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호쿠대(東北大) - 100년 전 설립 당시부터 연구로 특성화… 등록금 등 제도 요인 더해 지역거점 국립대 고루 강세

지역거점대학은 단순히 교육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넘어선다. 그 지역의 동력이며 문화의 중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학은 수도권집중화 현상이 이제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지만 개선될 여지는 보이질 않는다. 수도권과 교육당국이 그 기득권이 놓지않으려는 이유와 문제의 심각성 정도를 감지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 수도권 비대화 편중화는 결국 이 나라를 좀먹는 비상시국이다. 본지는 이런 의미에서 외국의 모범적 지역거점대학육성 사례와 우리나라 교육당국이 알아둬야 할 선진적 제도 특집을 해외시리즈로 엮는다.<편집자>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 센다이시 내 위치한 도호쿠대는 노벨상을 4번이나 거머쥔 공과대학 중심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한다. 도호쿠대학교(東北大)는 일본에서는 도쿄대, 교토대에 이어 1907년 세 번째로 세워진 제국대학(현재 일본 전역에 도쿄대 교토대 도호쿠대 오사카대 홋카이도대 규슈대 나고야대 등 총 7개)이다. 지금은 제국대학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지만 지역 발전을 위해 국가가 지역별로 세운 국립대를 뜻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대 경북대 등과 같은 지역거점국립대인 셈이다.

한국은 대학서열을 일명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로 시작한다. 1위가 서울특별시 거점국립대인 서울대라면 2·3순위는 연세대와 고려대라는 사학이 차지하고 있다. 3위 이후로도 경쟁력이 있는 10위권 이내 대학은 서울소재 사립대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사정과는 일본의 거점국립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최근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등 지역거점국립대들은 10위에도 가까스로 턱걸이를 해야 하는, 지역거점대학이 아닌 한낱 지방에 소재하는 '지방대' 취급을 면치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거점국립대의 특성화를 고려해 대학을 육성했다. 학생과 학부모가 체감하는 전통적 대학서열이 1위가 도쿄대라면 2위는 교토대, 3위는 도호쿠대(東北大). 1~3위 대학의 공통점은 거점국립대라라는 점이다. 한국과 다른 점은 1위는 수도인 도쿄에 위치한 거점국립대이지만 2, 3위는 소위 지역거점국립대다. 명문 사학들은 순위권 내에 '명함'도 못 내민다. 우리나라로 치면 1위는 서울대, 2위는 부산대, 3위는 경북대인 셈이다.

그런데 일본의 교육제도를 그대로 본떠 출발한 한국은 왜 지역거점국립대의 위상이 이리도 추락했지만 일본은 어떻게 지역거점대가 여전히 초강세를 유지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지역별로 국립대를 세운다는 차원에서 벗어나 출발부터 특성화한 것이 일본 제국대학의 특징이며 시작이었다.

가령 도쿄대는 관료 양성을, 교토대는 인문학 중심의 학자 양성을, 도호쿠대는 공학 연구중심을 목적으로 설립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전통이 대학 설립 한 세기가 넘는 지금까지 탄탄하게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이 일본 거점국립대의 가장 큰 강점이 됐고 세게적인 경쟁력을 가추는 자생력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특성화 대학을 이미 100년전부터 생각한 것이다.

특히 도호쿠대는 재료공학 전공을 중심으로 세계 대학 중에서도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공대에서 노벨상을 4번(1987년, 1999년, 2002년, 2007년)이나 받았을 정도로 학문적 연구의 수준은 가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입시와 등록금제도 지역거점국립대 강점

이 같은 거점국립대의 단단한 기반은 단순히 특성화에만 있지 않다. 전통과 입시제도, 등록금제도가 독특히 구분돼면서 지역거점국립대의 강점은 튼튼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국립대와 사립대 입시가 철저히 이원화 돼있다. 일본의 경우 국립대를 갈 때만 대학수학능력시험 같은 국가 주관 대입시험을 치룬다, 반면 사립대는 대학별고사만 치른다. 사학은 기여입학제를 허용하기 때문에 성적으로만 입학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명문 사학은 초등학교, 유치원까지 학교를 운영하고 있어 같은 재단의 유치원, 초·중·고를 나온 학생은 쉽게 해당 대학에 갈 수 있는 방식이다. 가령 게이오유치원과 게이오초·중·고를 나온 학생이면 게이오대학에는 쉽게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 입시제도의 특징이다. 반면 국립대는 철저하게 성적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지역에 있는 국립대라도 인정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등록금이 사학에 비해 대폭 적은 것도 특징이다. 일본 내 86개 국립대의 수업료는 연간 53만5000엔(800만 원가량)으로 동일하다. 공대든 인문대든 의대든 상관 없이 국립대를 다니는 학생은 같은 학비를 지불한다. 반면 사립대는 국립대에 비해 적게는 2배 많게는 10배가 넘는다. 사립은 보통 인문사회계열은 120만 엔, 공대는 150만 엔, 의대는 500만~700만 엔가량까지 상당히 높다.

도호쿠대 대학원 법학연구과 김숙현 교수는 "설립 특성에 기반한 전통에 등록금 및 입시제도 등 요인이 더해져 일본은 국립대들이 지역별로 골고루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물론 일본에서도 수도권(도쿄) 선호현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호쿠대 등 지역거점국립대는 여전히 학생이 가고 싶어하는 대학"이라고 말했다.

우수생들이 지역국립대를 찾아 오기 때문에 외지 학생 비율도 높은 편이다. 도호쿠대의 경우 센다이를 비롯한 미야기현 지역 학생의 비중은 40% 정도다.

■지역대가 아닌 아시아, 세계 중심 대학 지향

도호쿠대 등 일본 지역거점대학들은 지역이 아닌 아시아, 세계를 지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도호쿠대 이념은 ▷연구제일주의 ▷실학존중 ▷문호개방이다. 연구를 통해 세계를 선도할 기술개발, 실용을 강조한 학문, 교육과 연구에 장벽을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학교는 '최고 수준의 교육거점 대학, 세계와 지역에 열린 대학, 세계를 선도하는 대학'을 내세우면서 '일본 내 지역'이 아닌 '글로벌 거점대학'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세계적 강점의 공대 하나만으로도 도호쿠대는 많은 외국인 유학생들을 불러 들인다. 현재 학생(대학원생 포함) 1만6000명 중 해외 유학생은 75개국 1346명이다. 이 가운데 단과대별 분포를 보면 공대가 425명이나 돼 30% 이상을 차지한다. 전체적으로 한국인 유학생은 200명으로 중국(608명) 다음으로 외국인 유학생 수가 많다.

도호쿠대 이노우에 아키히사 총장은 "연구를 기반으로 '세계로 열린 대학'을 지향하며 100년 이상 경험을 축적해 온 것이 우리 대학의 최대 강점"이라고 말했다.

# 산학연계 활성화 市가 징검다리로

- 8년전 대학-시 협의체 구성, 교수·공무원 함께 기업 방문

- 대학 강점 지역 모토로 삼기도

센다이시는 대학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방식으로 지역대학 발전에 일조하고 있다. 2006년 설립된 '가쿠도(學都)센다이컨소시엄'은 센다이시가 산학관 연계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지역대학 협력기구로, 대학은 물론 기업, 시민, 센다이시가 참여하는 협의체다.

이처럼 센다이시가 산학관 연계를 적극적으로 주도한 것은 8년 전 부터다. 일본도 한국처럼 지역붕괴 위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센다이시 산업창출부 산학연휴(産學連携)추진과 미야타 히로유키 과장은 "20년 전 지역붕괴 위기가 시작되자 당시 지역살리기가 절실한 과제였고 지역을 일으키는데는 대학의 역할이 컸기 때문에 국가 역할 정도로 치부했던 대학발전에 시도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며 "센다이시는 지역거점대인 도호쿠대를 중심으로 산학관 연계 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필요한 것,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기구를 만들었다. 이 기구는 도호쿠대 교수를 중심으로 미야기대 도호쿠가쿠인대 등 지역대학 교수들로 구성돼 있다. 기구 소속 교수가 시 공무원과 함께 지역기업을 방문해 기업의 기술적 어려움을 대학 연구진과 공동으로 해소하는 방식이다. 이 기구는 실제 매출로 이어져 기업들에게 호평받고 있다. 도요타자동차 JFE(철강회사) 기린맥주 세이코 파나소닉 등 전자 및 식품 관련 업체들이 강세인 이 지역에서 기업인과 대학교수가 매달 또는 연간 한 차례 모임을 정기적으로 갖는다.

센다이시는 '아이디어 시티'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인 도호쿠대의 강점을 살려 '연구개발을 위주로 새로운 발상을 일으키는 도시'라는 점을 강조해 지자체 이미지와 경제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 인터뷰 - 이노우에 아키히사 총장

"우리 경쟁 상대는 일본 수도권 아닌 세계의 대학들입니다"

"일본 7개 지역별로 산재해 있는 옛 제국대학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모두 세계적으로 발전해 나가자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 제국대학 중 하나인 우리 대학은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연구에 매진, 각종 성과를 내면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고 있습니다." 도호쿠대 이노우에 아키히사 총장(사진)은 대학의 지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의 지역거점국립대학들은 경쟁 상대가 수도권(도쿄대)이 아닌, 세계 대학이라는 것이다.

'연구를 강조한 세계 대학'은 도호쿠대 역사에서도 드러난다고 그는 설명했다. 특히 대학 이념인 중 하나인 문호개방을 강조했다. 교육과 연구에 장벽을 없앤 것이 세계를 지향할 수 있는 근간이 됐다는 것이다.

"1945년 이전까지 일본 대학은 여학생들을 받지 않았는데 우리 학교는 1913년 일본 정부의 경고에도 여학생 3명의 입학을 허용했습니다. 여학생을 받은 첫 대학이 된 것이죠. 또한 1945년 태평양전쟁 이전까지 일본 전역에 중국 유학생이 478명이었는데 도호쿠대 출신이 가장 많았습니다. 당시 1, 2호 외국인 유학생 박사가 모두 도호쿠대 출신일 정도였죠. 이러한 전통이 100년 이상 축적되다보니 자연스레 세계를 지향하는 대학이 됐습니다."

이노우에 총장은 무엇보다 지역거점대로서 센다이시민의 각별한 애정을 강조했다. "센다이시민 20명 중 1명은 도호쿠대와 관련이 있을 정도로 지역밀착도가 높다. 도쿄시민이 도쿄대에 가지는 마음보다 애착심이 강한 것이다"며 "대학도 센다이시, 미야기현, 정부와 협력해 산학관 연계를 활성화하는 등 지역발전을 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민의 애정은 지역대학 발전에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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