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회원국을 대략 선진국의 표본이라 여긴다. 그 이유를 OECD 규약에서 볼 수 있다. 제1조에 ‘개도국의 건전한 경제성장에 기여’를 적고 있다. 가깝게는 골프를 칠 때도 OECD의 규약은 쫓아온다. 내기 골프를 칠 때 돈을 일정 이상 따면 좀 더 까다로운 룰을 적용한다. 더 이상 따기 어렵게 하는 장치이지만 한편 잃은 자에 대한 기회의 배려다.

우리나라는 1996년 김영삼 대통령 당시 가입했다. 당시 김 대통령은 가입을 강력히 밀어 부쳤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이라는, 당신은 선진국의 대통령이라는,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당신이 대통령일 때 이 나라가 선진국이 됐다는 소리 한번 듣고 싶었는지 1년 뒤 IMF 외환위기가 코앞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29번째로 OECD 국가가 됐다.

이놈의 OECD 가입으로 우리의 잣대는 모두 OECD 기준이다. 선진국이라는 열매도 영글기 전 너무 일찍 수확한 가입 때문에 늘 씨알이 작다. 한편 “더 노력해야 한다”는 “개선할 여지가 많다”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자아비판 기능마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좋은 항목은 꼴찌에 가깝고, 나쁜 건은 1등, 2등을 다툰다. 대표적인 내용이 OECD 국가중 교통사고가 1위며, 노후준비를 못한 노인의 비율도 당당히(?) 1위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좋은 항목이 1위인 게 있다. 바로 대학 진학률이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대학진학률은 83%로 OECD 국가만이 아니라 선진국의 에이스라 불리는 G8도 감히 범접을 하지 못하는 수치다. 일본이 50%가 안된다. 좀 산다고 하는 유럽 국가들이 30%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가 대학진학률 수준으로만 따진다면 세계에서 가장 엘리트인 국가는 코리아인 셈이다.

요즘 개인적으로는 이 대학진학률 수치가 높은 것마저도 좋은 항목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많이 배우겠다는 국민이 많으니 좋은 거 아니냐”고 혹 어느 외국인이 물으면 정말 할 말 없게끔 만드는 대목이다. 한 명의 대학생에게 드는 비용(기회비용 포함)이 1억 원에 가깝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돈을 들인 대학 졸업생 30만명 이상의 졸업장이 장롱 위에서 뽀얗게 먼지가 쌓이고 있다. 청년실업자수가 30명이 넘었다는 뜻이다.

어쩌다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행세를 못하는 나라가 됐는지, 그 학력 인플레 뿌리는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이제 그 누구도 모르겠다고 발뺌이다. 교육 전문가랍시고 토론 프로그램에 나오는 패널 모두가 그럴듯한 연구소에서, 대학에서, 언론사에서 한 자리하는 임원들이다. 그들은 모두 이런 말을 한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결 같이 말한다. 마치 프로그램 각본에 짜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요즘 학력 인플레, 대졸 출신자와 고졸 출신자와의 차별금지, 고졸 출신자의 고용확대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은행은 십 수 년만에 고졸 학력자들에게 채용을 오픈했다. 어떤 대기업은 고졸 출신의 관리직을 뽑는다고 한다. 그러나 고졸 학력자에게 취업의 문을 여는 것만으로는 망국적 학력 인플레를 결코 막을 수 없다. 어찌 보면 심화된 신분의 양극화로 치닫는 또 다른 현상일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건 능력 대비 임금의 예우다. 고졸과 대졸은 초임부터 차이가 나지만 나이 50세의 평균 임금은 고졸 3000만원, 대졸 6000만원이다. 부모가 등록금 마련에 허리가 휘어도, 공부가 본업인 대학생이 아르바이트가 본업이 되어도, 명문대 여학생이 성매매로 등록금을 만들어서라도 대학을 가는게 남는 장사라는 셈법이 이리도 쉬운 나라에서는 대학진학률이 83%도 적은 수치일지 모른다.

옆 나라 일본은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자의 취업률이 90%가 넘는다고 한다. 기술만 있으면 먹고 산다는 뜻이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의미다. 외국의 경우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임금 차별이 적고 심지어 전문성을 갖춘 고졸자의 기술력을 우대해주는 풍토가 확실히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도 고졸자의 취업 확대뿐만 아니라 능력위주의 임금을 산정하는 기업문화 정착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의 공기업과 공공기관에서 고졸 학력자를 일정 비율 이상 의무채용, 대졸과의 임금 격차도 줄이고 승진 차별도 하지 않는 실행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을 OECD 평균 수준56%까지 낮추면 무려 연간 1조 원의 가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예측 수치도 나와 있다. OECD 국가 중에서 고졸 학력자와 대졸 학력자의 임금 격차가 가장 적은 나라가 코리아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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