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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새를 잡아와 (…) 그리고 남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새의 주둥이를 틀어막고 때리란 말이야 시퍼렇게 멍들 때까지 얼룩지지 않도록 골고루 때리는 게 중요해 잘못 건드려서 숨지더라도 신경 쓰지 마 하늘은 넓고 새는 널려 있으니 오히려 몇 마리 죽이고 나면 더 완벽한 파랑새를 얻을 수 있지 (…) 맞아서 파랗든 원래 파랗든 파랑새라는 게 중요한 거야"

성미정의 시 「동화-파랑새」의 한 대목이다. 1997년에 나온 시집(『대머리와의 사랑』, 세계사)에 실린 시인데, 시간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멀쩡한 새를 잡아다가 '골고루' 때려서 억지로 행복의 파랑새를 만드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독서모임의 학생들을 반국가단체 주도자로 바꾼 부림사건을 다룬 영화 「변호인」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맞아서 파랗든 원래 파랗든 파랑새라는 게 중요한 거야"란 구절도 울컥하게 되는 건 마찬가지다. '국민행복시대'의 행복이 국가가 "시퍼렇게 멍들 때까지" 때려서 만든 가짜 파랑새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아서다.

'안녕들 하십니까'가 전하는 메시지

2014년은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을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한 사람의 분신으로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고 휘발유를 몸에 뿌려 스스로 삶을 마감한 그의 죽음은 한국사회에 이 질문을 다시 던진다. '안녕하시냐'라고. 분신이 있은 후 꼭 5일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몸을 던진 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할 일이 너무 많다. 1초도 아깝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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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안녕들 하시냐'라는 별다를 것 없는 질문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릴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생이 붙인 대자보의 문구에 많은 이들이 뜨겁게 응답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다들 지치고 힘들기 때문이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다. 누군가 물어봐주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다들 앞 다투어 안녕하지 않다고, 너는 괜찮으냐고 외친다.

그런데 이렇게 안녕을 묻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다. 붙이자마자 초고속 철거는 기본, 대자보를 붙일 때마다 백만원씩 청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거나 '면학 분위기를 해치니 자제하라'는 공문이 내려오고, 그래도 쓴다면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요"(「변호인」)라는 사람들의 분노는 '비 오는 날엔 소시지빵'을 보도하는 공중파 간판 뉴스에, 연일 북한의 동향을 속보로 내보내는 종편 뉴스에 속절없이 묻힌다.

한편에서 여전히 '귀족노조'로 매도되고 있지만, 최장기간을 기록한 철도파업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불안과 무기력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민영화가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언제 이야기를 바꿀지 모르고, 지금도 충분히 나쁜데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겹친다.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그래서 개인들은 '신뢰' 대신 '불안'이 자리 잡은 사회에 안전망을 기대하는 대신 알아서 살아남기 위해 각개전투 중이다. 실패하면 그대로 끝, 재도전할 기회는 없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안정적인 직장을 잡지 못하면, 집을 얻지 못하면…… 넘어야 할 고비는 많고, 삐끗하면 각종 푸어(poor)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진다. 짙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아 더 무서운 괴물의 공포처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모두를 짓누르고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을게. 넌 꼭 행복해야 해"(브로콜리 너마저 「졸업」)라는 노래를 합창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엔 그만큼 진심이 가득하다.

최근 몇년간 신춘문예 응모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할 말 많은, 억눌린 것이 많은 세상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꾹꾹 눌러쓴 대자보든, 컴퓨터 화면이든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는 건 그래도 아직 건강하단 이야기다. 희망이 있다는 증거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KBS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출연진 사이에는 '개콘 장학금'이 있다고 한다. 여유있는 개그맨이 돈을 내서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동료에게 장학금을 주고, 그 수혜자가 또다른 동료를 위해 다시 장학금을 내놓는다. 누구도 부끄럽지 않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종의 공동체 안전망이다. 그런 점에서 2014년, 지금의 대한민국은 개그콘서트만도 못한 셈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뼛속 깊이 퍼렇게 골병 든 행복, 맞으면 맞을수록 강해지는 행복" 같은 거 필요 없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지금은 옆에 있는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반발짝이라도 다가서는 그만큼의 실천이 필요한 때다. 나의 '안녕'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안녕들'로 나아간다면, 얻어맞아 퍼렇게 변한 가짜 파랑새쯤은 얼마든지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2014년에는 '안녕하냐'는 인사가 일상적인 인사의 자리를 되찾기를 기대한다. 채현국 선생의 말(한겨레 인터뷰 2014.1.4)대로 어려운 시기에 절망하고 한탄하는 건 '장의사' 되는 길일 뿐이니까.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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