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공부 중독' 출간…사회학자 엄기호·정신과의사 하지현 대담

▲ 공부가 우리 삶의 답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공부 중독사회에 대해 교수와 정신과 의사가 만나 시원한 대담을 했다.

공부를 우리 사회문제의 근원으로 보고 그렇게 된 이유와 해법을 대담을 통해 풀어낸 책 '공부중독'이 11일 출간됐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영역의 두 전문가가 만나 우리 사회가 삶이 공부의 식민지가 되는'공부중독'에 빠져 있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정신과의사 하지현과 사회학자 엄기호가 네 차례 만나 솔직한 대담을 나눴다.

진료실과 강의실이라는 각기 다른 현장에서 청소년을 접한 두 저자는 책에서 우리 사회가 공부는 모든 문제를 빨아들이는 중심축이 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부모, 아이 할 것 없이 공부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모든 생활과 사고는 공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다.

어느 순간부터 공부가 마치 신앙처럼 자리 잡으면서 부모들은 공부에 중독된 아이들을 만들고,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온다. 그러나 오로지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 목표를 안고 공부에 중독된 채 살아온 아이들의 모습은 어떠할까.

이에 대해 하 씨는 '아이들이 망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부를 잘한 아이들은 완벽만 쫓다 보니 본능적으로 틀리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우등생을 보면서 따라가는 중간 정도의 아이들의 경우 나름의 성취를 해도 성취감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엄 씨도 대학 강의실에서 불안장애,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등을 앓는 학생들을 많이 만난다고 얘기했다.

대학 졸업 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학생 신분을 유지하려는 것도 '공부 중독 사회'의 한 증거라고 두 저자는 입을 모았다.

특히 엄 씨는 가장 심각한 폐해는 '만능감'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의 교육방식이 아이들에게 '나는 중요한 사람이고, 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내가 다 컨트롤하고 평정해야 하고'라는 어마어마한 만능감을 심어주면서 결국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마주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 저자는 이런 심각한 공부 중독 현상의 배후에는 몸소 공부로 성공한 이른바 '486세대'가 있다고 진단했다.

고속 성장 시기에 대학을 가고 취업하고, 집을 장만한 이들은 '공부 만이 답이라고 믿는 판타지'에 빠져 자녀들도 공부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그렇다면 이 사회 전체가 빠진 심각한 중독 현상을 해독할 방법은 없을까.

현 정부는 교육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땜질을 계속하지만 이런 시스템 개선만으로는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두 저자는 말한다. 아무리 시스템이 바뀌어도 공부를 통해 줄세우기를 하는 시도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이런 측면에서 두 사람은 공부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짜 공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사실상 우리 사회가 중독돼 있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공부'가 아니라 '시스템적 교육'이며 이제는 삶을 성장의 과정으로 보고 '성장하는 삶을 위한 도구'로서 공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처럼 공부를 중심으로 한 줄세우기와 편 가르기가 계속된다면 백약이 무효겠지만, 공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은 가능하다고 책은 진단했다. 중산층이 어려워지면서 공부에 들일 수 있는 재원이 모자라고 현재와 같이 공부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은 날로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 이런 진단의 배경이다.

두 저자는 공부 중독이 특정 연령대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자칫 '세대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가 바뀌면서 나타난 '사회의 문제'이자 '시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을 우리와 더불어 당대를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학력 간 임금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대학을 안가도 좋은 사회가 아니라 인생의 어느 때이건 공부하고 싶을 때 대학에 갈 수 있는 사회'도 '공부 중독' 사회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방안이다. 출판사 위고 196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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