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권영철의 Why뉴스 지상중계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요 상아탑이라고 불렸다. 그렇지만 요즘의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인력양성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 상아탑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대신 영어공부를 하고 스펙을 쌓고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있다. 대학들은 취업률이나 학생모집에 도움이 되지 않는 철학과나 국문과 같은 기초인문학 관련 학과를 통·폐합하거나 예술대학이나 무용학과를 폐지하려 하고 있고 이 때문에 비인기 학과 폐지를 둘러싼 학내갈등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대학은 왜 점점 미쳐가는 걸까?" 라는 다소 도발적인 주제를 잡아 CBS 김현정 앵커 진행(우), 권영철 CBS 선임기자(좌)가 대담 한 '권영철의 Why 뉴스'의 “대학은 왜 점점 미쳐 가는가?”를 지상 중계한다.


▶<김현정> '대학이 황폐화 되고 있다', '대학이 사라질 은 이미 많이 들었는데 대학이 미쳐간다는 건 지나친 얘기 아니냐?


▷<권영철> 표현상 거칠고 도발적이다. 그런데 돌아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 대학이 제정신이 아닌 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그런 제목을 선택했다. 김현정 앵커는 '대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학? '학문의 전당' 이라고 하지 않나?


▷그렇다. 대학을 부를 때 '학문의 전당'이다. '상아탑'이다.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을 대학이라고 하기도 했고, 고인이 된 신영복 교수도 감옥을 대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대학은 누가 뭐래도 학문을 연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다.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했던 이유도 학문과 진리를 탐구하는 신성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대학이란 무엇이냐? 라고 물으면 '학문의 전당'이라거나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라는 답변을 듣기 어려울 것이다. 대한민국 대학의 최고의 선은 취업률을 높이는 것이다. 대학에서 어떤 것보다 취업률이 우선시 된다는 건 대학이 상아탑으로서의 기능이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엊그제 교육부가 발표한 '프라임 사업'을 두고 하는 말이냐?


▷'프라임 사업'만을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프라임 사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프라임 사업은 '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PRIME·PRogram for Industrial needs - Matched Education)을 말하는 것>. 프라임 사업의 핵심은 인문사회, 자연, 예체능계 정원은 줄이고 공학계열 정원은 늘이는 것이다. 프라임 사업에 선정된 21개 대학에서 인문사회 2500명, 자연과학 1150명, 예체능 779명 정원을 줄여서 공학계열 4429명을 늘이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앞으로 2024년까지 사회계열에서는 인력이 초과공급되는 반면에 공학계열에서는 인력수요가 그만큼 많아질 것이므로 인력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라임사업 뿐만 아니라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이유로 대학평가를 하는데 가장 최우선 고려 대상이 취업률이다.


대학들은 취업률이나 학생모집에 도움이 되지 않는 철학과나 국문과 같은 기초인문학 관련 학과를 통·폐합거나 예술대학이나 무용학과를 폐지하려 하고 있고 이 때문에 비인기 학과 폐지를 둘러싼 학내갈등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문예창작이나 음악·미술 이런 전공들은 취업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


취업과는 거리가 먼 전공이지만 대학평가에서는 예외가 없다. 취업률이 최우선 기준이 되는 것이다. 수도권 어느 대학의 예술대학장이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중 취업을 하는 학생은 그 분야에서 열등생이거나 낙제생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취업률로 예술학과를 평가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거냐?"라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인구론'이 무슨 말인지 아나? 멜더스의 인구론을 얘기하는 거냐?


그 '인구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구론이라는 말은 시사상식사전에 새롭게 등재된 신조어인데 '인문계 졸업생의 90% 논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다. 취업이 어려운 인문계 졸업생의 현실을 가리키는 신조어인데 이걸 근거로 기초학문을 점점 고사시키는 것이다. 이미 과거에도 인문사회계열에서는 '실업자 양산학과'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만 그 때는 대학에 가려는 학생들이 넘칠 때여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문사회계열, 예체능계열의 고사(枯死) 말고 다른 문제도 있나?


지금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옥시' 사건 대학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독극물 때문에 아이들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교수는 알았을 것이다. 임신한 생쥐에 대한 실험으로 유독성 위험성은 입증이 된 것 아니냐? 그런데 연구용역비와 별도의 자문료를 받는 대가로 그런 엉터리 보고서를 제출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거냐?


제자들을 가르쳐야 할 교수가 사람의 생명이 걸린 일을 그렇게 한 이유가 뭐 겠느냐? 대학은 학문이나 진리는 뒷전이고 오로지 연구용역과 대학평가에 매몰됐기 때문 아니겠느냐? 이러니 교수들의 횡령이나 제자 성추행이나 논문표절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이고, 이 때문에 '대학은 죽었다'는 비판에 대학교수들이 수긍하는 조사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교수신문이 2016년 4월 전국 4년제 대학 전임교수 6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지식인의 죽음, 대학은 죽었다'고 비판하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 '매우 그렇다'는 응답이 12.7%, '그렇다'는 응답이 45.2%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매우 그렇다 22.7% 그런 편이다 47.6%로 70.3%가 대학은 죽었다는 사회의 비판을 수긍했다.


▶ 대학이 왜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 거냐?


교수들마다 의견이 다르다고 할 정도로 다양했다. 말 그대로 '백가쟁명'식이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점에서는 대개 일치했다. 정부가 취업률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이른바 프라임사업에 21개 대학을 지정해 3년간 6천억 원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들 대학들은 취업률을 7.7%이상 높이기로 했다. 앞으로 이들 대학에서는 대학본연의 학문이나 진리 탐구보다는 공학계열의 취업이 최우선시 될 것이다.


또 정부의 간섭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이름을 밝히기 꺼리는 대학의 한 보직교수는 대학평가에 학생들의 면담을 어떻게 했는지까지 일일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대학인지 중·고등학교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이다. 홍세화 전 학벌없는 사회 대표는 "대학생들에게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홍 전 대표는 "대학생들이 비판의식을 형성할 시간이 없다. 독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자유로운 사유를 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시간에 쫓겨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30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4년제 대학 3~4학년생 1123명 대상으로 '대학생의 교육투자에 따른 희망임금과 취업 선호도'를 조사 분석한 결과, 주간 평균 8.89시간을 공부하면서 영어공부에 가장 긴 3.94시간을 투자했고 이어 공무원시험(2.40시간), 전공(1.98시간)이었다. 로봇공학계 권위자인 한양대 한재권 교수는 영어공부에 몰입하는 건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직업을 대체하면서 번역이 쉬워질 것이라는 것이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대학이 황폐화 되고 있는 이유를 3가지로 분석했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 대학의 80%이상이 사학이다보니 기업과 마찬가지로 소유주가 있고 소유주가 전횡하면서 부패비리 사학이 근절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학이 등록금 장사를 하면서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교육정책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육마피아와 부패사학과의 심각한 유착은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교수들을 탄압하거나 재갈을 물리고 있고 국·공립대학에서는 총장 없는 대학들이 많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말한다. 경북대와 공주대, 방송통신대는 2년째 총장이 임명되지 않고 있다. 특히 교육부 지침대로 간선으로 총장을 선출한 경상대도 1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총장을 임명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세 번째는 교수들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교수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사회의 부조리나 정부와 기업의 간섭에 끌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임순광 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사회가 미쳐 돌아가는데 대학인들 미쳐돌아가지 않겠느냐?"고 진단한다. 대학이 기업의 하부기관 정권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교수는 늘었지만 지성의 목소리를 내는 교수는 줄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학교수의 비정규직화가 심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문사회계열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대학 강단에 서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이 걸리지만 연봉 1500만원의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대학이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본질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지 못하고 기업 경영식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의 지배구조도 기업식이고 의사결정도 소수가 결정하는 기업문화가 일반화 되고 있다. 대학에는 상업시설이 넘쳐나는데 이 것을 보고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느냐?는 것이다.


동아대 신문방송학과 김대경 교수는 "미국 대학에서 8년간(미국 아이다호 주립대학 신방과 교수로 재직) 재직하는 동안 '정부에서 어떤 지침이 내려왔으니 뭘 하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그런데 학과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정부의 지침이 너무 잦고 교수의 자율성이 없다"고 말했다.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는 "교수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정부가 너무 잡무에 시달리게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중고등학교 교사들처럼 잡무에 시달리게 하면서 대학교수를 기능인으로 만들고 있고 순응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평가 때문에 정부비판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고 한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다른 진단도 있다. 김충식 가천대 대외부총장은 첫 번째로 "대학이 페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동안은 대학이 사회변화를 선도하고 우수한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사회변화를 쫓아가지도 못하는 처지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는 급격한 ICT기술의 진보로 고용없는 성장으로 가고 있지만 대학은 이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세계화도 대학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부총장은 "대학이 직업훈련학원은 아닌데 일자리가 없는게 대학의 잘못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도 문제"라면서 "다른 측면에서는 대학제도 자체가 과거 그대로다. 선진화 되지 못하고 관료화가 심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무곤 동국대 신방과 교수는 "대학에서 빚어지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취업이 안 되는 그책임을 대학에 전가하면서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 대학원이나 인턴 취직을 하도록 하거나 심지어 대학교수가 인터넷 언론을 만들어서 제자를 취직시키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학과 통폐합을 대학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면서 "실례로 철학과의 경우 대학으로서 없애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왜냐? 철학과는 강의실과 칠판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공계는 실험실도 있어야 하고 실험장비도 있어야 하고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또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대학에 가는 이유를 학문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취직을 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대학을 취업시켜주는 대중교육의 장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심지어 수도권 대학의 한 신방과 교수는 "어떤 학부모의 경우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가면 당연히 아나운서가 되고 기자가 되고 PD가 되는 줄 안다"면서 "4년간 엄청난 등록금을 들였는데 왜 아나운서가 되지 못하는 거냐?고 항의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 해결 방안은 없는 거냐?


문제가 있는데 해결방안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의 근본을 바꾸기 전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대학을 대폭 줄이고 대학에 가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대학을 학문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취직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점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교수들마다 대안도 다양하게 제시된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숙명여대 김응교 교수는 "학생들을 규격에 넣는 절대적 상대평가가 한국 대학사회를 규격화 경쟁화 하면서 학생과 교수의 관계가 사제지간이 아니라 거래관계가 되어 가고 있다'면서 "고려대가 시행하기 시작한 권유형 상대평가 혹은 자율형 절대평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는 "대학이 대학다워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교육부를 해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부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많은 교수들이 공감한다. 다만 이런 주장을 공개적으로 할 경우 개인에 대한 불이익 뿐만아니라 학교에 불이익을 주는 구조여서 실명으로 거론하기를 꺼리고 있다. 그렇지만 누구도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게 더 답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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