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칼럼 - 숙명여대 사태에 부쳐

숙명여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단과 학교 간 싸움은 한마디로 ‘제대로 된 이전투구’(泥田鬪狗) 전형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나 이 이전투구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진행형이라는 게 더 큰 문제다. 통례적으로 ‘이전투구’가 갖는 가장 큰 요건은 ‘서로 옳다’며 한 치의 양보없음의 주장과‘갈 때까지 가보자’는 막무가내식 싸움이 엉켜 서로의 몸에 진흙덩이를 던져가며 계속 뒹굴면서 점점 자신의 몸은 진흙으로 엉망진창이 되고,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해 종국에는 서로의 힘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곤 한다.

그러나 필자가 ‘숙대 사태’를 이전투구라고 규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 치의 양보 없음과 갈 때까지 가보자’는 지금까지 싸움의 외형을 묘사하려는데 이 글의 목적이 있지를 않다. 싸우는데는 이유도 있고, 명분도 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본질추구에가깝냐는 것으로대내외 구성원의호응이 갈린다. 결국 본질추구는 호응의 잣대가 돼높은 쪽으로 승리는돌아가게 된다. “싸우는 자들이 누구며, 왜 싸우게 됐나”만을 따지는 것은 이전투구의 한갈래에 불과하다.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하는 기준에서 바라보는 것이 훨씬 더 본질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며 그 편이 옳은 편이다.

특히 숙명은 학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싸움이 재벌가 2세들간의 재산상속 문제라면 굳이 이러한 글도 아깝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려는 것이 이 글의 본질이며, 말려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숙명은 이 나라의 미래들이 매일 아침마다 공부를 하러 오는 학교이기 때문이다.이 사태의 발단은 십수년 간 이 대학으로 들어 온 동문․기업 등 발전기금 685억원을 재단전입금으로 변칙회계를 해 마치 재단이 그만큼의 액수를 대학에 지원한 것처럼 위장했던 것이 드러나면서 부터다.

이러한 편법 회계가 지난 2월 9일 모 일간지에 보도되면서 외형적인 이전투구의 발단은 시작됐다. 재단과 反 한영실 총장 교수진은 언론사를 통해 이 내용이 보도된 데에는 한 총장의 제보로 이뤄졌다는 심증을 굳히면서 2008년 한 총장 부임이후 재단과 대학본부 수장간 계속 이어진 엇박자를 이참에 정리하자는 모종의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이전투구의 모양새를 서서히, 제대로 갖춰가는 과정을 밟아갔다.

결국 지난 22일 재단은 이사회에서 한 총장 해임을 전격적으로 결의, 한 총장 잔여임기 동안 총장직무를 대행할 인물을 선임하고 몇몇 교무위원도 새로 임명하는 초강수를 뒀다. 외형적인 이전투구가 절정에 이른 순간이었다. 총장실로 출근하려는 총장직무 대행 교수와 한 총장 측 처장급 교수인 교무위원들간의 몸싸움, 말싸움은 학생들 앞에서 전혀 부끄럽지 않게 학교 여기저기서 눈에 띠었다. 상대편을 향해 지르는 고함의 옥타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만 갔다.

이어 대학은 이사회의 한 총장 해임결의는 적법성이 결여된 무효라고 주장하며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으로 맞불을 댔고 법원은 대학 측의 논지에 일단 손을 들어줬다. 그래서 지난 30일 한 총장은 다시 총장실로 출근했다. 이전투구가 다 그렇듯이 숙대 사태도 향뱡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특징을 갖고 있다. 법원의 판결에 재단은 “총장을 다시 해임하기 위한 적합한 절차를 다시 밟을 것”이라며 이를 다시 갈고 있다.그 방안으로 한 총장의 업무상 비리를 폭로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최근 있었던 최고의 지성이라 자부하며 살아가는 한 대학집단에서 벌어진 이전투구의 과정이다. 여기서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의 단서를 달아본다. 2월 9일 일간지에 보도가 됐다. 숙명여대 재단은 얼마 있어 기자회견을 갖었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이랬다.

”조선말 순헌황후 육영의 큰 뜻으로 학교가 만들어지긴 했으나 숙명학원 재단은 구조적인 궁핍함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 대학지원제도는 재단 전입금이 많을수록 학교에 대한 평가점수가 높아지고, 이 평가는 지원고가의 차이로, 혹은 대학평가의 잣대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학교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것이며 이는 피할 길 없는 숙명학원의 운명이었는지 모릅니다. 이제 숙명은 새로 태어날 것이며 숙명의 빈 곳간은 관심어린 기업, 동문, 지역에서 채워주셔야 합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이번사태는 숙명학원의 기득권 싸움이라기보다는 빈 곳간이 사태를 일으킨 근원적인 이유입니다. 이제 현, 이사진은 이번 한영실 총장 후임의 새로운 총장 선임을 끝으로 전원사퇴하겠습니다. 대신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업무집행이 이뤄지도록 숙명학원이사회구성위원회와 총장선출위원회를 내․외부인으로 구성해 이 난관을 슬기롭게 넘어가려 합니다.순헌황후가 이 나라의 먼 장래를 위해 만든 이 숙명을 보다 진실되고, 교육현장 다운 대학으로 키우는데 성심껏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궁핍한 살림이 만들어 낸 발전기금 변칙회계라는 실정법 위반은 아무리 뜻이 옳을지언정 누구를 가리키는 학교에서는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었다고 인정하며 관계 당국의 배려와 선처가 있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숙명의 재학생, 동문 여러분께 송구한 말씀 올리며․․․ ”

이런 상상은 필자의 착각, 아니면 학교상황을 모르고 내뱉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치부해버려도 개의치 않고 싶다. 중요한 내용은 사태를 푸는 것은 본질에 접근하는 것에 있다. 변칙회계를 통해서 아닌 본질적으로 문제를 푸는 게 정말 이사회에서 할 일이었다. 재단 이사회를 14년간 이어 온 현 이용태 이사장을 비롯한 대부분 숙명 관계자들은 학교의 보이는 재정적 한계와 발전을 위한 새로운이사영입에 보다 적극적이어야만 했다. 늦어도 많이 늦었다.

또한 한영실 총장은 총장 취임이후 재단 이사회와 마찰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는 불편한 심정을 자주 토로했다. 이 부분도 보다 정확히 학교사회에, 특히 교수사회에 알려졌어야 했다. 대학본부 수장으로서 “이런 이런 일을, 이렇게 이렇게 해 나가려 한다. 그런데 현재 상황이 이만하다는 내용을 보다 공개해 학내 교수사회의 원군을 요청해야 했었다. 그럼에도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면 총장직을 내놓는 마음으로 말이다. 한 총장이이럴수 있는 명분은총장이기 때문이다. 총장은 교수들 대표해 일을 하는 사람이다. 교수의 편이다. 교육기관이라는 전제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외 숙명의 그 많은 교수들은 이사회와 총장간의 골이 깊어져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는 동안에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입장은 어떤 기준에 맞춰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이번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진 데에는 교수들의 알력과 일정의 패거리 문화가 크게 작용하지는 않았는지 숙명의 교수들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되돌아 볼 일이다.

이제 숙명여대에 깊게 관여하는 이사회, 총장, 교수들은 정숙(貞淑)·현명(賢明)·정대(正大)한 한국적 여성지도자 육성을 목적으로 개교한 숙명의 정신을 다시 새겨야 한다. 학교는 시정잡배가 다 모여드는 장터가 아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이치가 없는 세상도 아니다. 학교는 문제를 풀어가는 내용과 방법이 다른 이익집단과 같아서는 결코 안된다. 그렇게 풀어가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져 종국에는 다툼을 부르고, 편을 나누고, 학교가 추구하는 세상과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강의실에는 올바른 교과서가 있고, 도서관에는 진리가 넘쳐나는 곳이 학교임에도 말이다.

끝으로 숙명여대에 깊게 관여하는 이사회, 총장, 교수들은 학생들의 얼굴을 다시 봐야 한다. 그것도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들에게 지금까지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빨리 알아야 한다. 아직도 “우리가 학생들 볼 면목없는 일을 뭘 했다고 비판을 받아야 하는거지?”라고 생각한다면 숙명여대 사태는 아직도 빠른 이전투구의 진행형이다.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사회를 위해서도, 총장을 위해서도, 교수를 위해서도 아닌 게 학교의 본질이다. 학교의 본질은 다름아닌 교육과 연구를 얼마나 충실하게 하려는데 있다.

이 이전투구의 최종적인 피해자는 누구인가. 싸움은 누가 하고 피해와 그 댓가는 누가 지불한단 말인가.정말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다시 묻고 싶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이 싸움은명분도 승리도 없는 진흙창에서 싸우는 싸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총장과 이사회는 회동을 해 더 이상 파행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우(愚)는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숙명를 사랑하는 외부인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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