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간 사용해 온 하버드 로스쿨 문장(紋章)이 노예제를 뜻한다는 이유로 폐기하기로 했다. 사진은 하버드 로스쿨 문장.

미국 하버드대학 로스쿨이 약 80년 동안 학교의 상징물 역할을 하던 공식 방패 문장을 폐기하기로 했다. 이 문장이 노예제와 관련이 있어 학교를 대표하기에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수용한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하버드 로스쿨은 4일(현지시간) 교수와 재학생, 동문, 교직원 등으로 구성된 학내 위원회를 소집해 공식 문장 폐기를 학교 이사회에 정식 권고하기로 결정했다.

위원회를 이끄는 브루스 만 교수는 "이 문장의 의미는 세월에 따라 변화했다"며 "이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방패 문양이 노예제와 상관이 있으며, 오히려 (학교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하버드 로스쿨의 마사 미노우 학장은 위원회가 10대 2로 통과시킨 권고안에 대해 "노예제와 관련됐다는 비판을 받는 공식 문장은 하버드 로스쿨의 가치와 지향을 더 이상 대표하지 못하며, 오히려 분열의 원천이 되고 있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1937년 공식 채택된 이 방패 문장은 학교의 표어인 '진리'(Veritas)라는 라틴어 문구 아래 아이작 로열 주니어 가문의 문장에서 차용한 이미지인 세 묶음의 밀 다발이 자리하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로열 주니어는 하버드대가 첫 법학 교수를 채용할 때 가문의 재산을 기부해 로스쿨 탄생을 도운 인물이다.

최근 일부 학생들은 로열 주니어의 부친이 대부분의 재산을 노예들의 고난이 서린 카리브해 설탕 농장과 매사추세츠주의 농장에서 일궜다는 데 주목해 학교 공식 문장의 폐기 운동을 펼쳐왔다.

하버드 로스쿨 당국은 학생들이 '로열 가문은 물러나야 한다'(Royall Must Fall)는 단체까지 결성해 조직적으로 움직이자 공식 위원회를 꾸려 이 문제 논의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약 80년의 역사를 지닌 상징물의 폐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위원회에 참여해온 한 교수는 "문장을 (학교 공식 상징물로) 계속 쓰는 것이 로열 가문이 부를 축적하는 데 희생된 노예들을 기리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그는 방패 속의 '진리'라는 문구 아래에 '정의'를 뜻하는 라틴어 'Iustitia'를 덧붙이는 방식 등으로 역사에 적절한 해석을 가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이 졸업한 하버드 로스쿨을 포함해 예일, 프린스턴 등 미국 주요 대학에서는 작년 하반기부터 학내 인종주의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하버드 대학은 수백 년에 걸쳐 아이비리그의 기숙사 관리인을 가리키는 '사감'(house master)이라는 용어를 '교수 처장'(faculty dean)으로 바꾸겠다는 입장을 최근 발표하기도 했다. 이 호칭이 노예제를 연상시켜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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