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준비, 프랑스모델 보완 못하면 무의미...교육계 "그래도 교육개혁 방안으론 획기적"

2017년 문재인 대통령후보는 '국립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국립대통합네트워크 공약을 두 번의 대선에 걸쳐 공약으로 채택했으나 개별 거점국립대 경쟁력 방안으로 선회했다. 사진은 문재인 정부 정책방안
2017년 문재인 대통령후보는 '국립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국립대통합네트워크 공약을 두 번의 대선에 걸쳐 공약으로 채택했으나 개별 거점국립대 경쟁력 방안으로 선회했다. 사진은 문재인 정부 정책방안

 [U's Line 유스라인 기획특집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20년째 우려먹는 사골곰탕 같은 대선·총선용 공약이다. 그만큼 교육개혁을 바라는 유권자들에겐 확실히 먹히는 공약이란 말도 된다. 그럼에도 20년 전 논의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공약은 그동안 여러 대선·총선 후보자들이 무수히 말만 던져놓고 책임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안 되는 것을 실행하겠다고 한 무리한 공약이었는지, 막대한 소요예산의 문제였는지 아무런 교훈조차 얻지 못하고 선거철용 노리개로 이용돼 왔던 게 사실이다.

2007년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2012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가 대선공약으로 ·공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을 들고나왔다. 이어 2017년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는 '국립대 연합'으로 명칭만 바꼈지 내용은 그대로다. 2012년과 2017년 연이어 대선공약으로 채택할 정도로 이 방안은 국민들로부터 강한 소구력을 나타냈다. 정치적 해석으로는 국민적 공감을 얻고, 정치적 헤게모니를 쥘 수 있는 진보진영만의 핵심의제라는 유혹이 늘 따라 다닌 공약이다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이 됐든, ‘국립대 연합이라 부르든 이 공약은 국·공립대 공동운영 등으로 대학 서열화를 타파하고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겠다는 현 정부 공약도 결국, 물 건너 갔다. 문제는 오는 내년 39일 치룰 대선에서도 국립대 통합운영안은 진보진영 후보의 단골 공약으로 재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이 국립대 통합운영안 공약을 또다시 내세우기에 앞서 고민해야 할 의제가 무엇인지 정리해 보는 작업은 나름 의미가 있어 보인다. 만약 이 공약이 제대로 추진된다면 그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요인-1> 당사자들로부터 호응 받지 못한 공약

·공립대 총장협의회소속 총장들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2017525일 서울시립대 회의에서 함께 협력해 적극적으로 대학체제 개편에 참여하자고 중지를 모았다. 국립대연합에 관련된 회의는 문재인 정부출범 이전에도 협의를 해 와 이 날 회의가 3번째 였다.

이어 201771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거점국립대·지역강소대학 집중육성 등 대학의 공공성과 경쟁력 강화가 비중있게 제시됐다. 9곳 지역거점국립대가 추진에 합의한 연합네트워크 구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여론은 점차 무르익어 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날 전국 국·공립대직원노동조합은 거점국립대연합 방안 반대 성명서를 밝힌다. 이들은 국립대간 또 다른 대학 서열화를 초래하고 국립대 확대정책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이 시점에서 논의되는 것은 섣부르기에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정반대의 입장으로 맞섰다.

국립대연합안은 서울대 입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학서열화를 타파하고, 교육공공성을 살리는데 서울대가 참여하냐, 안 하냐에 따라 천지 차이다. 당시 서울대 총장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국립대법인이라는 애매모호한 성격을 내세워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찾는 중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울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배경은 국립대연합을 하게 되면 서울대 입장에서는 상향평준화가 아니라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부정적 전망이 제기됐고, 서울대 내부에서는 국립대연합안은 결국, 서울대 폐교론이라고 치부됐다. 국립대연합이 되면 서울대는 국립○○대 서울캠퍼스로 바뀌어 사실상 서울대는 없어진다는 주장이다.

한편, 서울대 학생들의 온라인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는 국립대 통합정책 폐지요구 연서명을 하자는 제안도 등장했다. 가시적인 정부정책도 나오기 전에 반대입장을 확실히 밝혀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 학생들 입장은 국립대연합안에 강한 반대로 읽혀졌다. 독보적 서울대 위상을 연합으로 묶여 또래가 될 필요가 없다는 의중이다.

2001년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론 설계자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마저도 공약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며 그동안 수차례 논의됐지만 당사자인 서울대의 반발이 극심해 더 이상 진척이 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고 설명했다.

거점국립대가 아닌 지역국공립대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거점국립대를 키워야 가시적 정책적 효과를 내세울 수 있기 때문에 지원이 거점국립대로 편중돼 지역국공립대 소외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9곳 거점 국립대 총장만이 환영한 정책으로 몰려갔다.

<요인-2> 지자체 강화기조 역행한 중앙정부중심 체제 구축

국립대연합에서 개별 거점국립대 발전방안으로 급선회가 이뤄진다. 정책방향을 급선회한다고 누가 밝히거나, 조정한다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냥 그렇게 흘러갔다. 결정적 철회모습은 문재인 정부 첫 교육부 예산인 2018년 예산에서 드러났다. 국립대 지원금이 1000억원(2017210억원)으로 책정됐는데 이는 전년도 대비 무려 5배가량 늘어난 액수다. 국립대가 지자체와 연계해 강점분야를 중심으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 국립대학 혁신지원사업(PoINT)을 확대 개편하는 모양으로 변신해 나타났다. 대상도 18곳 대학에서 39곳으로 확대됐다. 예산편성과 대상확대는 '국립대연합 동반'에서 '각 국립대 개별 강화'로 물꼬가 방향을 틀었다고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국립대연합 방안이 국립대 혁신지원사업 확대로 둔갑됐다.
국립대연합 방안이 국립대 혁신지원사업 확대로 둔갑됐다.

, 거점국립대 네트워크 활성화명목 예산은 거점국립대 배분액 451억원의 약 10% 45억원만 책정됐다. 이 예산은 국립대학간 네트워크, 지역사회(국립대, 사립대, 산업체, 지자체 및 공공기관)와의 협력을 강화 취지로 책정됐다. 당시 교육부 관계자는 본지에 거점 국립대가 자율적으로 네트워크를 강화해 경쟁력을 갖춰 나가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율적이라는 단어가 개별적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사건(?)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당장이라도 성사가 될 것 같던 국립대연합논의는 2018년에 들어서서 그 자취는 사라졌다. 거점국립대 총장들이 국립대연합에 얼마나 미련이 남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20182월 전국 10개 거점 국립대가 계간소식지 ‘K-NU10 매거진창간을 했다. 불씨를 다시 살리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썼지만 이후 더는 발행되지 않았다.

<요인-3> 통합네트워크 원조, 유럽의 실패평가 우세

한국의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프랑스가 롤모델이다. 프랑스는 1971년 대다수 대학을 국립화·평준화를 단행했다. 대학 입학능력이 있는지를 측정하는 자격고사식 바칼로레아(Baccalaureat)’를 치른 뒤 합격선만 넘으면 파리 시내에 분산된 1대학(법학·역사학·철학)부터 13대학(법학·경제학·문예학·의학)까지 선택해 입학하는 식이다.

프랑스 교육계에선 이같은 대학체제를 성공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대학 통폐합 이후 프랑스 대학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이유가 박한 점수를 받는 요인이다. 프랑스에는 바칼로레아 합격 후 2~3년간 준비기간을 거쳐 입학하는 그랑제콜(Grandes Ecoles)이 있다. 엘리트 양성기관인 그랑제콜 졸업생들은 정·재계, 학계 고위직을 독차지해 프랑스에선 그랑제콜 폐지론까지 나온다.

김인환 미래교육정책연구소 소장은 프랑스·독일은 세계 대학평가에서 미국에 크게 밀려 있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 있다. 현재 대학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미국 대학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지 못할 것이라며 문화·역사적으로 객관식시험을 통한 서열 받아들이기에 충분히 길들여진 대한민국 사회문화에서 대학 평준화로 등치되는 프랑스식 평등주의 대학체제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서울대 구성원들의 반대는 국립대연합 정책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라고도 덧붙였다.  교육계에서는 "이 아킬레스는 기득권이라는 마법의 키를 나눠가지라고 하니 혼자만 갖고 있던 서울대가 순순히 내놓겠냐"는 교육 외적인 부분에 방점을 두고 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한 관계자는 대학서열을 해체하기 위해 국립대연합 정책을 쓴다고 하더라도 국립대를 묶는 방식으로는 기대가 높아진 한국 지식기반사회의 다양화·특성화 요구에 부합하기 어렵다"면서 "한국에서의 국립대통합네트워크는철저한 상향평준화를 지향해야 그나마 서울대가 귀를 열 것이고, 공통의 학교명을 쓰더라도 서울대에 일정 메리트를 줘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려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똑같은 서울대 9곳을 만든다는 컨셉이어야 시장반응이 조금 생겨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불평등 양극화, 교육이 일으켜국립대 통합네트워크대안

이런 과정을 겪어 왔음에도 진보진영쪽에서 국립대연합 방안이 선거철만 되면 고개를 드는 건 한국사회의 교육 불평등이 날로 심각해지고, 나아가 사회 양극화 발단이  교육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대학입시를 개혁하지 않고선 입시형 초··고 교육, 부의 기준이 돼버린 사교육중심 교육을 개혁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데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수시모집 기조로 가다가 불공정한 수시모집을 폐지하라는 성난 학부모들 요구에 서울 주요대학들의 정시모집 비율을 확대해 임시방편으로 불은 껐지만 교육불평등 해소와는 간극이 너무 크다.  

김종영 한국교육개혁전략포럼 정책위원장(경희대 사회학과 교수)'20202025년 대학통합네트워크 현실화 경로와 방안'에서 서울 주요대학을 중심으로 한 학벌구조와 입시경쟁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거점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예산을 지원해 거점국립대를 'SKY' 수준으로 키우면 된다고  제시한다.

김 위원장은 "한국 교육은 날로 계급별·지역별·대학별로 양극화되고 있다. 조국 사태로 입시문제가 촉발됐지만 정시확대라는 근시안적 대책만 나왔다"면서 "교육은 한국에서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피라미드적 학벌구조가 지위 권력 독점, 엘리트·() 엘리트 구분, 서울·지방의 이분법을 만들고 있다""대학과 입시체제가 '3%의 승자와 97%의 패자'를 양산하고 있다"면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이어 그는 "불공정과 비효율을 낳는 다중적 독점체제를 민주적 다원체제로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면서 "대학통합네트워크가 한국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은 대학통합네트워크를 실행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1단계로 서울대·강원대·경북대·부산대·전남대·전북대·충남대·충북대·경상대·제주대 등 10개 거점국립대를 '국립한국대학'으로 묶고, 2단계로 강릉원주대·경남과기대·공주대·군산대·금오공대·목포대·부경대·서울과기대·순천대·안동대·한경대·한밭대 등 12개 지역중심국립대학 통합안을 내놓았다.

학생들은 '한국대 통합 입학처'에 지원하는 식으로 통합네트워크에 공동 진학하게 되며 공동학위를 받는다. 10곳 거점국립대 입학정원은 전체 대학 입학정원의 6.9%이고, 12개 지역중심 국립대의 입학정원은 전체의 4.4%. 통합네트워크가 실현되면 기존에 '3%'만 차지하던 독점적 지위를 10% 이상의 학생이 나눠 가지면서 지위자체가 해체된다는 논리이다.

그는 1단계 통합네트워크가 성공하려면 각 지역 거점국립대가 연세대·고려대 수준이 돼야 하며, 그러려면 각 거점국립대가 서울대 수준의 예산을 확보해야 하므로 1년에 총 35조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지역거점국립대를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시켜야 한다""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에서 연구중심대학이 부상하는 동안 한국 대학은 연구 역량에서 정체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도 가능하다"고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대학통합네트워크법(가칭) 입법을 통해 예산을 확보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지위 권력의 민주화, 지역균형 발전, 학벌 체제 타파, 대학 질적향상 등을 위해 정부·학계·시민사회가 함께 이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단계에서 서울대를 포함하느냐 마느냐가 가장 중요한 걸림돌"이라면서 "나머지 거점국립대와 예산·인력 등의 격차가 큰 서울대의 반대가 너무 심하면 일단은 서울대를 제외하고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고, 서울대에 '역사적 임무'를 부여하면서 추가예산을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폐교하는 상황을 막으려면 국립대와 공영형 사립대학(사학혁신지원사업으로 변경)을 묶는 대학통합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면서 "소위 '명문대' 정원을 늘리는 효과를 내 소모적인 대입경쟁은 약화할 것"이라고 제기했다.

공약은 실험용이 아니다. 정책 실행의지의 아젠다를 농축시킨 국민과의 대화법이다. 그럼에도 국립대통합네트워크 방안은 20년째 우려먹다 쪼그라든 솥단지에 불만 때우고 있는 형국이다. 만약, 진보진영이 이번 대선에서도 새로운 상표를 달고 국립대통합네트워크를 들고 나오려면 그동안 실행이 중단된 이유와 롤모델인 프랑스에서의 문제점 파악, 정작 국립대 당사자들의 의견 등을 묻지 않고, 그럴듯한 선거용 공약으로 내건다면 백년지대계 교육을 선거푯수와 흥정했다는 지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진보당(민중당 개명) 대선후보 경선에서 김재연 후보가 국립대통합네트워크방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 후보는 “‘부모 찬스가 상위권 대학 진학 및 공기업 정규직 취업 등으로 이어지고, 반대의 경우 저임금에 불안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불평등을의 대물림을 타파하기 위해 대학통합네트워크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완성된 실행방안, 시행착오에 대한 개선방안, 실현 가능성을 크게 올릴 서울대 참여방안, 필요예산 조달, 획기적인 아이디어 등 구체적인 실행안은 쏙 빠져 있는 상태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도하려다 못했으면 왜 못했는지, 원외 정당인 진보당에서 추진이 가능한 정책적 무게인지 등을 따져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실하지 못한 속 빈 국립대통합네트워크 교육공약으로 다른 공약의 진정성마저 흠집이 크게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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