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건 가톨릭대 생명공학과 교수

암 치료 장애요인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것은 항암제 내성이다. 암 환자에 대한 항암화학요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암세포는 파괴되고 정상세포는 제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한 용량의 항암제 투여가 필요하다.항암제에 대한 약제내성이란 암세포를 죽일 수 있는 양의 항암제를 투여했음에도 암세포가 파괴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암세포가 약제내성 P-gp 단백질이 과발현 됨으로써 항암제를 세포 바깥으로 배출하고, 이로 인해 항암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기존에는 P-gp 단백질을 억제해 항암제 내성을 극복하려는 연구가 다수 진행된 바 있다. 하지만 해당 단백질은 암세포 뿐 아니라 장관상피, 간 조직, 신장의 근위관 세포 및 혈액-뇌 장벽 등에 광범위하게 발현돼 있어 억제 시 부작용을 나타낼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애물로 지목됐다.

다약제 내성문제 극복을 위해

▲나건 가톨릭대 생명공학과 교수 ⓒ 나건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암세포의 다약제 내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빛에 반응하는 약물전달체를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나건 가톨릭대 생명공학과 교수팀이 빛에 반응하는 나노입자를 이용, 새로운 나노약물전달체를 개발한 것이다. 해당 전달체는 빛에 반응해 세포막을 붕괴시키는 물질을 만들어 약물이 세포 내로 유입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저희팀은 암세포의 항암제에 대한 내성 문제를 해결해 효과적인 암 치료를 수행할 수 있도록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광화학 세포 내재화(photochemical internalization, PCI)’ 기술을 기반으로 빛에 반응하는 약물전달체를 개발한 거죠.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분자량이 큰 고분자와 특정 파장의 빛에 반응하는 광감각제를 접합시켜 전달체를 만들었습니다. 전달체 내부에 항암제를 봉입시켜 빛에 반응할 수 있는 나노약물전달체를 제조한 것이죠. 제조된 나노약물전달체에 적합한 파장의 광선을 조사시키면 광감작제가 활성화 돼 활성산소를 만들어내고, 이렇게 생성된 활성산소는 암세포의 세포막에 손상을 줘 항암제를 암세포내부까지 전달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암세포의 세포막에 구멍을 뚫어 보다 효과적으로 항암제를 전달하는 방법을 개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지금까지 나노 입자를 이용한 다양한 암 치료방법이 제시돼 왔지만 항암화학요법을 이용한 암 치료에 있어서 장애가 되는 요소 중 하나는 항암제 내성문제였다. 암환자에 대한 항암화학요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상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는 항암제 혈중농도에서 환자는 부작용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하고 암세포는 살해돼야 했다. 하지만 항암제 내성암이 발생하면 암세포를 죽일 수 있는 만큼의 항암제를 투여했음에도 내성 암세포 막에 있는 펌프 단백질이 항암제를 세포 밖으로 배출시켜 항암제 효과를 저해한다. 이로 인해 암세포가 죽지 않았고, 항암제 내성 문제는 악순환이 계속됐던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건 교수팀은 기존 광역학치료에 사용된 광감작제 원리를 다른 발상으로 이용했다. 광감작제 원리는 활성산소에 의해 세포막을 붕괴함으로써 세포를 사멸시키는 원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기전에 영감을 얻은 나건 교수팀은 해당 원리를 항암제 내성암세포에 적용하면 치료에 효과적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후 연구를 시작했다.

“광감작제가 빛을 받았을 때 만들어지는 활성산소가 세포막을 붕괴시키면 항암제 내성의 원인으로 꼽히는 펌프단백질이 항암제를 세포 밖으로 퍼내지 못하게 합니다. 때문에 항암제 내성암세포 내로 항암제가 효율적으로 전달되죠.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개발된 나노약물전달체의 효과를 검증하기위해 나건 교수팀은 나노약물전달체에 빛을 조사했을 때 항암제 내성 암세포의 세포막 손상을 유도시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또한 약물이 세포내로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항암제 내성 암세포를 이식한 생쥐실험에서 암세포 성장 억제 효과를 확인한 결과 대조군에서는 항암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항암제가 봉입된 나노전달체를 처리한 후 광선을 조사했을 때는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는데 높은 효과가 있었어요. 연구를 통해 이를 확인했죠.”

광역학치료와 나노약물전달시스템의 융합연구

항암제 내성 암세포에 작용하는 나노약물전달체의 모식도. 광감작제(붉은색)를 포함한 양친매성 고분자(왼쪽)와 항암제(녹색)의 자가조립을 통해 나노입자(가운데)를 제조한 후 빛(레이저)을 조사하면 나노입자가 활성산소를 생성해 세포막 손상을 유도하면서 항암제가 항암제 내성 암세포로 효율적으로 전달된다. ⓒ 한국연구재단

나건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암세포 치료에 이용되는 광감작제를 약물전달체에 도입, 항암제 내성 극복을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감작제가 만든 활성산소가 세포막을 붕괴시키면 항암제 내성의 원인으로 꼽히는 펌프단백질이 항암제를 세포 밖으로 퍼내지 못할 뿐 아니라 항암제의 유입 자체는 훨씬 쉬워지게 되는 것이다.

동물실험을 실시한 결과 나건 교수팀의 연구는 기존보다 훨씬 적은 용량만 투여해도 효과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고용량의 항암제를 투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탈모와 빈혈, 구토, 설사 등의 부작용을 극복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나건 교수팀이 해당 연구를 진행한 것은 암치료를 받으며 항암제 내성으로 인해 부작용의 고통을 받는 환자들을 접하면서다. 나 교수는 “암치료를 받으면서 환자들은 암세포의 항암제 내성 기전 때문에 더욱 높은 용량의 항암제를 투여 받는다”며 “하지만 이로 인해 암환자들이 부작용은 커지게 된다. 암환자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의약품을 개발하고 싶었다. 때문에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고 이야기 했다.

물론 연구 과정 가운데는 크고 작은 어려움도 존재했다. 무엇보다 빛을 이용해 진행하는 실험인 만큼 최적의 조건을 찾아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빛을 이용해 치료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에서 실험을 진행해야 합니다. 빛의 세기, 조사시간, 약물의 농도 등 다양한 실험조건을 수정하면서 최적의 조건을 찾아야 했어요. 때문에 1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렸죠. 전달체를 제조하고 정제하는 조건을 찾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연구에 제 1 저자로 참여했던 학생이 오랜 고생 끝에 조건을 찾았을 때는 정말 기뻐하더군요. 그 모습이 아직도 잊히질 않습니다.”

이번 연구는 나노약물전달체를 이용해 항암제를 투여할 경우 기존 항암제 용량보다 훨씬 적은 양만 투여해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손꼽힌다. 또한 빛을 이용하는 기술인만큼 항암치료 뿐 아니라 다양한 약물전달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기존의 광감작제를 항암제와 함께 적용하는 광화학적 세포내재화 방법은 20여 년 전 노르웨이에서 개발돼 현재 임상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은 나노약물전달체 기술과 광화학적 세포내재화 기술의 융합기술이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빛과 나노전달체를 동시에 이용해 항암제 내성을 치료하는 세계 최초의 기술로써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죠. 앞으로 해당 연구를 더욱 심화시킬 것입니다. 이를 통해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실질적으로 실용화 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해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을 주는 신규 의학기술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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