASA)에 배정한 예산 85000만달러(11228억원)의 약 11분의 1의 비용이다.  

바로 인도 달탐사선의 '초 가성비' 비결은 우수한 인도공과대(IIT)의 과학인재들이 주인공이다.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 IBM 대표 아르빈드 크리슈나 등 실리콘밸리 거대기업이자 세계적인 IT기업의 여러 수장을 배출한 세계적인 공대다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을 보유한 국가만이 글로벌 선도국가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의대 광풍'에 발목이 잡혀 쩔쩔매고 있다.

의대증원을 해결하는 방법은 강력한 법적처벌이 결코 아니다. 10년간 의대정원을 확대해 의사 43000여 명 늘렸지만 이 과정에서 의사들의 반대가 전혀 없었던 일본처럼 되기 위해서는 이공계, 과학계, 의료계가 비등한 예우를 받도록 하는 제도와 사회문화가 중요하다. ‘의사들의 예우를 다른 직업들과 형평에 맞추기 위해 강압적으로 끌어내리자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 ‘의사라는 국가로부터 면허를 받는 공적인 직업이 가져야 할 공공성에 방점을 두는 성격의 육성제도가 절실하다. 그 방법이 국가의 먹거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이공계와 과학계에 우수인재를 공수하는 국가적 사업도 활성화 시키는 일거양득의 정책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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