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고려대 김예슬씨 이어 ‘지발적 퇴교’ 선언

5월 7일 오후 2시30분 중앙대 철학과 학생이 자퇴를 선언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 둔다. 정의가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다”라는 대자보를 써 왔고 그 글을 읽어 내려가며 자신이 대학을 그만 두는 이유를 천천히 설명했다. 그는 중앙대 철학과 김창인(24·위 사진)씨다. 이런 모습은 언젠가 봤던 낯익은 모습이다.

2010년 3월 10일 고려대 경영학과 김예슬 씨(왼쪽 사진)가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며 '자발적 퇴교를 앞둔 김예슬' 씨가 쓴 전지 3장의 글에는 끊임없는 불안감과 경쟁만 조장

하는 대학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을 했다. 당시 대학가는 물론 사회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비싼 등록금과 취업난의 수렁에 빠져 있는 '88만원 세대' 대학생의 항변을 했다.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앞질러 가는 친구들에 불안해하면서" 대학 관문을 뚫고 25년간 트랙을 질주했다는 고백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죽을 때까지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나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그는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며 "더 거세게 채찍질 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자보에는 대학과 기업, 국가를 향한 또래 세대의 울분도 실렸다. 그는 "이름만 남은 '자격증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라며 "국가와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 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새 자격증도)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고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며 "큰 배움 없는 '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적자세대'가 돼 부모 앞에 죄송하다"고 적었다.

7일 김창인 씨가 김예슬 씨에 이어 '자발적 퇴교‘를 선언했다.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직후인 2009년 중앙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이날 “2008년 당시 수험생이었던 나는 중앙대 학생이 되고 싶었다”며 “그러자 이제는 현실의 벽은 너무나 거대하고 완고해서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때문에 그저 포기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하지만 대학은 기업이 아니고 나 또한 상품이 아니다. 난 결코 그들이 원하는 인간형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저항을 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2010년 4월 8일 중앙대생 김창인씨와 노영수씨는 한강대교 구조물 위에 올라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 대기업식 구조조정 반대"라는 플랜카드 시위를 벌였다.

김창인 씨는 잊어버리지 않는 날이 있다고 했다. 2010년 4월 8일, ‘중앙대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라는 플랜카드를 들고 한강대교에 올랐던 날이다. 당시 중앙대는 18개 단과대학을 10개로, 77개 학과를 46개로 줄이는 구조조정안을 확정 발표했다. 그는 자퇴를 알리는 선언문에서 그 당시 행동을 두고 “대학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순진하게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자퇴 선언문에서 “학교본부는 나의 피선거권을 박탈하기 위해 각 과 학생회장들을 징계처분, 학군단과 교환학생 자격박탈, 학생회비 지원중단 등 갖가지 방법으로 협박했다”며 “학생들은 날 종북좌파라 했고 어느 교수는 나를 불구덩이에 타죽으러 가는 사람이라 했다. 그렇게 나는 절벽 앞으로, 불구덩이로 내몰렸다”고주장했다.

그는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중앙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중앙대를 사랑하고 중앙대가 명문대학이 됐으면 좋겠다”며 “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중앙대의 교훈이다. 나는 떠나더라도 이 교훈은 잊지 않으려 한다.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한다. 지금 대학엔 정의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께서도 걱정하고 계시지만 오랫동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라며 “학교를 그만둔 다음에는 군대에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앙대학교 김창인 자퇴선언 전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정의(正義)가 없는 대학(大學)은 대학이 아니기에.

나는 두산대학 1세대다. 2008년, 두산은 야심차게 중앙대를 인수했다. 명문의 반열에 올려놓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수험생이었던 나는 중앙대 학생이 되고 싶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 기업의 말처럼 나는 내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하지만 두산재단과 함께 시작한 대학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박용성 이사장은 대학이 교육이 아닌 산업이라 말했다. 대학도 기업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중앙대라는 이름만 남기고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했다. 그리고 불과 5년 만에 그의 말은 실현되었다. 정권에 비판한 교수는 해임되었고, 총장을 비판한 교지는 수거되었다. 회계를 의무적으로 배우면서, 성공한 명사들의 특강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했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교양 과목은 축소되었고, 이수 학점은 줄어들었다. 학과들은 통폐합되었다. 건물이 지어지고 강의실은 늘어났지만, 강의 당 학생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에서 대자보는 금지되었다. 정치적이라고 불허됐고, 입시 행사가 있다고 떼어졌다. 잔디밭에서 진행한 구조조정 토론회는 잔디를 훼손하는 불법 행사로 탄압받았다. 학생회가 진행하는 새터와 농활도 탄압받았으며, 지키는 일이 투쟁이 되었다. 중앙대는 표백되어갔다.

대학은 함께 사는 것을 고민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학문을 돈으로 재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처절하게 싸웠다. 2010년 고대의 한 학우가 대학을 거부하고 자퇴라는 선택을 했을 때, 나는 무기정학을 받았다. 한강대교 아치위에 올라 기업식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분투한 대가였다. 대학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순진하게도 그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기업을 등에 업은 대학은 괴물이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5차례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고, 3차례의 징계조치를 받았다. 무기정학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내자 대신 유기정학 18개월의 처분을 내렸다. 유기정학 기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조조정 토론회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근신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징계이력은 낙인찍기였다. 받았던 장학금은 환수요청을 받았으며, 학생회장으로 출마할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학교본부는 나의 피선거권을 박탈하기 위해, 각 과 학생회장들을 징계처분, 학군단과 교환학생 자격박탈, 학생회비 지원중단 등 갖가지 방법으로 협박하였다.

그렇게 난 블랙리스트 대상이 되었다. 학생들은 날 종북좌파라 어느 교수는 나를 불구덩이에 타죽으러 가는 사람이라 했다. 그렇게 나는 절벽 앞으로, 불구덩이로 내몰렸다.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였을까.

대학에 더 이상 정의는 없다. 이제 학생회는 대의기구가 아니라 서비스 센터다. 간식은 열심히 나눠주지만, 축제는 화려하게 진행하지만, 학생들의 권리 침해에는 입을 닫았다. 학과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폐과되고, 청소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학생회는 움직이지 않는다.

교수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 시국선언을 했던 교수들이 학내에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탄압의 선봉을 자처하게 된 교수들도 있다. 대학의 본질을 찾는 학생들에게 교수들은 다치지 않으려면 조심하라는 말밖에 해주지 못했다. 자기 몸 하나를 건사하기 위해 모두가 비겁했다.

내가 이 대학에서 배운 것은 정의를 꿈꿀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의 벽은 너무나 거대하고 완고해서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때문에 그저 포기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모두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를 고민하고, 경쟁을 통한 생존을 요구했다. 그렇게 대학은 세일즈하기 편한 상품을 생산하길 원했다. 하지만 대학은 기업이 아니고 나 또한 상품이 아니다. 난 결코 그들이 원하는 인간형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저항을 해보려한다.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중앙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중앙대를 사랑하고, 중앙대가 명문대학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대학은 대학으로서 가져야할 최소한의 품위가 있어야 한다고. 진리와 정의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비록 중앙대를 자퇴하지만, 나의 자퇴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한다. 대학을 복원하기 위해 모두에게 지금보다 한걸음씩의 용기를 요구하는 재촉이기도 하다.

‘의에 죽고 참에 살자’ 중앙대의 교훈이다. 떠나더라도 이 교훈은 잊지 않으려 한다.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한다. 지금 대학엔 정의가 필요한 시기이다.

2014년 5월 7일 중앙대학교 김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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