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학, 뭣이 중헌디?

적성보다는 대학서열·취업 고려... 대학가 반수 열풍의 '씁쓸한' 풍경 김성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정책위원l승인2017.08.1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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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다른 대학을 가기 위해 6개월 정도 수능을 준비하는 소위 '반수'가 대학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반수 하는 학생들은 1학년 1학기가 마무리되는 6월부터 반수 전문 입시학원에 등록하거나, 혼자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독재(독학재수의 줄임말)'를 시작하게 된다.


반수생들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수치는 확인할 수 없지만, 대학생이 응시하기 쉽지 않은 6월 모의고사 졸업생 인원과 수능시험의 졸업생 인원을 비교해 유추해보면 2017학년도 반수생은 약 6만 6천 명 정도로 추정된다. 2016년 대학 일반대학과 전문대 입학생 54만 2934명의 12%에 해당된다. 이것은 대학 신입생을 기준으로 추정한 인원으로 통계에 나타나지 않는 학생까지 포함하면 반수생의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슬기(가명)는 2016년 A대학 간호학과에 입학했다가 반수로 B대학 부동산 도시계획학과에 입학했다. 서울 모 외고를 다닌 슬기는 1학년 내신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 2학년부터 수능에 '올인'했다. 하지만 수능에서 다른 과목은 다 잘 나왔는데 언어 영역에서 실수로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점수 맞춰서 취업 잘 되는 과를 가라'는 부모의 강요로 간호학과를 입학하게 된 것이다.



반수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다니는 학교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다. 공부를 잘해야 다닐 수 있는 외고를 졸업하고도 A대학 간호학과를 다닌다는 것에 본인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게 반수를 선택한 이유였다고 한다.


"제일 많이 열등감을 느꼈던 건 학교 이름 때문이었어요. 과도 과지만 학교 이름이 제일 마음에 안 들었어요. 친구들은 다 잘 갔거든요. 그래서 열등감이 더 심했어요. 외고를 나왔는데 그 학교에 갔다 그러면 주변에서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고, 과 잠바를 입고 길을 지나가면 '아 무슨 저런 학교에 다니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봤거든요. 그런 것도 영향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반수 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슬기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어렵게 모은 돈으로 인강(인터넷 강의)을 들으면서 독학 재수를 했다고 한다. 돈이 없으면 EBS 인강을 듣고 돈이 생기면 한 과목당 10만 원 정도 하는 사설 인강을 들으면서 수능을 준비했는데 다행히 첫 수능보다 점수가 잘 나와서 B대학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B대학을 선택한 것 역시 흥미나 적성보다는 '대학 서열'과 '취업 잘되는 것'을 기준으로 '점수 맞춰서 안전빵'으로 대학을 결정하였다.


"사실 저는 컴퓨터 공학을 하고 싶었는데 제가 문과라 교차지원을 해야 해서 전과가 쉬운 학과를 찾아 봤어요. B대학이랑 C대학이 전과가 쉽다고 하더라고요. C대학을 쓰려면 인문대를 써야 하는데, 만약 전과가 안 되면 취업이 어려운 것 같았어요. B대학 부동산 도시계획학과는 전과가 안 됐을 때도 취업이 괜찮게 된다고 들어서 그냥 점수 맞춰서 '안전빵'으로 넣으려다 보니까 쓰게 됐어요."


현준이(가명)는 슬기가 반수를 해서 가고 싶어 했던 B대학 컴퓨터 공학과를 다니다가. D대학으로 옮긴 경우이다. 현준이는 이과 성향이라 컴퓨터 공학과를 가고 싶어 했고 수시 논술 전형으로 응시해 합격했다. 수능 점수도 정시로 합격할 만큼의 성적이 나왔다고 한다. 학과 공부가 본인의 적성에 맞고 배우는 교육내용도 재미있는데도 불구하고 반수를 선택한 이유는 몇 달 과 동기들과 공부를 해보니 자기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수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컴공(컴퓨터공학과의 줄임말) 처음 갔을 때 영어·수학 과목 시험을 봤는데 둘 다 우수반으로 나온 데다가, 수학은 점수를 잘 받았거든요. 주변 애들은 다 못 보는 걸 보면서, 어떻게 보면 자만심이 들면서 (반수 해야겠다는 생각이) 시작됐고, 이후 수업을 같이 듣고 과제를 하면서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반수를 하고 있는 승현(가명)이도 반수를 선택한 이유가 현준이와 비슷하다. 자사고(자율형사립고)를 다닌 승현이의 꿈은 건축가다. 그래서 수시로 응시할 수 있는 전형 6개 모두 건축학과에 응시했다. 그 중 합격한 E 대학은 연습용이라 생각하고 응시한 대학이었는데 결과는 E 대학만 합격하고 나머지는 불합격이었다. 수능은 E학교 보다 더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갈 수 있는 점수가 나왔으나 수시에 합격했기 때문에 정시에 응시할 수 없었다.


반수를 하게 된 이유는 '애들이랑 실력이 안 맞기' 때문이었다. 대학 과제나 시험을 보더라도 본인은 열심히 안 해도 성적이 잘 나오는데 친구들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도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을 보면서 친구들과 학습 속도와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E대학이 제가 생각하던 대학이 아니라서 다녀보자고 생각했는데 뭔가 애들이랑 실력이 안 맞는 것 같아서요. 고등학교 때 배운 게 다르니까…. 커리큘럼은 좋은데, 저 같은 친구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 대부분이 다들 실력이 좀 아쉬운 느낌이라서…. 애들이 조금 그렇다 보니까 선생님들도 교육을 조금 쉽게 하는 것 같아서…."


지금은 아침에 학원에 가서 자습하고 오후에 수업하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힘든 생활을 하지만 반수를 성공해서 원하는 대학을 가면 ‘잘 하는 애들이 모여 있어서 수업의 질이 높고 공부 할 맛이 나는 대학’에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호창(가명)이도 자사고를 졸업했다. 수시로 '서성한(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의 줄인말)은 갈 수 있으니 정시로 더 높은 대학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담임교사 조언에 정시 중심으로 대학을 준비했다. 막상 수능을 보니 다른 과목은 잘 나왔으나 화학2를 망쳐 원하는 대학 원서를 못 쓰고, S대 기계공학과를 갔다. 학교 공부는 괜찮았지만 원하는 대학이 아니라 다니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재수를 할까 고민하다가 1학기 때 다니면서 학점관리를 해놓은 다음 6월부터 본격적으로 반수를 시작했다고 한다.


한 학과에 몇 명이나 반수를 하느냐는 질문에 '본인 동기 중에 삼분에 일 정도는 반수를 하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S대는 흔히 이야기하는 대학 서열이 상당히 높은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학교를 목표로 하다가 미끄러져서 오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반수를 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재수를 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고 보험 차원에서 한 학기를 다니고 반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반수는 준비 기간도 짧고 한 학기 등록금이나 반수 비용이나 비슷하기 때문에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 분위기는 다 열심히 하는 분위기인데 막상 1학기 끝나고 보니까 반수 준비하는 학생들도 많더라고요. 제가 아는 친구들만 보면 과에서 삼 분의 일 정도가 반수 준비하는 것 같아요. 저희 과에 수능에서 미끄러져서 들어온 친구들이 많아서 (반수를) 준비하는 애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학생들의 반수 이유는 대부분 처음 입학 한 학과가 개인의 적성과 흥미에 맞지 않거나 수업이나 교육과정이 충실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서열화 된 대학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위치에 들어가지 못해 열등감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여기서 공부하고 있을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운이 없었거나 전략을 잘 못 세워 어쩔 수 없이 들어온 대학을 갈아타기 위해 반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몇 몇 반수생 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직업능력 개발원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생중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고려하여 대학을 선택하는 것은 48%에 불과하다. 절반이 넘는 52%는 취업이나 사회 인식(27%), 점수에 맞춰(16%) 등 자신의 적성과 상관없이 대학과 학과를 결정한다. 결국 학생들의 대학 선택의 기준과 방법은 ‘취업잘 되는 대학 점수 맞춰서’ 하고 있는 것이다.


반수생 인터뷰를 하면서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대학은 교육 공간이 아닌 투자와 과시를 위한 '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품의 가치가 쓰임새나 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가진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결정되는, 마치 명품 가방이나 명차, 아파트와 같은 지위재(Positional Good)로 인식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가 거주지가 아닌 투자와 과시의 대상으로 변한 것처럼, 대학은 교육의 공간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위한 투자의 대상이자 학벌 사회에서 자기 과시를 위한 하나의 상품이다. 부동산 투자에 재력과 정보와 전략이 필요하듯 소위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돈과 대입 정보와 그에 따른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파트가 투기의 목적이 아닌 주거의 목적이 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학 교육 문제 해결 방안도 이와 유사할 것이다. 서열화된 대학에 점수 맞춰 가는 현재 상황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공을 잘 가르쳐 주는 대학을 선택하는 문화로 바꾸는 것이다. 대학이 지위재적 상품이 아닌 학문, 연구, 봉사라는 대학교육 본래 목적을 회복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시대의 과제이다.


부동산 업자나 투자를 통해 이득을 누리는 세력들의 극심한 반대가 있듯이, 교육 역시 지금의 제도에서 이익을 얻고 있는 세력들의 저항은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 불행을 해결하고 우리나라의 미래 교육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식하고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반수 문화’ 실태를 알아보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문제를 짚어보고자 김성수 정책위원이 언론매체에 기고한 글입니다.


김성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정책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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