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초짜’ 디지털뉴스 제작팀장의 절박한 생존기

유튜브 바다에서 생존수영 9개월

▲조승원 MBC 보도국 기자
▲조승원 MBC 보도국 기자

아홉 달 전까지 나는 디지털 문맹이었다. 일단 대세라는 유튜브부터 거의 보지 않았.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아서였다. 트위터 역시 유령 계정이었다. 트윗 올린 적도 없고 리트윗도 한 적 없다. 물론 페이스북은 썼다.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기자가 책을 내고 나니, 홍보할 수단이 페이스북 밖에 없어서였다. 이런 내가 덜컥 디지털 뉴스제작팀장이라는 보직을 맡았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보직이동이었지만, 나에겐 천지가 개벽하고 세상이 달라진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날로그 세상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강제이주한 첫 날, 나는 눈앞이 캄캄하고 헛기침이 나오고 코가 막혔다.

그렇게 아홉 달이 흘렀다. 이제는 매일매일 광활한 유튜브바다에서 튜브없이 헤엄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강물에서도 유유자적 떠다닌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너른 대지 역시 샅샅이 헤집고 다닌다. 반면 TV뉴스는 거의 보지 않게 됐다. 종이신문도 아홉 달 동안 한두 번 봤을까 말까다. 온종일 유튜브 세상에서 노는 게 이 되다 보니, “유튜브라는 게 말이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아는 게 병이라고 했던가? 유튜브에 적응하면 할수록 고민은 예전보다 더 커졌다. 특히 유튜브에서 뉴스를 한다는 게 대체 뭔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 아마 나처럼 저널리즘이라는 팻말을 들고 유튜브 세상을 활보하고 있는 기자라면 누구나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유튜브앱 사용시간은 카카오톡, 네이버에 비해 절대적이다. 
▲유튜브앱 사용시간은 카카오톡, 네이버에 비해 절대적이다. 

시청률보다 빡쎈 조회수노예생활

숫자는 명확하다. 숫자만큼 확실한 건 없다. 22TV 뉴스 세상에 살면서 뼈저리게 느낀 사실이다. 시청률 3.94.1은 시청자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아니다. 하지만 방송쟁이들한테는 그렇지 않다. 3%대 시청률과 4%대 시청률은 엄연히 다르니까. 언론학자들이 아무리 시청률 연연하지 말라고 얘기해도 다 소용없다. 아마 그런 얘기 하는 분들 자신도 알 것이다. 현재로선 TV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선호를 평가하는 명확한 기준이 소수점 한자리까지 계산돼 나타나는 시청률뿐이라는 것을.

유튜브 세상은 다를 줄 알았다. 뭔가 다른 평가 기준이 있을 줄 알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착각이었다. TV뉴스 세상에 시청률이 있다면 유튜브 세상에는 조회수라는 괴물이 버티고 있다. 조회수괴물은 시청률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TV뉴스 경우엔 프로그램 만들고 나서, 다음날 성적(시청률표) 받아보고 반성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유튜브는 다르다. 영상을 업로드하는 순간부터 반응이 실시간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계속 조회수 추이를 살필 수 밖에 없다. 영상 올리고 10, 30, 1시간, 2시간이런 식으로 시시각각 조회수를 보게 된다. 퇴근후 술 마시다가도 휴대폰을 열게 되고, 잠자기 직전에 다시 보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확인한다.

"이제 저널리스트는 없다"

조회수 노예가 되고 나면 아이템 선정기준도 달라진다. 아무리 의미 있고 중요한 기사라도 조회수 안 나올 거 같으면 바로 이다. 물론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유튜브 세상에 막 들어왔을 때만 해도 나름 꼿꼿한 저널리스트를 자처했다. 그땐 중요하고 의미 있다면 조회수는 상관없다라고 제법 큰 소리로 떠들고 다녔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뒤, 금방 깨달았다.

이 바닥에서 이렇게 하다가는 엠빅(MBIC 디지털MBC뉴스)은 문 닫겠구나.”
22년간 TV뉴스 세상에서 생각해온 저널리즘과 뉴스 밸류. 그런 건 쓰레기통에 처박아야 했다. 이 바닥에서는 전혀 중요치 않았다. ‘의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 일단 유튜브 이용자들이 봐야 할 거 아닌가몇 명 보지도 않을 영상을 만들기 위해 온종일 팀원들 달달 볶아가며 고생시킬 수는 없었다. ‘꼿꼿한 저널리스트에서 조회수 장사꾼으로 변신하기까지 불과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조회수 우선주의로 태세전환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 뒤부터 눈에띠는 건 오로지 자극적인 기사뿐이었다. 기사 내용뿐만이 아니다

어떻게 섬네일(Thumbnail)을 만들어야 더 눈에 띨까? 어떻게 제목을 뽑아야 더 호기심을 자극할까? 어떻게 태그를 달아야 검색에 많이 걸릴까? 온종일 이런 것만 고민하면서 살게 됐다.

여기까지 적다 보니 푸념이 지나친 거 같아서 소심하게 변명이라도 해보려고 한다. 일단 TV 뉴스 프로그램과 비교해 보자. 뉴스데스크에서는 시청률 잘 뽑아낼 만한 자극적인 아이템과 시청률에선 손해를 보겠지만 의미가 있는 아이템을 적절히 배합해 내보낸다. 반면 유튜브 세상에선 이게 불가능하다. 영상클립 하나하나가 제각각 등판해 홀로 싸워야 한다. 뉴스데스크가 단체전이라면 엠빅뉴스는 온전히 개인전인 셈이다.

단순무식한 알고리즘?

유튜브 저널리즘의 또 다른 문제는 뉴스영상 제작자들이 알고리즘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모두 알고 있듯이, 유튜브는 개별 가입자 한 명 한 명에게 영상을 노출하는 자체 알고리즘을 갖고 있다. 혹자는 유튜브 AI가 기가 막히게 자신이 좋아할 만한 영상을 쏙쏙 골라서 추천해준다면서 감탄하던데, 내가 볼 땐 상당히 문제가 많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단순무식하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몇 달 전 전자담배의 폐해를 다룬 뉴스데스크 기사가 있었다.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이 기사에 대한 온라인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아무래도 요즘 전자담배 피우는 흡연자가 늘고 있어서 관심도가 큰 것 같았다. ‘이건 유튜브에서도 좀 먹히겠구나하고 싶어 다음 날 바로 엠빅뉴스 아이템으로 재제작했다. 그렇다면 결과는? 한마디로 조회수 폭망이었다. “아니, 왜 이렇게 흥미진진한 아이템을 이렇게 안 봤지?”

그 뒤로도 몇 번 똑같은 경험을 했다. 담배를 소재로 한 아이템은 완성도를 떠나, 만드는 족족 성적(조회수)이 나빴다. 왜 그런지 너무나 궁금해서 유튜브 측에 아예 대놓고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담배, 흡연과 관련된 아이템은 AI가 선제적으로 걸러내 버리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얘기인즉슨, 흡연을 권장하지 않기 위해 담배라는 단어가 제목이나 기사에 걸리면 일차적으로 선별해 덜 추천되도록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토록 단순한알고리즘 덕분에 흡연의 폐해를 지적하는, 지극히 건전한영상마저도 유튜브 세상에선 불량 아이템으로 낙인찍혀 유통이 잘 안 된다. 꼭 담배만이 아니다. 유튜브 세상에서 몇 달 놀다 보니, 이젠 유튜브 AI가 싫어하는 소재를 제법 많이 알게 됐다. 당연히 조회수를 중요하게 따지는 엠빅뉴스에서는 더 이상 이런 아이템은 만들지 않는다. 왜냐고? 만들어봐야 많은 사람이 볼 수조차 없으니까 헛고생할 필요가 없어서다.

유튜브에 저널리즘은 있는가?’

유튜브용 뉴스를 만들어온 지난 9개월은 고뇌의 연속이었다. 내가 기자인지, ‘영상클립 장사꾼인지 정체성의 혼란까지 생겨 자책도 많았다. 그래도 그나마 요즘은 쪽팔림이 좀 덜하다. 하루에 하나 정도는 조회수 포기하고 아이템을 만들고 있어서다. 영상클립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소비하는 구독자들로서는 전혀 알 수 없겠지만, 엠빅뉴스 전체적으로는 [조회수가 많이 나올만한 아이템 1+ 조회수가 적당히 나올 아이템 1+ 조회수가 안 나오겠지만 의미 있는 아이템 1]를 올리는 이른바 ‘1+1+1’ 시스템을 정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튜브에 저널리즘은 있는가?’ 솔직히 아직은 이 질문에 답할 처지가 아니다. 정답이 뭔지 유튜브 초짜인 나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뉴스저널리즘이란 깃발을 내걸고 유튜브 바다를 항해하는 모든 기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찾아야 할지 모른다. 하루하루 유튜브 세상에서 버티고 있는 이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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