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침공’ 현상, 엉터리 통합 부작용…“난이도 조절 억지 주장”
“문·이과 사이의 장벽 실체 아닌 관념, 허상”…복합학문 등장, 구분 어려워
'황우석 사태' 문·이과 구분, 대표적 부작용

'문과침공'은 문이과 구분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문이과 통합이 아니라 문이과 구분 폐지를 시급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문과침공'은 문이과 구분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문이과 통합이 아니라 문이과 구분 폐지를 시급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탐구영역 선택과목 부작용, 수학보다 더 심각

[U's Line 유스라인 박병수 기자]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님, 지난해부터 급작스럽게 들리는 '문과 침공(?)'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이과 교차지원을 허용한 2022학년통합수능에 이과 수험생들이 문과에 대거 지원해 중·상위권 대학의 주로 경상계열을 마치 점령이나 한 듯이 모조리 차지하면서 침공을 당한 문과계열로부터 나온 비통(悲痛)의 단어 입니다.

시행한 지 불과 1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침공의 상처는 큽니다. 지난해 서울대 정시 일반전형 최초합격자의 44%가 이과 수험생의 교차지원자로 확인됐습니다. ·이과 교차지원이 가능한 계열 최초합격자 486명 가운데 이과생임을 증명하는 수학과목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학생이 44.4%, 216명에 달했습니다. 특히 심리학과 89%, 자유전공학부는 무려 95%가 문·이과 교차지원자가 차지했습니다. ‘문과 침공이라는 비통의 신조어가 나올 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대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정시 모의지원자중 서울소재 주요대학 중 문과로 교차지원을 계획하는 수험생이 5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교차지원 비율이 가장 높은 대학으로는 서강대로 무려 77%나 됐습니다. 다음으로 서울시립대 75%, 한양대 74%, 연세대 58%, 중앙대 57%, 경희대 56%, 고려대 51%로 집계됐습니다. 최근 종로학원이 자연계 지망생 1263명에게 설문조사에서도 59%가 교차지원을 검토중이며 73.7%는 전공학과 상관없이 대학 간판을 우선시 해 결정할 것이라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전자공학도 꿈꾸다 회계사 해볼까?

·이과 교차지원을 크게 허용한 취지는 융·복합 시대에 문·이과 장벽을 허물고 적성에 따라 공부하고 평가한다는 통합수능 도입과 더불어 시행됐습니다. 그러나 취지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이과 수험생들의 '대학간판 에스컬레이터'로만 작동된다는 폐해가 여기저기서 보고되고 있습니다. 문과와 이과가 치루는 수학(미적분·기하)의 표준점수가 다르게 조정되면서 약 3점 이상 이과 수험생이 높은 점수를 받는 걸로 나와 있습니다. 선택과목 응시자의 공통과목 평균점수가 높을수록 조정점수를 높게 받는 구조에 기인한다는 게 입시교사들의 설명입니다.

·상위권 공대합격을 목표로 공부했는데 수능점수를 받아보니 상위권대학 문과 경상계열도 합격이 가능하다는 귀띔에 전자공학도를 꿈꾸던 수험생은 알고 있는 문과 쪽 진로상식을 총동원해 떠올립니다. 안정적인 은행원이나 회계사시험 도전이라는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하지도, 꿈도 꾸지 않았던 미래진로를 정시지원을 코앞에 두고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이러려고 시행한 문·이과 교차지원이 아닌데 말입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집행기구가 아닌 의결기구 성격이라 국가교육위원회가 문ㆍ이과 구분폐지 시발점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지, 확실히 알고 있지는 못 하지만 국가교육위원회는 중장기 교육제도와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10년 단위의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하고, 그간 교육부에서 수행한 교육과정 개발고시업무는 국가교육위원회로 이관돼 국교위는 국가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에 관한 사항을 정하는 역할이 주요역할로 주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업무관장 범위에 문ㆍ이과 구분폐지가 국가교육위원회의 업무에 포함되는 것이라면 적극 나서주기를 바라며, 위원회 첫 사업을 문이과 폐지로    

평소 문ㆍ이과 구분에 폐해를 주장해오면서 새로운 교육과정보다 문ㆍ이과 구분폐지가 훨씬 더 시급하다는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미적분기하통계와 확률의 상대적 난이도를 조절해서 수학능력의 우열을 가릴 수 있다는 주장은 억지일 뿐이다. 사실 탐구영역에서 선택과목에 따른 부작용은 훨씬 더 심각하다. 형식적 형평성만 강조하는 짝퉁 수능이 입시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선택과목은 학교현장에서 퇴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과학영역의 심화과목이 그렇다. 학생들이 어렵다고 인식하는 물리화학을 선택하는 학생도 찾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질타했습니다.

·이과 교차지원의 문제는 수학이나 선택과목의 조정점수값 때문도, 이과 수험생들의 대학간판 지향 때문도, 제도시행의 준비미흡 때문도 아닙니다. ·이과를 구분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일본 내부 문제를 아무런 고민 없이 수용한 우리나라 문교부의 교육철학 부재, 제가 지적된 이후에도 그대로 답습해 온 교육부의 매너리즘은 남·북한 분단 역사 보다 더 긴 문·이과 분단을 끌고 오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문·이과로 구분해 학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 뿐입니다.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일제잔재 중 하나입니다.

·북한 분단 보다 더 오래 된 문·이과 분단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이식된 문·이과 교육과정에 대해 해방이후 77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되짚어볼 기회가 없었다는 것에 안타까와 하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학생들의 문·이과 첫 갈림길을 목도하는 고등학교 교사들은 이 문제야말로 100% 어른들의 잘못이고, 잘못을 알았으면 서둘러 바로 잡으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양분된 체제에 익숙해진 듯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이과 통합이 아니라 문·이과 구분 폐지가 정답이라고 힘줘 말합니다. 실제로 전국 중·고교 교사 55%폐지’, 32%유지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과 교차지원 등장은 문과, 이과 분리에 따른 목발로 보입니다. 문과, 이과 분리로 절룩이는 공백은 목발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고육지책으로 만들어진 문·이과 교차지원에 응시하는 이과생들이 문제일 수 없습니다. 실제로 법조인이 되고 싶어 문과로 가고 싶었던 학생도 있을 것이고, 뒤늦게 항해사가 되고자 이과로 지원 한 학생도 있을 것입니다. 고등학교 문·이과 선택은 평생 족쇄로 남아 직업에서도 절반의 선택을 강요 받습니다. 교육적 차원에서도, 인권적인 면에서도 말이 되질 않습니다. 누구는 그럽니다. ·이과 교차지원으로 대학의 융합교육이 강화될 것이라는 취지로 시행됐다면 그런 부질 없는 기대는 갖다 치우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정부차원으로 문·이과 구분이 정당한 것인지, 존재가치를 따져볼 때가 됐다고 제기합니다. 더는 늦출 수 없다고 제기합니다.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화학물리학 박사학위를, 프린스턴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아 1977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대 화학과 교수로, 2001년부터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김영식 서울대 동양사학과 명예교수는 문·이과 전공을 섭렵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문ㆍ이과의 피해에 직접적이었던 김영식 교수가 문ㆍ이과 구분은 더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골자를 하나씩 들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이과, 제도적 장벽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

김 교수는 문과와 이과 사이의 장벽은 각각에 속하는 분야들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머릿속에 관념상으로 존재하거나 사회속에 제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며 문과와 이과 사이에서 우리가 느끼는 뚜렷한 차이라는 것은 양쪽 분야들의 내용과 성격에 실재하는 것이기보다는 이런 관념적, 제도적 장벽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라고 제기합니다.

이어 김 교수는 구체적 분야들을 문과와 이과로 나누는 실제 관행을 살펴보면 임의성이 곧 드러나는데, 이 관행에 따르면 사람들은 우선 이과에 자연과학 분야를 비롯해서 수학, 공학, 의학, 약학 등을 포함시키고 나머지 대부분의 분야는 자동적으로 문과에 배열된다. 이에 따라 문과는 역사학, 철학, 문학, 어학 등의 인문학 분야에서부터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들, 그리고 신학, 경영학, 법학, 행정학, 교육학, 언론학 등 전문분야들과 음악, 미술 등의 예술 분야까지를 모두 망라하게 되지만 이렇게 둘로 나눠진 분야 사이에 구분해야 하는 절대성이나 뚜렷한 경계가 있지 않음은 쉽게 알 수 있다.”고 간파합니다.

이덕환 명예교수는 적성과 진로를 핑계로 학생을 구분하는 문과와 이과는 통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절박하게 필요한 것은 사실 문이과 통합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수용했던 불합리한 문이과 구분의 폐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과 구분 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엉터리 통합은 오히려 부작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무작정 칸막이부터 없애겠다는 무늬만의 통합은 무의미하다. 올해 입시에서 되살아난 교차지원이 무늬만의 통합 때문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부작용이라고 지적합니다.

김 명예교수도 예를 들어 철학이 문과라는 이유로 경영학이나 행정학과는 같은 쪽에 분류되면서 이과인 수학과는 철저히 분리되고, 경제학(그것도 수리경제학)이 역사학이나 문학과는 가깝게 취급되면서 물리학과는 거리를 둬야 하며, 경영학이 문과라는 이유에서 공학과 서로 관련이 없는 분야로 분리되는 뚜렷한 이유는 이 분야들의 학문적 성격 자체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철학과 수학의 거리가 철학과 경영학의 거리보다 멀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냐고 반문합니다. 가장 어려운 난제는 우리들에게 워낙 익숙한 것이었던 까닭에 문·이과 구분에 대해 의문을 던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합니다.

복합학문 분야 사실상 문·이과 구분 불가능

김 교수가 우려하는 바는 앞으로 입니다. “19세기 후반 현대의 학문분야들과 그 체계가 형성되던 과정에서 그 같은 편리한 구분이 가능할 것으로 믿어지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학문분야들 사이의 경계는 다시금 매우 흐려졌고 위와 같은 구분이 전혀 가능하지 않도록 학문의 대상이 지극히 복잡해졌다.”고 언급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와 문화가 복잡한 성격을 띠게 되면서 점점 많이 나타나는 복합학문 분야들의 경우입니다. 예컨대 환경학, 정보학 등의 새로운 분야들 뿐만 아니라 농학, 건축학, 도시계획학, 체육학 등 어느 정도 오래된 분야들도 그같은 문제를 드러내는 분야들로서, 이 분야들 각각을 문과와 이과 어느 한 쪽에 소속시킨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또 억지로 구분을 해서 어느 한 쪽에 소속시키게 되면 이들 분야 자체의 성격에 큰 제약이 가해지게 되는 부작용이 따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학문 분야들이 다루는 대상이 '자연', '사회', '정신' 등으로 뚜렷이 나누어질 수 있으리라는 것이 문·이과 구분의 밑에 깔린 전제이고 그것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오늘날의 사회와 학문을 두고서는 엄청난 착각입니다.

문과-이과의 구분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선가 이미 한 쪽에 소속시키려는 관행이 자리잡은 분야들이 구분으로 야기되는 제약은 점점 크게 드러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영학-공학 관심, 공학-경영학 지식 모두 차단

경영학을 문과로 분류하면서 경영학도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공학에 대한 관심과 공학도에게 요구되는 경영학 지식이 모두 차단됐습니다. 현대의 기업에서 신기술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공학적 소양이 없는 경영학 전공자, 시장의 변화를 이해하는 경영학적 안목이 부족한 공학 전공자의 자리가 점점 위축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최근 교육과정 개편을 놓고 다양한 논의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보다 생산적인 것이 되려면 일단 획일적인 문과-이과 구분을 허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명예교수도 과학을 좋아하지 않는 문과생들에게도 최소한의 과학 상식을 가르쳐야 한다. 과학자 양성 교육에서나 필요한 정확한 과학 개념의 교육은 상당 부분 포기해도 된다.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교양인에게는 복잡한 과학 개념보다 과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과의 구분에 상관없이 21세기를 살아가야 하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인간과 자연의 정체를 이해하고,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필요한 기술의 수용성 강화에 필요한 과학의 의미를 충분히 학습해야만 한다. 교양과 상식으로의 과학을 가르치기 위한 새로운 교수학습 방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며 어쭙잖은 전문가 양성에나 어울리는 현재 교육내용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출처 : 여론속의 여론)
(출처 : 여론속의 여론)

오늘날의 우리 학문사회가 지극히 인위적이고 임의적인 문과-이과의 구분에 이렇게 철저하게 얽매여 있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실체도 없고, 역사적으로도 근거가 없는 임의적 구분이 순전히 관습에 의해 지속되면서 심각한 문제를 빚고 있는 이 같은 상황을 타파하고 제대로 된 균형 잡힌 고교 교육을 시행해야 할 당위성이 너무나 명백하다고 하겠습니다. 학문을 분류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기 때문입니다.

20년 전 이공계 기피보다 더 심각

이 명예교수는 대학에서의 문·이과 구분 폐해도 심각하다. 인문사회의 학술연구는 인간의 가치와 사회현상을 논리적으로 탐구하는 것이고, 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은 인간의 정체성까지 변화시킨다는 인문·사회계의 인식은 시대착오적이다. 우주와 자연과 생명에 대한 현대 과학적 성과를 외면하고 여전히 음양오행설을 강조하는 낡은 고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치열한 기술경쟁에 내몰린 기업이 인문계 졸업생을 외면하는 진짜 이유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문과라서 죄송하다문송이의 몰락은 20년 전 이공계 기피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김영식 명예교수는 몇가지 단서를 달았습니다. 학문분야를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틀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과와 이과의 분류와 같은 유형의 구분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구분 틀이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어서 그 틀에 맞지 않는 분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그 구분을 경직되게 적용하면 문제와 폐단이 생긴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김 교수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설사 그런 양 쪽으로의 구분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한쪽에 속한 분야나 사람을 완전히 그 한쪽에만 국한시키는 테두리를 치고, 다른 쪽과는 격리시키는 경직성이 큰 문제를 빚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획일적인 구분을 넘어 학생의 '다양한 선택'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고등학생들에게, 모든 교과목을 똑같이 교육시키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즉 수학이나 자연과학에 전혀 흥미와 적성이 없는 학생에게 이들 과목을 억지로 강요하자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학생이 선택한 분야를 문과나 이과 어느 한쪽으로 구분하고 학생을 그 한쪽 테두리 안에 집어넣어서 관심과 공부의 폭을 좁혀 버리는 현행 제도는 당연히 옳지 않다는 것이며, 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학생을 그 분야가 속한 문과나 이과 어느 한 쪽에 속하는 분야들에만 관심을 갖도록 제약을 가하지 말고 학생의 관심과 적성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과 구분 폐지 이유, ‘다양한 교육과정

철학에 관심을 가진 학생이 수학을 함께 공부하고, 물리학에 관심을 가진 학생이 경제학을 함께 공부하고, 경영학에 관심을 가진 학생이 공학을 함께 깊이 공부하도록 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현재처럼 대학에 진학하기에 앞서 고등학생의 시기에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여러 가지 폐단을 지닌다고 생각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고등학교 시절에 자신의 장래 어느 한 분야를 전공하겠다고 정하는 것에 문·이과 틀속에서 가둬 놓은 상태에서 결정을 강요하지 말라는 이야기라고 설명을 달았습니다.

한국사회를 큰 혼란에 빠뜨렸던 '황우석 사태'도 문과-이과의 엄격한 구분 속에서 형성된, 과학을 신비화하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우리 사회에 인문학적 소양과 사회과학적 안목을 지닌 과학기술자, 과학기술에 대한 소양과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문사회과학자가 많이 있었다면 아마 상황은 달랐을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언론 역시 황우석의 연구에 대한 맹목적인 열광에 앞서 다양한 측면에서 성찰할 수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인문학적 소양과 사회과학적 안목을 지닌 과학기술자, 과학기술에 대한 소양과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문사회과학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세상입니다. 이런 필요는 문과와 이과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풍토를 바꿔야만 가능합니다. '황우석 사태'가 남긴 교훈 중 하나입니다.

이 명예교수는 진정한 의미의 창의인성융합을 실천할 수 있는 현대적 홍익인간을 길러내는 전인교육을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의미의 융합을 절실하게 요구하는 현대사회는 한 가지 기능만을 갖춘 전사’(戰士)가 아니라 높은 전문성과 함께 폭 넓은 시야를 가진 기사’(騎士)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만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참조>
김영식 서울대 명예교수 [교육과정 논란] 문과-이과 구분부터 없애자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이덕환의 과학세상> 20년만에 되살아난 교차지원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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