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4주년기획특집❻ - 인문학

“울지마! 청년이여, 아직 개봉 안 한 人文學 봉고차가 있잖아” 박병수 기자l승인2015.10.1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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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하니 학자금 빚 3만2000달러, 쓸모없는 인문학 학위가 전부

<봉고차 월든>에서 교활한 자본음모에 허를 찌르는 소비자제·인문학적 철학 역설

최근 오바마 미 대통령은 한 대학 강연에서 “대학과 대학원 당시 빌린 학자금 원금 대출액이 상원의원 시절 때까지도 있었다”는 개인 신상을 공개했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전 의장은 “아들을 의과대학에 보내느라 빌린 학자금 대출이 무려 5억 원이었고, 상환이 마무리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학자금 대출상환 일대기(?)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꺼낸 적이 있다.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인물, 버냉키 이야기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다.

이렇듯 태평양 건너 미국 사회도 한국의 청년들이 사회 첫 발을 띠기 전 이미 신용불량자로 낙인이 찍혀 등급이 매겨지는 가슴 아픈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대출을 받아가며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꼭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대학을 다녀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건 공통사항이다. 그러다 거대한 콘크리트 성벽 같은 자본주의를 정면에서 오랫동안 응시했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노라면 “힘들어도 대학 나와 나름 괜찮은 직장 잡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불후의 전설은 여지없이 청중들을 지배하고 만다.

 

▲켄 일구나스는 지금도 차 한 대에 몸을 싣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고 있다. / Getty Images 멀티비츠

그러나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미국에 한 젊은 괴짜청년이 등장했다. 엄밀히 말하면 괴짜가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꽤 뚫고 학자금 자본주의의 허를 찌르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 청년은 미국의 ‘삼포세대’라 할 수 있다. 그의 분투기이자 성장기를 담은 이 책은 제목부터 1800년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월든>을 연상시킨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소로는 소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실험하기 위해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월든 호수가에 오두막을 짓는다. 그리고 1년여 최소한의 자립적 삶을 이어간 뒤 <월든>이란 불세출의 논픽션을 남긴다. 미국 뉴잉글랜드 아름다운 자연과 감응하는 청교도 정신의 좋은 사례인 이 책은 그동안 생태적 삶의 교과서로 꼽혀 왔다. 2세기가 지나 그 삶을 승계한 <봉고차 월든> 저자 켄 일구나스는 결코 자발적이지 않은 ‘월든’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대학을 다니느라, 그것도 취직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인문학을 전공하느라 막대한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 그러나 취직은 번번이 낙방이다. 남은 것은 3만2000달러 대출금과 뉴욕주립대 역사학·영문학 학사 학위뿐이다.

“호화로운 상자 가지려 돈 빌리고, 자유 포기 하지마”

켄을 가장 힘들에 한 것은 지긋지긋한 ‘학자금 빚’이었다.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는 학교를 졸업할 무렵 3만2천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다. 대학 생활 중에도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빚은 늘어만 갔다. 빚 압박에 탈모, 틱 장애까지 겪었다. 그래도 학교를 졸업하면 빚을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좋은 대학의 역사학과 영문학 학사를 갖고 있었고 몇 차례의 인턴, 오랜 아르바이트 경력을 지녔으니 “나를 채용하고 싶어 하지 않는 고용주가 어디 있겠어?”라고 생각했다. 캠퍼스 신문에서 영화평론을 쓰고 에디터로 일해서 글 솜씨만큼은 어느 정도 자신 있었다. 전국 25개 신문사의 유급 인턴에 지원했는데 모두 낙방하고 만다.

그러나 일구나스는 절망적 상태에서 1800m 블루클라우드 하이킹에 도전해 28시간 동안 혼자 걸으면서 한 번에 한 걸음씩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때까지 되돌아가지만 않으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알래스카에서 여행가이드, 보조 요리사, 모텔 청소부로 일하는 동안 학사 학위에 걸맞은 ‘그럴싸한 직업’만이 인생의 최선의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후 멕시코만 보호봉사단원, 알래스카 게이츠 오브 더 아크틱 국립공원 산간지역관리원, 택배원 등 해 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뉴욕주의 집으로 돌아갈 때는 비행기 삯이 아까워 한 달간 히치하이킹을 한다. 3년여 만에 대출금을 모두 갚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방랑을 하거나 모험을 해야만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음에 품는 것도 자유임을 배운다.

이제 빚에서 해방돼 자유를 얻은 그의 다음 목표는 듀크대 대학원 인문교양 프로그램에 진학하는 일이다. 목표는 빚을 지지 않고 대학원을 마치는 것으로 정한다. 알래스카에서 지내며 소로의 삶에 반해 있었다. 소로가 <월든>에서 말한 “철길 옆에 놓인 가로 1.8미터, 세로 0.9미터짜리 상자”를 떠올린다.

“반드시 더 크고 호화로운 상자를 얻기 위해 돈을 빌리고 자유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듀크대 대학원의 합격통보를 받자 그는 ‘상자’로 봉고차를 떠올린다. 학비는 가장 싼 방법을 찾고 생물학연구소 실험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생활비로 직접 음식을 해먹으며 봉고차 생활자가 된다.

2세기 전 소로와 연결된 인문학적 사상

체육관에서 샤워를 하고 도서관에서 전기를 사용하며 캠핑용 버너로 끼니를 해결한다. 연구조교, 과외교사로 일해 기본 생계를 이어가면서 2년 반의 대학원 과정을 마친다. 이 생활이 소로의 <월든>만큼 유유자적한 건 아니다. 책은 듀크대 캠퍼스 주차장에 봉고차를 세워놓은 그가 누구에게 들킬세라 가슴을 졸이는 장면으로 시작해 과거를 반추한다.

듀크대에 재학 중인 백인 학생들의 평균 가구수입은 23만 달러에 이른다. 그 듀크대 주차장에 이 봉고차는 주차하고 있다. 봉고차 생활자의 첫 번째 원칙은 “봉고차 거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이었고, 두 번째 원칙도 “봉고차 거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이었다. 어느 날 창작 수업시간에 봉고차 생활에 대한 글을 썼다. 같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 봉고차 거주에 대한 비밀은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하지만 교수는 “좋은 글이야”라며 발표를 격려한다.

결국 그는 인문학이란 지적 자산과 함께 21세기형 생태적 삶의 모델을 만든다. 그리고 <월든>의 문체를 본뜬 책을 쓴다. “일주일에 40시간 이상을 끝장나게 일해야 한다면, 우리 시대의 중요한 실존적 문제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을 것이다. 만약 인간에게서 중력을 빼앗는다면 허공에 뜬다는 생소한 사실이 두려워 일단 땅에 발을 디디고 싶어 안달할 것이다. 자유가 우리의 두려움이라면, 빚은 우리의 중력과 다름없었다.”라고 술회한다. 일구나스와 2세기 전 소로를 이어주는 또 다른 끈은 인문학적 소양이다. 풍요로운 정신만이 궁핍한 생활을 보상해준다는 진리다.

“저는 이곳(듀크대)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사람은 단순히 빚이 없거나 소름끼치는 봉고차 안에서 돈을 아끼며 산다고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자신을 묶어두었던 그물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대부분 학생은 그저 자신과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빚을 진다’는 것에 대해 일구나스는 탄식을 한다. 오로지 교육받기 위해 빚을 져야 했다면 그들에게 뾰족한 방안이 있을 수 있겠는가를 되묻는다. 결국 그들은 “과거로 돌아가도 다른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일구나스는 역설한다. 자신의 모든 상황이 종료된 뒤 저자는 소로와 연결된 지점에는 인문학 소양 한 가닥을 건져 올린다. 이 비싼 대학교육 안에 인문학이 없다면 대학 그 자체도 학자금처럼 그저 하나의 그물이 될 거란 뜻이다.

‘어린 시절 뭐가 되고 싶었는지 떠올려라’

그는 잡지에 투고하고 유명인사가 된다. 봉고차 생활자 켄 일구나스는 유명세의 이유를 이렇게 분석한다. “우리는 대침체의 한복판에 있었다.” 2009년의 일이었다. 그가 봉고차로 흘러든 것은 미국의 무자비한 금융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빚을 졌기 때문에 월든의 삶과 미국 소비주의에 눈을 뜬 것은 아이러니하다.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빼면 일구나스의 처절함은 한국 대학생들과 비슷하다.

도대체 나라는 제대로 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수만 달러의 돈을 왜 대출해주는가, 뭘 믿고 해주는가. 혹시, 이 자본주의는 사회에 진출하려는 수만 명의 예비 사회인에게 대출을 해주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은 아닐까. 유리한 정도가 아니라 체제 유지의 관습적 행동은 아닌가. 자본의 음모는 2009년 금융위기를 겪은 뒤인 2015년 한국에서 더 교활하다. <봉고차 월든>에서일구나스는 이런 교활한 자본의 음모의 허를 찌른다.

주차장에 세워진 켄 일구나스의 볼보자동차 범퍼 스티커에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의 삶을 살아가라는 책의 주제를 집약한 ‘어린 시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했는지 떠올려라’는 경구가 붙어 있다.

►저자와의 일문일답

▲ <봉고차 월든>이후 어느 국립공원에서 자연을 지키며 두 번째 책을 쓰고 있는 켄 일구나스가 알래스카에서 인터뷰 답변을 보내왔다.<제공 : 마리에 클레르>

당신은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나?

20대 초반에는 빚을 갚는 것과 야생에서 사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그 두 가지를 이룬 후에는 책을 쓰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항상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인생을 살아왔던 것 같다. 나는 내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나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보다는 나 자신과 나의 바람 그리고 뭔가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느냐인 것 같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갈 때 ‘미래의 자신’을 위해 계획하는 게 아니라 현재 당신이 뭘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성공을 위해 사는 것보다는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성공을 위한 삶은 연봉이 높은 직업을 구하고 비싼 차를 모는 것처럼 사회의 기준에 나를 맞춰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정대로 산다면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사는 거다.

돈이 행복한 삶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돈은 행복과는 상관이 없다. 다만 음식을 먹거나 안전한 거처를 마련하거나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아주 기본적인 수준을 만족시킬 따름이다. 돈을 버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지금 내가 몰고 다니는 차는 한쪽이 굉장히 찌그러져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여전히 집이 없다. 그래도 괜찮다. 엄청나게 돈이 많은 건 아니지만 나는 빚도 없고 재정적으로 독립해 있으니까 말이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알래스카로 떠났다. 왜 하필 알래스카였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가 경험하지 못한 자연과 야생의 세계를 갈망해왔다. 나는 뉴욕 주의 공해가 가득한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항상 시끄러운 도로와 교통 체증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도시가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틀린’ 곳이라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은 진짜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이고 ‘옳은’ 곳이다. 내가 자연 속에서 산다면 뭔가 아주 중요한 걸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밤마다 그런 생각을 했고, 스물두 살이 되던 해 알래스카로 떠나며 내 인생이 바뀌었다.

월급을 받고 의료보험료를 내며 살아가는 안정적인 삶 대신 자유로운 삶을 계속 유지할 건가? 요즘 국립공원에서 일하고 있다. 일하지 않는 동안에는 책을 쓰거나 잡지에 글을 기고한다. 얼마 전부터는 의료보험료도 낸다. 비록 비정규직에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하고 야생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자유롭다. 나는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내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있는 위대한 특권을 가지고 있다. 진짜 자유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지금 어디에서 인터뷰 답변을 보내는 건가? 알래스카의 베틀스(Bettles)라는 작은 마을에 있다. 그곳에 있는 아틱 국립공원(Artic National Park)의 공원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알래스카의 자연을 지키기 위해 카누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다. 그리고 내 두 번째 책인 <미국 횡단하기(Trespassing across America)>를 쓰고 있다. 1천7백 마일에 달하는 거리를 하이킹하며 북미 대륙을 횡단했는데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송유관인 키스톤 엑스엘(Keystone XL)을 따라 여행했다. 내년 4월쯤 미국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자료제공 : 문학동네)


박병수 기자  pbs1239@usli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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