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 더 인디고 편집장
이용석 더 인디고 편집장

지난 618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사를 실었다. 도널드 트리플렛(Donald Triplett),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대체 이 사람이 어떤 업적을 남겼기에 뉴욕타임스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기사까지 게재했을까?

그는 1943년 세계 최초로 자폐장애 진단을 위해 이름 대신 ‘Case 1’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1933년 포레스트에서 태어난 도널드는 지역 은행을 소유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가족이나 사회와 동떨어진 세상에 사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또래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어머니의 자상한 미소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숫자를 부여하고는 쉼표나 세미콜론을 넣을 수 있다”, “먹구름을 통해 빛난다따위의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요리용 프라이팬처럼 둥근 물체를 회전시키는 특정한 행동에 열광했고, 자신이 관심을 갖는 무언가가 중단되면 화를 내곤 했다. 그러면서도 87×23의 답을 내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었고, 노래를 한 번만 들어도 완벽한 음높이로 따라 불렀으며, 층층이 쌓인 벽돌의 개수를 단번에 맞췄다고도 한다.

또래와 달리 정서적 교감도 못하고 특정한 행동만을 반복하는 이상한 아이를 부모는 한 국영 아동시설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신체적 장애나 심리적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아동들은 영구적으로 시설에 수용하는 시절이었다. 1년 후 그의 부모는 치료를 위해 레오 캐너라는 의사에게 데려갔고, 캐너 박사는 1943정서적 접촉의 자폐성 장애라는 논문에 11명의 아동에 대한 사례 연구를 설명하면서 지금까지 심리학 연감에 보고된 것과는 현저하게 그리고 독특하게 다른증상의 첫 번째 사례로 도널드의 특성인 강박적인 반복 습관’, ‘뛰어난 암기력’, 다른 사람들과 일상적 방식으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장애를 기록했다. 이 논문은 도널드의 어머니인 비몬 트리플렛이 캐너 박사에게 아들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작성한 방대한 메모와 함께 오늘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진단하는 기초가 되었다.

최근 SBS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일면식도 없는 또래 여성을 찾아가 잔혹하게 살해한 정유정에게 자폐적 성향이 있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은 신경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를 등장시켜 정유정이 학창시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슬리퍼를 주로 신으며 독특한 말투와 걸음걸이따위를 지적하며 자폐적인 성향이 엿보인다고 단정했다. 이 전문가들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의사소통과 감각처리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정유정의 행동 특성에 빗대면서 자폐성 장애를 범죄적 성향과 단숨에 연결 지은 셈이다. 이 과도한 일반화가 자폐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우리 사회로부터 분리해 시설이나 정신병원에 가두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최소한의 도덕적 자기검열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 복무했는지도 모른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찾아가서 죽인 정유정은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들과 뭔가 다른 범죄적 성향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정유정을 선량한 다수와 구별 짓고 이를 통해 우리 모두 안전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정유정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는 과학적 판정을 받았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타인을 해치는 행위를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없다는 이 막막함은 매일 매 순간 스치듯 지나치는 익명의 누군가도 또 다른 정유정일 수 있다는 두려움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더구나 사이코패스도 아닌 사람의 범죄 성향은 이내 두 전문가를 통해 자폐성 장애가 범죄 성향으로 규정된다. 어설프고 민망한 전문가들의 입초사며, 섣부르기 짝이 없는 우리나라 방송의 극성스러운 조바심이 빚은 참사였다.

이후 SBS그것이 알고 싶다제작진은 사과문을 자사 홈페이지에 올렸다. 하지만 자폐 성향이 범죄로 이어진다거나 정유정에게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오해를 줄 수도 있어, ‘자폐 성향 자체와 범죄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다는 해명이 되레 자폐장애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방송을 강행했다는 것이냐는 자폐당사자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세계 최초 자폐장애인으로 진단받았던 트리플렛은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세상과 분리되어 평생 시설에 수용되어 갇혀 지내지는 않았을까?

아니다. 그는 1958년 대학을 졸업하고 사교 클럽에도 가입했으며 프랑스어와 수학을 공부했고 운전을 배워 케딜락을 타고 다녔다. 은행원으로 활동했고 혼자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도 했다. 유복한 부모와 마을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도널드는 행운아였다. 도널드의 삶은 2010<더 애틀랜틱>의 기자 존 돈반과 카렌 저커가 첫 자폐 아동(Autism’s Fisrt Child)’란 제목의 기사를 발행하고 나서야 세상에 새롭게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두 기자가 도널드의 행복한 삶에 가족의 부와 사회적 지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도널드가 살았던 마을 사람들과 그의 생애를 기록한 언론의 태도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마을에 느닷없이 등장한 이상하고 희귀한 소년을 마을 사람들은 포용하기로 암묵적으로 결정했고 실천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자폐장애를 진단받았던 도널드 트리플렛의 일대기를 전하는 뉴욕타임스 기사 어디에도 자폐장애 특성 중에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상해를 가할 수도 있다고 예단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저 반복행동과 지나친 집착 행동이 희귀했다고 표현했을 뿐이다. 한 사회의 품격은 이렇듯 장애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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