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바야흐로 대학 구조개혁의 시대다. 대학교육 경쟁력이 국가경쟁력과 동일시되는 상황 속에서 지구촌 많은 나라들이 고등교육 개혁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주요 선진국들의 경우 대학교육이 대중화단계를 넘어 보편화 단계에 이르게 됨에 따라, 양적성장보다는 질적 수월성을 제고하기 위한 전략의 모색에 주력하는 경향이다. 한국의 대학교육은 지난 60여 년간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으나 이제 구조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고등교육시스템 자체가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더욱이 저 출산 현상으로 인한 학령인구의 감소가 계속될 전망이며, 이에 따라 대학진학 희망자보다 대학의 문호가 더욱 넓은 이른바 공급과잉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의 고등교육은 이러한 국내요인은 물론 세계의 대학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 속에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국가적 차원과 대학차원의 구조개혁 노력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협의의 구조개혁은 조직 내 인원 및 하위 구성조직의 감축, 기관 간 인수‧합병 등 양적 감축(downsizing)을 의미하는 구조조정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그러나 광의의 구조개혁은 양적인 감축은 물론 비교우위를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거나 조직 내외의 상황요인을 고려하여 재구조화(restructuring)하는 질적 개선까지를 포함한다(유현숙 외, 2009). 따라서 우리가 현재 고려하고 있는 대학 구조개혁에 대한 논의도 양적인 구조조정은 물론 질적인 구조개선까지를 포함해야 할 것이다(이 글의 구조개혁도 넓은 의미의 구조개혁 즉, 양적 구조조정은 물론 질적인 재구조화를 포괄하는 것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구조개혁을 진행함에 있어 이미 유관한 정책을 진행한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의 구조개혁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 해외의 대학구조개혁 동향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 주요국의 경우 다양한 방식으로 대학구조개혁을 유도하고 있다. 주요국들의 경우 국가마다 고등교육 환경과 여건이 상이한 상황 속에서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은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최소 수준의 대학교육 질 담보를 위한 구조개혁

구조개혁은 국가별로 처한 고등교육 환경과 고등교육에 대한 철학에 따라 다소 다르게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이든지 구조개혁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의 하나는 대학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질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대학교육평가 인증제를 들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대학생 집단이 다양화하고, 대학 특성도 다양해지면서 대학내부의 자정 노력만으로 질적 수준을 유지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평가인증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무엇보다 대학등록금이 급증하면서 교육에 대한 책무성이 강조되고 있고 이전보다 엄격한 대학 질 관리가 요청됨에 따라 최소한의 대학교육 질 보증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미국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평가 인증업무는 기관 인증과 학문분야별 교육프로그램 인증기관으로 크게 나뉜다. 기관단위 인증은 지역인증기구(regional organization, 중부지역 협회, 남부지역협회 등), 종교관련 평가인증조직(national faith-related organization), 그리고 직업관련 평가인증조직(national career-related organization)에서 수행하고 있으며, 의‧약학, 간호학, 건축학, 경영학 등과 같이 학문분야별로 대학 내 학문 프로그램의 질을 평가하는 기관들도 평가인증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관들은 행·재정적으로 정부로부터 독립된 민간기관이며 인증평가에 참여여부는 원칙적으로 고등교육기관 자율에 맡겨져 있다. 평가인증기관들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기준에 따라 인증을 위한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대학이 책무성을 담보하기 위해 대학인증평가에 참여하는 것과 같이 민간 인증평가 기관들도 인증평가의 책무성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외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외부평가를 인정(recognition)이라고 한다.

평가인증기관에 대해 인정업무를 수행하는 대표적 조직은 평가인증기구들의 협의체인 고등교육 평가인증협의회(CHEA: Council for Higher Eduction Accreditation)와 연방 교육부를 들 수 있다. 2008년 현재 미국 전역에서 CHEA 또는 연방교육부에 의해서 인정을 받은 평가인증 기관수는 총 80개로 이중 19개는 기관평가 인증이고, 61개는 학문 프로그램별 평가인증기관이다. 대학평가인증제에 의해 인증을 받지 못한 기관이나 프로그램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고 결국 존립이 어려운 기관으로 전락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대학평가인증제는 가장 기초적인 구조개혁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와 대학간의 “협상"‧ "협의”을 중시하는 구조개혁

구조개혁 동향의 하나는 국공립대학들에게 주로 적용되는 방식으로 정부와 대학 간의 협의와 협상이 중요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협상을 중시하는 구조개혁 방식은 정부의 입장에서는 투자에 따른 책무성 점검 차원에서 대학이 수행해야 할 내용을 합리적 과정을 통해 요구할 수 있고, 대학들은 자신들의 역량에 따라 수행수준을 설정하고 이를 정부에 요구하는 호혜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버지니아 주의 구조개혁 사례를 들 수 있다. 버지니아 주는 2005년에 주 고등교육 구조개혁법안인 "The Restructured Higher Education Financial and Administrative Operation Act of 2005"를 발효하여, 주와 대학이 긴밀한 협상을 통한 구조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동 법안의 핵심은 버지니아 주 공립대학은 주 정부가 제시한 11개 성과 목표치(performance benchmarks)를 달성하는 대가로 등록금 책정, 조달(구매), 인사, 건설 등 대학운영 전반에 대한 자율권을 확보 한다는 것이다.

버지니아 주의 구조개혁은 3단계로 진행되는데 1단계에서 대학들은 참여의 전제조건으로 주에서 명시한 수행과제(기준)을 부여받게 된다. 1단계에서 요구되는 과제들은 1) 고등교육 기회제공, 2) 학자금 지원 유지 및 확대, 3) 광범위한 학문 프로그램 제공, 4) 학생 재등록률 및 기한 내 졸업률 제고, 5) 버지니아 커뮤니티 컬리지 체제와의 협정서 체결, 6. 주의 경제 개발 노력을 활성화하는데 동참, 7) 연구비, 특허 및 자격 등록실적 제고, 8) 학생의 학업성취도, 교사 능력 제고와 학교 행정가들의 리더십 역량 제고를 위해 초중등학교와의 공동 프로그램 개설, 9) 6개년 종합 계획 수립, 10) 학생 안전에 대한 보장책 마련 등이다(http://www.education.virginia.gov/). 주 정부와 대학은 이러한 수행 과제에 관한 내용 명기한 양해각서를 교환함으로써 구조개혁 사업에 상호 동참하게 된다. 정부의 수행평가에 의해 최고단계인 3단계를 받은 대학들은 Charter University의 자격을 회득하며, 대학의 세부적인 행정. 재정적 자율성과 운영에 대하여 주 고등교육평의회와 “협상” 할 수 있다.

재정지원과 연동한 구조개혁

많은 국가에서 대학교육에 대한 공적·사적 부담이 증대되면서, 구조개혁과 재정지원을 연동하여 추진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대학교육에 대한 책무성을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투자 대비 효과를 증대시킴으로써 자원배분의 합리화를 도모할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재정지원 사업과 구조개혁을 연계‧운영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일찍이 대학재정 지원과 평가 및 구조개혁을 연계하는 제도를 발전시킨 국가의 하나다. 1992년 계속·고등교육법에 의해 영국은 대학과 폴리테크닉 사이의 구분을 없애고 하나의 고등교육 체제를 형성하였다. 이에 따라 대학과 폴리테크닉이 각기 다른 주체에 의해 재정지원 하던 그간의 시스템을 일원화하여 공공기관(non-departmental public body)성격의 대학재정위원회(HEFCE: Higher Education Funding Council for England)를 발족시켜 모든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총괄하도록 하였다. HEFCE는 재정지원을 하는 고등교육기관의 질을 평가함은 물론 학생들의 다양한 학습 요구와 국가의 사회‧경제적 요구를 충조시키면서 수준 높은 교육과 연구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보조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HEFCE의 구체적인 임무는 1)고등교육 안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그들의 교육적 요구와 사회 경제적 요구를 맞춰 주는 양질의 학습경험을 갖게 하고(교수-학습의 수월성제고), 2) 더 많은 사람들이 고등교육에 성공적으로 참여하여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교육기회를 확대지원 하며 (참여확대와 공정한 기회), 3) 역동적이고 국제 경쟁력을 갖춘 연구 부문을 발전·유지하여 경제적 번영과 국가의 복지 그리고 지식의 확대·전수에 기여하고( 연구의 수월성 확대), 4) 고등교육의 지식기반을 경제발전과 사회의 생명력 강화에 더 많이 활용하게 하는 것(경제와 사회 공헌의 확대)이다. 이를 위해 HEFCE는 1) 130개 대학과 칼리지에 교육·연구 활동을 위한 정부자금 제공, 2) 고등교육 발전지원, 3) 대학과 칼리지 재정운영 감독, 4) 교수의 질 평가, 5) 계속교육 칼리지에서 운영하는 고등교육 프로그램 지원, 6) 효과적인 실행방법 지원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HEFCE의 임무는 대학교육의 질을 제고하고, 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를 합리화 함으로써 대학교육의 재구조화를 유도하는 핵심적 기구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미국의 경우도 연방정부 차원에서 대학재정 지원과 대학 랭킹을 연결하여 대학교육을 개혁하고자 하는 시도가 전개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Postsecondary Institutions Rating System(RIPS)” 이라는 플랜을 발표하여 대학평가를 통해 랭킹이 우수한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더 높은 금액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을 밝힌 바 있다. 이 계획에 있어서의 평가 기준은 학비, 학생 학자금, 졸업률, 졸업생의 소득 정도 등이다. 이를 위해 오바마 정부는 교육부에 2015년까지 대학평가 지표를 개발할 것을 요청하고, 이 자료에 기초하여 2018년도 까지의 대학재정 지원계획을 수립할 예정임을 밝히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새로운 평가지표가 접근성(access), 지불능력(affordability), 성과(outcomes) 등이 3가지에 근거하여 개발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접근성 지표에는 pell grant에 의존하고 있는 저소득층 학생비율, 지불능력 지표에는 평균학비, 장학금, 학자금, 성과지표에는 졸업률, 편입률, 졸업생의 소득과 관련된 지표 등이 포함되어야 함을 발표하였다. 연방정부는 이에 따른 랭킹 설정을 위한 정보 수집에 착수하였고, 학비와 학자금의 정보가 포함된 “college Scorecard"를 개발하였다. 현재 이 플랜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정부 계획이 주는 시사는 미국의 경우도 대학 교육의 보편화에 따라 공적 투자가 증대되고 있으며, 대학교육에 대한 재구조화가 중요한 국가차원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거버넌스 개편을 통한 구조개혁

대학교육의 구조개혁은 고등교육에 대한 거버넌스의 재편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의 규모 축소는 물론 광의의 구조개혁에는 조직의 하부구조의 개편이나 재구조화를 통해 경쟁력을 도모하는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고등교육의 재편을 통한 구조개혁을 도모하는 것도 주요한 경향의 하나다. 일본의 대학법인화는 거버넌스 개편을 통한 구조개혁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의 구조개혁 없이는 일본의 재생과 발전은 없다” 라는 기치아래 추진된 일본 대학의 법인화는 2004년 4월부터 추진되어 시행 10년을 맞이하고 있다.

일본대학 법인화의 핵심은 1)자율적인 운영의 확보, 20민간 발상의 경영수법 도입, 3)외부 전문가 참가를 통한 운영시스템의 제도화, 4) 비공무원형의 탄력적 인사 시스템의 이행, 5)제3자 평가의 도입을 통한 사후 점검 방식 도입이다. 국립대학법인화를 계기로 일본의 국립대학들은 독자적인 법인격을 부여받게 되었다. 일본대학의 법인화를 통한 성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총장의 자율권이 강화되었고, 예산 집행의 자율성이 강화되었으며, TLO(Technology License Organization) 출자 등이 활발하게 이루진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재정 부족, 대학의 기업화로 인한 교육‧ 연구 기능의 약화, 수업료 인상으로 인한 교육기회 불평등 확대 등 부정적 평가도 있다.

한편 일본 경우 사립대학에 대한 구조개혁은 국립대학과 다른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일본의 사립대학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학생 수 감소로 인한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일본은 사립대학들을 경영상태 평가에 따라 1)정상, 2)경영곤란(노란색 zone), 3)자력갱생곤란(빨간색 zone), 4) 파탄상태 단계로 나눈 후 각각의 상황에 따른 차별적 지원 방안과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대학의 다양화·특성화 유도를 위한 구조개혁

구조개혁이 대학의 특성화‧ 다양화에 우선순위를 두어 추진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호주의 경우 대학의 구조개혁은 고등교육의 양적 규모 축소보다는 과정의 개선과 형평성의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는 호주의 경우 아직까지는 대학교육의 규모 확대가 더욱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는 직접적인 구조개혁을 추진하기 보다는 재정투자와 더불어 정책 우선순위를 정함으로써 구조개혁을 유도하고 있다.

호주는 2008년 1월부터 ‘다양성 및 구조조정 기금’(Diversity and Structural Adjustment Fund)을 조성하여 대학들의 특성화와 다양화 그리고 노동시장에의 반응성 제고를 위한 구조개혁을 지원하였다. 즉, 대학들로 하여금 강점 기회가 있는 영역으로 전문화하거나 지역의 요구에 관계되는 명료한 고품 <자료협조 : 대학교육>

 

유현숙 (한국교육개발원)

고려대학교 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교육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교육과학기술부 대학자율화운영위원, 교육역량강화사업 관리위원, 교육정치학회 회장, 미국 미시건대학과 벤더빌트 대학의 객원연구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연구본부 고등·평생교육연구실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 및 논문으로는 『지식기반사회에 부응하는 고등교육체제』, 『미국의 고등교육 거버넌스 분석과 시사점』등 있으며, “정부부처의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 분석 및 효율화 방안”, “고등교육개혁 국제동향 분석”, “한국대학생의 학습과정 분석(I,II,III)” 연구 외 다수가 있다. 주요 관심분야는 고등교육 거버넌스, 대학 성과평가, 대학의 학습과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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