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고질적인 학벌문제 해결 가닥

서배스천 스런(Sebastian Thrun)을 알게 된 건 행운이었다. 그는 지난해까지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였다가 그 좋다는 교수직을 때려쳤다. 세상 밖으로 나와 ‘유대시티’(www.udacity.com)라는 무료 온라인 대학 교육과정을 열었고, 나는 그의 학생이 됐다. 그의 강의를 들어본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이수지 연구원이 “‘교육은 무료여야 한다’는 철학에 매료됐다”며 이곳을 강력히 추천한 덕분이었다.

공짜 강의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스런은 이미 스탠퍼드대 재직 때 자신의 전공인 인공지능 강의를 인터넷에 개방했고, 전 세계 190개 국가 16만 명이 이 강의에 열광했다. 여기에 자신감을 얻어 아예 전 세계 학생들을 상대로 대학을 차렸다고 한다.

교육은 무료라는 말이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무슨 의미일까. 그는 사이트를 통해 “스탠퍼드대 캠퍼스 울타리 안에 있는 소수의 학생들만 교육의 혜택을 누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라고 했다. 모두가 교육의 혜택을 누릴 동등한 권리를 의미했다.

그래서 외부에서 투자도 받고, 자신의 돈도 털어넣어 온라인 대학에서 무료 공개강좌를 전파하고 있다. 한국 국립대 교수들이 총장 직선제를 사수하는 걸 민주화로 여기는 수준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지 않나. 유대시티가 대학(University)의 ‘유(U)’와 담대함(Audacity)에서 따왔을 정도로 담대한 교육실험이라 할 만하다.

유대시티 학생은 영어 실력이 약해도 괜찮다. 자막이 있는 동영상 강의를 보며 질문도 할 수 있다. 시험도 치르며, 숙제도 제출한다. 7주 정도의 과정이 끝나면 성적표와 이수 자격증도 받는다. 어떤 학생은 이 과정을 이수한 덕분에 구글에 입사하게 됐다는 글도 올렸다.

캠퍼스 벽을 부수고 교육의 혜택을 밀물처럼 곳곳에 퍼지게 하려는 시도는 요즘 미국에서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도 출신 살만 칸의 수학 강의를 유튜브로 보고 탄성을 질러본 경험이 있다면 올 2학기 하버드대와 메사추세츠공대(MIT)가 공동으로 내놓은 ‘EDx(www.edxonline.org)’라는 온라인 과정을 기대해도 좋다. 두 대학이 각각 3000만 달러를 투자해 오프라인 강의 수준의 공개 강좌를 전 세계에 뿌려준다. 미국 교육부는 한술 더 뜨기로 했다. 대학 강의의 온라인 공개를 위해 사립대에도 재정지원을 하겠다고 최근 선언했다.

미국의 힘은 빼어난 강의를 공개해 전 세계 대학교육의 표준을 구축하려는 데에서 나온다. 마치 전 세계 수십억 개의 PC가 윈도로 구동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대학교육에서 내겠다는 의도는 느낄수록 무섭게 다가온다.

표준화의 위력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서남표 KAIST 총장이 교수들의 강의는 MIT대 등의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고, 수업은 학생들과 교수 사이의 토론으로 바꾸자고 제안한 건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이러다가는 마치 시골 고교가 수업시간에 서울 대치동 학원 강사가 출연하는 EBS 인터넷 강의를 틀어주는 것처럼 우리의 대학 강의실이 바뀔지 모른다. 물론 우리 대학 교수들은 자존심 때문에 절대로 그걸 허용하진 않겠지만.

만일 유대시티, 또는 EDx 등이 학위와 동등한 자격증을 주고, 구글이나 삼성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채용 때 이런 자격증을 본다면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섣부른 예측일지 모르나 우리 대학의 졸업장 또는 간판의 가치는 분명 지금보다 하락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대학은 졸업장 발급 기관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싶다. 또 하나 우리의 대학 교수들께 알려드릴 게 있다. MIT 공개 강좌(OCW)를 지켜보는 학생들의 국적은 한국이 중국에 이어 2위라는 사실이다. 이미 외국 교수들과 비교당하고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우리의 대학은 고비용, 저효율의 길로 들어섰다. 매년 1000만원씩 드는 가격과 졸업해도 취업이 잘 안 되는 실적이다. 그렇다면 대학 간판 또는 졸업장의 가격은 앞으로 더 떨어져야 맞다. 그래야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의 문제도 해결의 가닥을 발견할 수 있다.

<자료: 중앙일보 - 강홍준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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