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물수능이 만든 ‘반수’(半修)…올해 7만명 재도전

▲ 반수생이 해마다 늘고 있다. 취업난과 물수능이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로인한 경제적 손실은 연간 수천억원에 이른다.

[U's Line 대학팀]대학은 1학기가 끝날 무렵부터 학원으로 변신한다? 무슨 뜻인가 하니 대학가는 물수능으로 5~6개월이면 수능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괜한 자신감과 청년 취업난이 극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입학했다가 취업이 용이하다는 학과로 바꾸기 위해 휴학을 하고 반수(半修)를 한다. 대학가의 조사로는 7만 명이 휴학하고 대입에 재도전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방대일수록 중도 포기자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입시전문가들은 “안일하게 달려들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SNS에 남긴 대학생들의 댓글에서 이들의 어려움이 드러난다.

"그래 봐야 청년들의 미래는 취준생이나 공시생이요, 장년들의 미래는 아파트 경비원이나 치킨집 사장"(다음 이용자 'FBI****')

극심한 취업난 때문에 대학 새내기 때부터 여름방학 이후 휴학하고 반수(半修)에 도전하는 학생들이 늘었다는 소식에 누리꾼들은 26일 좋은 대학 나와도 만만치 않은 현실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네이버 아이디 'laud****'는 "어렵게 대학 들어가 봐도 또 공무원 준비해야 한다. 대학에 너무 연연하지 마라. 몇몇 대학 빼고는 비슷하다"고 썼다.

'anxn****'는 "대학 가도 지옥이다. 집이 어려워서 등록금 등 지원 못 받으면 평일과 주말은 물론이고 방학 때도 놀지 못하고 투잡 뛰고 돈 번다고 눈물이 난다"고 한탄했다.

누리꾼들은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는 것보다 공무원 준비를 일찍 시작하는 게 낫다고 현실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ksk4****'는 "대학 안 가고 공무원 일찍 합격해서 호봉 쌓는 게 더 이득이다. 비싼 등록금 내고 취업 안 돼 사회 진출 늦어지면 돈 모으기 힘들고 학자금 갚느라 평생 빚에 시달린다"고 적었다.

다음 이용자 '산업용 로봇'은 "어차피 문과 애들은 죄다 공무원 준비한다. 몇몇 명문대 제외하면 아예 수능 안 보고 공무원 준비만 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썼다.

어차피 사는 게 다 어려우니 진정으로 자신의 꿈을 찾아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현명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음 이용자 'soonidol'는 "왜 무조건 대학에만 집착하는가? 대학은 절대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 개척을 위해 힘써야 하고, 대학을 안 가도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이버 아이디 'rlat****'도 "대학이나 돈만을 목표로 해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남과 비교하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인생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게 답이다"고 썼다.
 

올해 K대 사범대에 입학한 김모(19)씨는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한 뒤 대입종합학원에서 수학능력시험(수능) 준비를 하고 있다. 입학금 100만원과 한 학기 등록금 350만원을 내고 학교를 다녔지만 ‘반수생’의 길을 선택했다.

김씨는 “수시모집 때 여러 곳을 지원했다가 사범대에 합격했는데 장래 희망이 교사가 아니라 경제학과를 목표로 반수를 해볼 것”이라며 “실패하면 다시 학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수능이 ‘2점짜리 틀리면 2등급, 3점짜리 틀리면 3등급’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너무 쉽게 출제돼 입시 결과를 수긍하기 어려워졌다”며 “올해도 수능이 쉬울 테니 잘만 하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 반수에 뛰어드는 친구가 많다”고 전했다.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해 선택한 학과였지만 막상 입학해 취업 때문에 발을 동동거리는 선배들을 보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나 '인구론(인문계 구십퍼센트가 논다)'이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여겨 웃어 넘겼지만 대학 생활을 하며 피부로 느낀 취업난은 새내기인 그조차 더럭 겁나게 했다.

그는 고민 끝에 부모와 상의해 '반수'를 하기로 했다. 휴학을 하고 반학기 동안 수능을 준비해 좋은 성적이 나오면 새로운 대학을 선택하고, 여의치 않으면 복학할 셈이다. 그는 "취업을 위해 재수, 삼수도 하는데 한 학기 휴학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며 "반수를 해서 취업만 잘 된다면 남들에게 결코 뒤처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가에 반수를 선택하는 새내기들이 적지 않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한 대학이지만 취업 걱정에 휴학계를 내고 수능에 재도전하겠다며 입시학원을 찾고 있다.

지방대생일수록 반수에 대한 고민은 더 크다. 충북의 모 대학에 입학한 최모(19)군도 1학기 종강과 함께 휴학하고 반수를 선택했다. 그는 지난해 수능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해 원했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적성과는 무관하게 점수에 맞춰 입학한 터라 학과 공부에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한 학기를 허송세월했다. 취업 걱정까지 겹쳐지자 그는 원하는 대학에 가겠다며 수능 재도전을 결심했다.

▲ 한 대학 도서관에 입시참고서가 놓여 있다. 지방대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하다.

최군은 "요즘 같이 취업경쟁이 치열한 때 캠퍼스의 여유와 낭만은 사치"라며 "실패해도 복학하면 되니 더 밑으로 내려갈 일은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울의 유명 학원들은 물론 지방의 입시학원들은 대학 1학기 종강에 맞춘 지난주 앞다퉈 '반수반'을 개설, 수능 재도전에 나서는 대학생 유치전에 나섰다. 대학 학적을 유지하면서 수능을 준비하는 반수생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전국의 반수생 수를 따로 집계한 자료는 없다. 다만, 반수생 대부분은 1학기 기말고사 기간인 6월 수능 모의평가를 보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그 수를 추정해 볼 수 있다. 6월 모의평가에 응시한 재수생 인원과 11월 수능시험에 응시한 재수생의 차이를 반수생 숫자로 보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종로학원 하늘교육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반수생 수는 2013년 6만1천991명(전체응시 인원 대비 반수생 비율 10.1%), 2014년 6만6천440명(〃 10.9%), 지난해 6만9천290명(〃 11.4%)로 해마다 늘고 있다.

이달 실시한 2017학년도 6월 모의평가의 재수생 응시자 수가 6만8천192명으로 예년보다 1천명 이상 늘어난 점을 고려할 때 올해 반수생 수는 7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입시기관은 보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학교를 그만두거나 휴학하는 학생들이 5만 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부쩍 쉬워진 수능도 반수생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정책적으로 수능을 쉽게 유지하겠다는 게 교육부의 기조다. 반수생들이 6개월의 재수만으로도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기대를 거는 이유다.

편입학 모집 인원이 해마다 줄고, 대학 생활과 취업 등에서 편입생이라는 꼬리표가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반수를 선호한다는 게 학원가 설명이다. 그러나 분위기에 휩쓸려 각오나 구체적인 계획 없이 반수에 도전하는 것은 자칫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입시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재진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평가실장은 "이미 대학에 합격한 상태인 반수생들은 일반 재수생과는 달리 절박함이 덜하기 때문에 안일하게 달려들었다가는 오히려 낭패를 볼 수 있다"며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올해도 적지 않은 대학 신입생이 반수를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재수종합학원은 반수생 확대를 예상해 이들을 수용할 반을 전년도보다 두배 늘릴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재수종합학원에선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반수 관련 문의가 10~20%가량 늘어났다고 전했다.

한 대입 재수 종합학원 관계자는 “현재 정부 방침이 ‘쉬운 수능’ 유지이며, 이러한 기조는 실제로도 확인되고 있다. 또 최근 진행한 3·4월 학력평가를 보면 개정 교육과정이 반영된 수학, 필수과목이 된 한국사도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재수생이 크게 불리하지 않은 환경이어서, 반수생은 예년 수준 혹은 좀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본다”고 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최근 반수생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직접 캠퍼스 생활을 하면서 취업난 등 녹록지 않은 현실을 피부로 느낀 뒤 상위권대 혹은 전문직 관련 학과 진학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수를 포함한 1년 경제적 손실은 프라임사업 1년 예산보다 훨씬 많은 2조원에 해당한다는 계산이다. 경제적 손실도 손실이지만 경제적 가치로 가늠할 수 없는 청년시절이 반수라는 이름으로 흘러간다. 유독 학벌을 중요시 여기는 후진적 사회, 진로적성의 가치폄하적 입시문화 등이 프라임사업 보다 더 시급한 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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