❶ ‘대학간 네트워킹’으로 함께 살자 서열화·제살깎이식 경쟁보다 상호보완으로 '상생'

 

▲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 캠퍼스

 

‘대학간 네트워킹’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학들이 네트워킹을 하면서 적절한 역할분담을 통해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고 비효율을 제거하는데 있다. 대학을 개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대학 전체를 하나의 큰 틀로 보고 상생구조를 짜자는 것이 ‘대학간 네트워킹’ 구조개혁안이며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는 대학 서열식 구조개혁과는 괘를 달리 한다.

현재 교육부 구조개혁방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떻게 고등교육 생태계의 구조가 개선되고, 교육의 질적 담보를 갖고 있느냐”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감축하는 대학구조개혁만 생각했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지역경제, 대학에 종사하는 수많은 교직원의 생계 등등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의 필요성 제기론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획일적인 평가기준을 적용해 대학 간 서열화를 부추기고 대학의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 속에 지방대와 전문대가 반발하고 있다.

교육부의 학과·전공별 특성화만으로는 대학구조개혁은 성공할 수 없고 대학 정원감축으로 끝나고 말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문학이나 이과와 같은 기초학문 분야는 고사되고 대학이 전문 학원처럼 취업을 위한 기술실용 위주로 전환돼 대학의 본질을 잃어버려 대학의 사회 속에서의 기능과 역할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는 지적도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지난 6월5일에 발표한 대학구조개혁평가 1단계 발표까지의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대학은 질 향상보다는 교육부 평가 지표 맞추기에 급급했고 학내 구성원 간의 갈등과 모순이 커져서 경쟁력 제고는커녕 대학 발전의 원동력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이러면서 논의의 불씨를 계속 지피우고 있는 것이 ‘대학간 네트워킹’이다. 대학간 네트워킹은특정 강자가 지배하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자칫 생태계 자체가 파괴되면 나중에 남는 자가 자기 자신을 잡아먹고 파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각 대학끼리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으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학과나 전공의 특성화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대학 자체의 특성화를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인문대학처럼 학부중심으로 재편하거나 대학 전체를 기초 분야 등으로 특성화하는 것이다.

대학평가도 같은 그룹끼리 해야 한다. ‘오렌지와 애플’의 맛을 같은 잣대로 잴 수는 없다. 미국의 경우 대학랭킹을 매길 때 전국대학, 지역대학, 인문대학 등으로 나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경우 종합대학인 캘리포니아대(UC), 지역대학인 캘리포니아주립대(CSU), 커뮤니티 칼리지인 2년제 주니어 대학 등 계열별로 나뉘어 있다. 이들은 상호 유기적이고 보완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 구조는 196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4년제와 2년제 주립대학들이 대학연합을 형성하면서 출발했다. 이 연합에 참여한 각 대학의 기능을 연구중심대학(UC)-교육중심대학(CSU)-산업중심대학(CCC)의 세 단계로 특성화했는데, 캘리포니아대학(UC·4년제)은 고교 졸업 성적 상위 12.5%, 캘리포니아주립대학(CSU·4년제)은 33.3%의 학생을 받도록 했다. 1960년 당시 성격이 비슷한 4년제 주립대 30곳이 난립하면서 지역 고교졸업자의 50~60%가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비효율적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대신 UC와 CSU는 정원의 40%를 편입으로 채워야 한다는 규정을 둬, 2년제인 캘리포니아 커뮤니티 칼리지(CCC) 학생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편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계열 간 상생 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의 하나가 편입학 제도이다. 스탠퍼드에서도 가까운 쿠퍼티노 시의 디앤자 칼리지(De Anza College)의 경우 지난해 2학년을 마친 약 5000명의 학생이 4년제 대학에 지원하여 UC 계열에 727명, CSU 계열에 1225명 등 절반가량이 편입학 허가를 받았다. 연구중심대학의 역할이 분명해지면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1995년 이후에만 노벨상 수상자가 12명 나왔고, 영국 <더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30대 대학에 UC가 5곳이나 포함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이외에도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일본의 ‘교토 모델’을 참고해 지역대학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994년 교토 지역의 국·공·사립대 37곳은 ‘교토대학센터’를 설립하고 이를 매개로 인턴십이나 정규 수업을 공동으로 운영해왔다. 1998년 1억 엔의 출연금으로 ‘대학 컨소시엄 교토’라는 재단법인으로 전환됐다. 2000년에는 참여 대학이 공동으로 활용하는 캠퍼스도 만들었다. 교토가 전통적인 도시임에도 닌텐도 등 전자공업이 발달한 것은 이러한 대학간 협력 체제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지역경제에 밀착한 지방대가 발전의 축인 만큼 우리나라 지방대들에도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필요한 방식으로 나가면 모두가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역별 대학 네트워크가 활성화하면 국가 균형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인환 U's Line 부설 미래교육정책연구소 부소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 체제는 대학 간 학문의 중복성, 학위의 남발, 특성화 상실 등 재정 투입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소가 상존하기 때문에 재원의 효율성을 살릴 수 있는 구조로 변경하면 대학을 폐쇄하지 않아도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제기하며 “39개 국립대 중 10개를 UC와 같은 연구중심대학으로 특성화하고, 일부 부실사학을 국공립화한 뒤 연구중심대학을 제외한 기존 국·공립대와 함께 CSU·CCC와 같은 형태의 대학으로 재편하는 것이 캘리포니아 구조조정을 받아들인 한국식구조조정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부소장은 “이런 구조조정 골격으로 공공성을 강화한 국·공립대 뼈대를 갖추는 것이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고등교육체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동취재 : 김재원·윤태은·왕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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