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 홍수' 속 문화비평서 '남들의 이기심' 눈길

▲ 신간 '남들의 이기심' 표지

미국 심리학자들에게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설명하면서 빠뜨리지 않는 단어가 하나 있다. '자아도취',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번역되는 '나르시시즘'이 그것이다.

유명 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교수는 트럼프를 나르시시즘 성향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고 분석했고, 임상 심리학자인 조지 사이먼은 트럼프만큼 나르시시즘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없다며 워크숍에서 활용하기 위해 트럼프의 발언 영상을 모으고 있다.

그는 '트럼프 생수', '트럼프 초콜릿', '트럼프 대학' 등 자기 이름을 붙인 제품을 팔고 대학을 설립했다. 유세장을 오갈 때 쓰는 전용기에는 'TRUMP'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적혀있다. 멕시코인과 무슬림, 여성 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 그의 거친 입담도 대표적인 나르시시스트적 행태다.

비단 트럼프만이 아니다. 총격사건 테러범이 총을 들고 학교와 영화관에 가기 전에 페이스북에 포스팅할 정도다. 미국 사회 전체가 나르시시즘 망령에 휩싸여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 출판시장도 나르시시즘을 다룬 책들로 넘쳐난다.

최근 나온 신작만 해도 '나르시시스트 익스포즈드'(Narcissists Exposed), '옆집의 나르시시스트'(The Narcissist Next Door) 등 나르시시즘 홍수다.

에세이 작가이자 문화 비평 저널리스트인 크리스틴 돔벡도 신저 '남들의 이기심'(The Selfishness of Others)으로 물결에 가세했다.

2013년 로나 제피 재단 논픽션 부문 작가상을 받은 그는 자칫 정신병리학에 가까울 수도 있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저널리스트 특유의 쉽고 짧은 문장으로 책에 빠져들게 한다.

돔벡은 나르시시즘이 실재하는 인격 장애인지, 아니면 단순히 어떠한 끌림인지를 독자에게 묻는다. 심리상담사로서 접한 다양한 경험담을 풀어나가며 나르시시스트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동시에 조명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또한 1970년대 자기중심적인 'Me' 세대부터 'X'세대를 거쳐 현재의 '밀레니얼' 세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아주 드문 정신병리학적 임상진단(나르시시즘)이 어떻게 문화현상으로까지 진화했는지를 짚어간다.

5년 전 여름 노르웨이 우토야(Utoya) 섬에서 노동당 캠프에 모인 청소년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해 무려 77명의 목숨을 앗아간 극우주의자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 그리고 가짜인 동시에 진짜인 삶을 살아가는 TV 리얼리티쇼 출연자들.

돔벡은 이들의 행동과 발언,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따라가며 과연 사람에게 '공감'(empathy)'이 없을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우리 가운데 있지만, 우리와는 다르다. 그들은 조작하고 거짓말하고 속이며 훔친다. 매력적이며 재주도 많고, 우리의 능력 바깥의 광휘 속에서 산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의 속은 텅 비어 있다. 우리의 내면은 영혼, 혹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무언가로 채워져 있다. 나르시시스트는 없다. 공감이 없다. 전문가들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는 나르시시즘 공포증, '나르시포비아'(narciphobia)라는 렌즈를 통해 인간관계를 살핀다. 그리고 묻는다. '공감지수가 높은 사람들하고만 사귀어야 한다고 믿는가?' '당신을 조정하려고 드는 가짜, 속이 텅 빈 사람에 둘러싸여 있다고 걱정하는가?'… 만약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나르시시즘 공포증을 앓고 있다는 게 돔벡의 진단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제 눈의 들보는 못 보고, 남 눈의 티끌만 보는 세태를 꼬집는 부분이다.

나르시시스트를 친구나 연인, 혹은 배우자로 두고 있다는 사람들이 경험을 공유하며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사이버 공간, 돔벡이 '나르시스피어'(narcisphere)라고 부르는 이 공간에서 오가는 대화의 대부분은 아주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행동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남들은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지만, 나는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나르시시스트라고 돔벡은 말한다. 150쪽. 프랄, 스트라우스 앤드 지루刊(Farrar, Straus and Giro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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