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률 위주·재정지원 빌미로 학문간 균형 깨뜨려

 

▲ 취업률 위주와 재정지원을 빌미로 기초·순수학문이 폐과 되는 등 학문간 불균형이 심각하다. 이에 대해 전공교수와 학생들은 "교육당국의 학문간 차별성을 무시한 무식한 정책이 사회 지식 생태계를 무너뜨려 물질화가 가속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사진은 배재대가 국문학과를 폐쇄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모습.

 

최근 대학들이 취업률이 높은 학과위주로 재편하면서 국어국문학 독어독문학 등 인문학 학과가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특성화사업, 대학구조개혁평가 등을 앞두고 대학들이 인문계열, 특히 어문계열 학과를 집중적으로 폐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구조개혁평가와 학과 특성화평가에서 취업률을 강조하기 때문에 대학들은 평가지표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교육당국의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평가에서 대학 정원감축에 가산점을 줬고, 취업률 수치 또한 중요 평가요소로 반영하면서 산업수요 중심으로 학과 재편을 유도한 것이 가장 큰 변화요인이 됐다. 그러나 상경계열은 학과 수가 오히려 증가했다. 전반적인 정원감축 추세 속에서도 공학과 의약계열은 유일하게 입학정원이 증가해 대학이 급속하게 실용학문 위주로 재편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2012, 2015학년도 4년제 대학의 학과별 입학정원 현황’에 따르면 인문계열 학과는 3년 전 976개에서 올해 921개로 줄었다. 불어불문학과 민속학과 철학과 유럽학과 등 55개가 사라진 것이다. 입학정원도 2012년 4만6108명에서 올해 4만2303명으로 3805명이 줄었다. 전체 정원이 감소했기 때문이지만 의약계열은 1616명이 늘었고 공학계열도 497명 증가하는 등 실용학문 계열 학과에서는 오히려 입학정원과 학과 수가 늘어나면서 대조를 이뤘다.

역시 기초학문에 속하는 자연계열 학과도 3년 사이에 17개가 없어졌다. 반면 사회과학 분야 학과는 40개가 늘었고 공학계열 학과도 31개 증가했다. 예체능계열 학과는 4개, 교육계열 학과는 3개 늘었다.

계열별로 보면 어문학 계열의 학과 수 감소가 두드러진다. 3년 동안 59개의 어문학계열 학과를 없앴다. 자연계열인 생물·화학·환경 관련 학과가 18개 줄어든 것에 비하면 어문학계열 학과 수 감소는 압도적이다. 수학·물리·천문·지리계열 학과도 8개 사라졌다.

약학계열 학과가 39개 없어진 것은 약대가 6년제로 전환한 탓으로 보인다. 의료계열 학과 수 증가 또한 의학전문대학원이 폐지되고 이를 학부 모집으로 전환한 게 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어문학계열 학과는 입학정원이 가장 많이 줄었다. 3년 동안 2778명 감소했다. 철학·사학 등 인문과학계열은 학과 수는 4개 늘었지만 입학정원은 1027명 줄었다. 인문계열 전체 입학정원은 3805명이나 감소했다. 학과 통폐합 대상은 인문계열이었음이 확인됐다.

▲3년새 사회계열 입학정원이 4353명이 줄어들어 가장 큰 감소세를 나타냈다.

입학정원 자체는 사회계열이 가장 많이 줄었다. 2012학년도에 비해 2015학년도 입학정원이 4353명 감소했다. 반면 사회계열은 오히려 학과 수는 40개 늘었다. 상경(경제경영)계열 학과가 18개, 사회과학계열 학과가 29개 늘고 법률계열 학과가 7개 줄었다. 이는 사회계열에서 경영경제·행정·도시·지역·언론 등 실용학문 위주의 신설학과가 많이 늘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입학정원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4년제 대학 전체 입학정원 33만3807명 가운데 경영경제계열 입학정원은 14.5%인 4만8417명이다. 대학생 7명 가운데 1명은 경제경영 계열 학생인 셈이다.

치료보건, 화공, 농림수산계열 학과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기 위해 정부가 정원감축 위주의 대학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입학정원이 500명이상 늘었다. 대학에서 순수학문 축소와 실용학문 위주의 재편이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교육부는 2013년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 평가부터 정원감축에 10%의 가산점을 부여했다. 재정지원 제한대학 평가에서는 취업률이 중요한 평가지표 가운데 하나였다. 그해 10월에는 모든 대학을 평가해 등급에 따라 정원을 차등 감축하는 구조개혁 방안(시안)을 공개했다. 지난해 특성화 사업을 선정하면서는 정원감축 비율에 따라 3~5점을 가산점으로 줬다.

내년부터 산업수요가 높은 분야의 학과 정원을 늘리는 대학에 평균 50억원에서 200억원을 지원하는 '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PRIME) 사업'이 시작되면 이런 현상은 더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대학가에서는 학과 통폐합이 가속화될수록 인문학 기반이 위축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문학 전공 교수와 학생들은 “취업률을 기준으로 하는 대학 평가와 재정지원 방침은 학문간 차별성을 무시하는 무식한 처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진후 의원은 "취업률 중심의 대학평가 정책으로 순수·기초학과가 축소되고 있음이 여실히 증명되었다"며 "산업계 수요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순수·기초학문의 사회적 토양을 어떻게 유지·발전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Usline(유스라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