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연세대 대학원신문>

지난달 26일 경남대 인문관에서는 '대학과 지식사회의 붕괴'를 주제로 2014년 비판사회학회 춘계학술대회가 열렸다. 경남대 인문과학연구소가 공동 주관한 이날 학회에서 윤종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본인의 논문 '20세기 현대 교육제도의 모순과 오늘의 대학'의 내용을 발표했다.

윤종희 교수는 직업주의·실용교육과 대학이 애초부터 상호 대립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말로 시작했다. "고등교육이 현대화·대중화되는 초기부터 나타났으며 심지어 중세 유럽에서도 대학은 성직자, 법률가, 관료 등 전문직에 진입하는 통로였다"고 제기했다.

그렇다고 실용적 목적과 무관한 이른바 '순수학문'과 진리 탐구의 장으로서 대학의 이상이 허구였던 것도 아니다. 윤 교수는 "역사적으로 대학은 순수학문의 탐구와 전문직의 양성, 또는 개인의 지적 능력 향상과 직업적 경력의 준비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해왔다"면서 "이 두 가지 목적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전제하면서 고등교육의 발전을 지탱하는 두 축으로 기능해 왔다"고 설명했다.

대안 제시하는 교육개혁의 정치

하지만 오랫동안 유지돼온 두 축의 균형은 장기적 경제 불황의 직격탄을 맞으며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재정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대학 개혁'(?) 드라이브는 대학 사회를 뿌리째 뒤바꿔 놓았다. 미국을 예로 들면 미국 정부는 1970년대 중반부터 재정 지원 대상을 대학 자체에서 학생으로 전환했는데, 이는 '학생 유치'를 둘러싼 대학 간 출혈 경쟁을 촉발하는 것이었다. 이어 1980년대부터는 교육 비용을 사유화하고 연구 분야를 상업화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 대학들의 현실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러한 정책 변화가 가져올 폐해는 불 보듯 빤했다.

"교육비의 사유화는 학생의 직업주의적 태도를 강화한다. 학생의 가치관 자체가 변했을 수도 있지만 졸업 후 학자금 대출을 상환해야 되기 때문에 직업적 경력을 우선 추구하는 것이 불가피할 수 있다. 게다가 높은 교육 비용으로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학비 또는 생활비를 마련하는 파트타임 학생이 증가한다. 이 역시 순수학문의 탐구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이번 세월호 참사도 일방향적인 교육제도 문제와 무관치 않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들은 15일 성명을 발표해 "우리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 왔다면, 그리하여 사회가 온전한 개인, 건강한 시민들로 구성되었다면, 청해진과 같은 선박회사는 간판조차 내걸 수 없었을 것이고 정부의 초기 대응 또한 이처럼 불가사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경제와 기업,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경쟁 위주의 교육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정부 스스로 변화만을 기다리는 건 현명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윤종희 교수는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에 관한 논쟁이 무성하지만 그저 정부 정책을 성토만 할 뿐, '다른 개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비판 진영의 한계와 무기력도 문제라고 꼬집는다. "현실과 무관한 사변적인 이상을 나열하는 데 그치거나, 단편적인 문제들, 이를테면 과도한 입시 경쟁, 교육 비용 증대, 대학 내 통치구조, 성과급 연봉제 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에서 이슈화에 성공한 '반값 등록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서 대학에 정원 감축 등 비용 절감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대학 재정난을 더욱 심화시켜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예의 구조조정 반대의 목소리가 높지만 윤 교수는 '불가피'한 흐름이라며 지금이야말로 '교육개혁의 정치'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추진할 것인가'다. 과연 지금처럼 직업교육을 더 강화할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쟁점화를 해야 한다."

전공학과제 혁신 고민해야

개혁의 핵심은 역시 순수학문과 상하위 전문직 교육, 지적 능력 향상과 직업적 경력 준비 두 축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대학의 이상을 주장하면서 직업교육을 부정하거나 현실의 필요를 강조하면서 순수학문을 상대화하는 것 모두 오늘의 고등교육을 개혁함에 있어서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윤종희 교수는 고등교육을 사실상 계열화한 미국 사례에 주목한다. 미국은 최상위 사립대학과 주립 연구대학 같은 엘리트 대학과 이른바 '대중 대학'으로 계열화되어 순수학문과 직업교육을 특화했다. 물론 엘리트 대학도 직업주의 영향으로 순수학문 전공자 비율의 하락을 피할 수 없었지만 이는 다른 나라의 우수한 두뇌 '영입'으로 해결하고 있는 미국이다.

반면 "한국은 대학이 위계화되어 있지만 차별화되어 있지는 않다"고 윤 교수는 지적한다. "상급대학이나 하급대학 모두 거의 동일한 전공학과제 구조를 채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수진도 유사한 형태로 구성한다. 수업료도 별로 차이가 없다. 심지어 지방의 사립대학교가 최상위의 서울대학교보다 더 비싸다. 이처럼 연구대학과 교육대학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고등교육의 불균형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로 나타난다."

교육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대학 내부의 자발적인 개혁도 함께해야 한다. 윤 교수는 무엇보다 "지금처럼 각급 대학교가 처해 있는 특수한 상황, 그리고 단과대학과 전공학과의 특성과 무관하게 동일한 형태의 전공학과제를 유지하는 것은 오늘의 고등교육에 다소 부적합한 것으로 보인다"며 전공학과제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고등교육이 대중화되고, 직업주의적 형태로 변형된 상황에서도 전공학과제 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스럽다"며 "오히려 대학교와 단과대학의 특성에 맞추어 순수학문(일반교육)과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좀 더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협조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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