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의과대학에 가셨습니까?”

진로적성의 사각지대, ‘사’자 붙은 직업 김민수 논설위원l승인2013.11.0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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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직업선택’과 ‘사회 기득권 편입’에서 방황

서울 강북구에 사는 고 1학년의 학부모 윤철중 씨(48)는 지난해 한 입시업체 설명회에 참석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대한민국 교육의 양극화가 심각하다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이야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는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놀라지 않을 강북의 고등학생 학부모가 어디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윤 씨를 충격에 빠트렸던 실체는 이랬다. 입시설명회 강사로부터 “서울 일반계 고교의 2013학년도 의대·치대·한의대 합격생 중 자신이 사는 강북구 출신은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윤 씨는 “자녀가 의사를 꿈꾼다면 강남으로 이사를 가든지 기를 쓰고 자사고(자율형사립고)나 특목고에 보내야 하는 것이냐”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윤 씨의 자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고, 나름 그 목표가 공부를 열심히 하게 만든 동기부여가 됐기 때문에 부모의 입장에서는 더 막막했다.

윤 씨의 걱정은 윤 씨만의 것이 아니다. 입시전문 업체 하늘교육이 일반계고 기준으로 서울 25개 자치구의 최근 3년간 전국의 의대·치대·한의대 등 의학계열 합격생 배출 현황을 분석해 본 결과, 합격생 80%이상 ‘교육 5특구’로 불리는 강남·서초·송파·노원·양천구 출신이었다. 게다가 합격생 60% 이상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서 합격했다. 서울에서는 교육 5특구에 살지 않으면서 일반계고에 다니는 학생이 의사가 된다는 것은 통계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2013학년 의학계열 서울 자치구중 교육5특구’ 84.3%

이 통계는 지난해 2013학년도 입시에서 전국 40개 의학계열 전공인 의대(25개)·치대(4개)·한의대(11개) 정원 2502명 중 서울지역 일반계고 출신 합격생은 466명(18.6%)에 불과했다. 이 통계는 서울지역 전체 211개 일반계고를 대상으로 이들 대학 진학 실적을 물은 조사에서 응답한 109개교의 실적을 분석한 내용이다.

또한 응답이나 실적 공개를 거부한 고교의 대부분은 해당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감안해 분석한 결과 서울의 자치구별 의·치대·한의대 합격생 배출 순위는 강남구가 235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노원구(46명)와 송파구(44명), 서초구(41명), 양천구(27명) 순으로 조사됐다.

강남 3구와 함께 ‘양천구’, ‘강북의 대치동’인 중계동을 낀 ‘노원구’는 흔히 ‘교육특구’로 분류된다. 이 5개 교육특구의 합격생을 합치면 모두 393명으로 서울지역 일반계고 전체 합격생의 84.3%이다. 강남 3구만 쳐도 320명(68.7%)이나 된다. 반면 각각 2명(금천·도봉·동대문·영등포·용산·중랑구)과 1명(관악·은평·종로구)에 그친 구도 수두룩했고, 강북·동작·마포·성동·성북구는 전무했다.

앞서 2011년과 2012년 당시 같은 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2011학년도 의·치대·한의대 입시에서 서울 일반계고(127개교 응답) 합격생 354명 중 교육특구 출신은 300명으로 84.7%(강남3구 230명·64.9%)나 됐다. 이들 대학에 384명(124개교 응답)이 합격한 2012학년도 역시 교육특구 출신이 330명으로 85.9%(강남3구 247명·64.3%)였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일반계고와 자율고, 특목고 등 고교유형별 학력 격차뿐 아니라 지역별 학력 격차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명중 1.5명 꼴은 “반수 하겠다”

이번 11월호 기획진단은 강남3구, 교육5특구의 의학계열 합격생 배출비율을 왈가왈부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경제력을 기반으로 유명 학원 강사들의 수업을 많이들은 강남지역 학생들이 경쟁이 치열한 의학계열을 많이 진학하는 것은 어찌 보면 시장의 논리상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자녀의 적성과 소질에 기반을 둔 진로 선택을 지도하는 진로적성 교육은 종종 ‘종합예술’에 비유된다. 아이의 성적과 적성, 사회 변화, 경제력을 포함한 가정환경 등의 요소가 종합적으로 고려돼야하기 때문이다.

적성보다 성적에 무게를 두고 점수 위주로 진학시키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반수 하겠다”거나 “편입 하겠다”는 대학생 자녀들이 10명중 1.5명꼴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통계라면 힘들게 공부해서, 많은 돈을 들여서 진학한 의학계열이라 하더라도 진학 후 자신의 진로가 아니라고 바꾸는 의학계열 학생은 해마다 250명 이상 나오고 있다는 계산이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가슴을 칠 일이고, 진로를 바꾼 학생 입장은 “정녕 자식을 사랑한다면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그냥 두세요?”라고 항변을 했었을 터다.

‘진로적성 방관이 빚은 오류’가 강남3구, 교육5특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현재 대한민국에서 ‘의사’(醫師)라는 직업은 나름 부(富)를 보장하는 직업이다. 게다가 남자 의사는 결혼 상대자로서 단연 인기 톱클래스 직업군이다. 재력가의 집에서 딸을 의사와 결혼시키려고 안달복달하는 것을 보면 의사가 부를 보장하는 직업 이외에도 또 다른 속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사회통념, 사회 기득권층의 기준으로 볼 때 무엇인가 서로 필요한 구석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전북 익산 원광대 로스쿨, 수도권대학 출신 86.7%

의학계열만 강남3구에 편중돼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명문대 로스쿨도 이런 차원에서 보면 의학 계열과 영락없는 쌍둥이다. 로스쿨 18개 대학 1기 로스쿨 입학생 자료를 조사해 본 결과, 우선 서울 출신들이 지방 로스쿨까지 대거 입학해 지방 로스쿨을 접수(?)했다는 것이 뚜렷이 나타난다. 지방에 있는 로스쿨 대부분에서 수도권 거주자의 비율이 절반을 훌쩍 뛰어 넘어섰다.

하다못해 전북 익산에 위치한 원광대 로스쿨은 등록생 가운데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거주자 비율이 무려 86.7%(60명 중 52명)였다. 익산이 주소지인 경우는 3명에 불과했고, 전북 지역으로 그 범위를 넓혀도 전체 수는 4명에 불과했다. 또 충남대와 강원대 등 상대적으로 서울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는 로스쿨도 서울 수도권 거주자 비율이 70%를 뛰어넘는 등 외지인 강세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로스쿨에 관심을 많이 가진 이들은 로스쿨이 고속철도(KTX)와 비슷한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KTX가 만들어지자 지역과 서울의 거리를 좁혀 지역 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는 반대 효과가 나타났다. KTX가 없던 시절엔 지역에 머물러 살던 사람들이 KTX가 생기면서 서울 집에서 통근하기 시작했고 지방에서 서울로 쇼핑 원정을 떠난 것이다.

이들 18개 로스쿨 1기 합격생 시·군·구 주소지는 서울 관악구 거주자가 가장 많았다. 이는 관악구에 신림동 고시촌과 서울대가 있다는 지역적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구별 주소지 통계에서 또 다른 특이점은, 강남구와 서초구 등 강남 지역 비율이 상당히 높게 나왔다는 점이다. 서울지역 로스쿨 가운데 주소지 정보를 공개한 고려대와 이화여대 등 7개 대학(530명)의 자료를 보면, 관악구가 72명(13.6%)으로 단일 구로는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강남구·서초구·송파구가 각각 59명·45명·23명(총 24%)으로 그 뒤를 이었다. 서울 지역 로스쿨 합격생 넷 중 한 명은 ‘강남 사람’이다.

서울 지역의 한 사립대 로스쿨 입학업무 담당 직원은 “언론사로부터 정보공개 청구를 받고 주소지를 정리해봤더니 강남·서초·관악구가 눈에 띄게 많아 깜짝 놀랐다. 고시촌이 몰려있는 관악구야 그렇다 쳐도, 강남 지역이 예상 외로 너무 많아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까봐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강남 편중 현상은 비단 상위 7개 로스쿨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10여 년 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는데, 과 학생들 사진과 집 전화번호가 담긴 조그만 수첩을 나눠줬다. 가짜 대학생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데, 전화번호를 살펴보니 전화번호 첫 자리가 강남 지역을 뜻하는 5로 시작되는 애들은 부지기수인데 강북 쪽을 뜻하는 9로 시작하는 학생은 수백 명 동기생 가운데 딱 2명이었다. 이미 사법시험으로 가는 메인 통로도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는 강남 3구가 장악한 지 오래란 말을 여실히 반증하는 이야기다.

진정한 진로교육 “잘하고, 좋아하고 경제적 독립 가능하면 끝”

이른바 ‘사’ 붙은 직업,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는 2013년 현재 한국 사회의 전체의 직업이 아니다. 강남 3구의 특화된 직업군이며, 다르게 보면 자신의 진로적성과 상관없이 ‘사’로 내몰리는 지역이 강남 3구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좀 더 확대해석하면 우리나라 ‘사’자 붙은 직업이 강남 3구 거주자 출신으로 편중돼 있는 상황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돼 나타난다면 우리나라 교육에서 진로적성을 생각하는 수준도 그만큼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유는 이렇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진로교육을 통해 목표를 잡은 뒤 학업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는 적성에 맞는 길을 찾은 다음, 그 길 안에서 현재 성적, 가정 형편, 성향 등을 고려해 진학 지도를 해야 한다. 김인환 U's Line 미래교육연구소 부소장은 “진정한 진로적성 교육에 대해 아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목표를 찾아주고, 그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길을 제시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원래 진로교육은 진학까지 포함한 개념이지만, 과거에는 진학 컨설팅 쪽에 더 비중을 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제의 영향과 교육과정의 변화에 따라 진로교육도 변하고 있다. 원하는 상급 학교로 진학하기 위해서도 올바른 진로 교육에 기반한 전략 수립이라는 방향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교육과정과 대학의 변화 등 아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진로 교육의 첫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10년, 20년 뒤 사회에 진출할 아이들을 부모 세대의 정보에 맞춰 지도하는 경우 생기는 폐해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진로교육은 나이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 초등학생은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대부분 흥미 중심의 장래희망을 꿈꾸며, 중학교 1~2학년은 ‘나에게 맞는 직업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기로 그 이후에는 ‘내가 현실적으로 저것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초등학생 때는 아이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전시회, 미술관, 과학관, 박람회 등 여러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자녀와 함께 다양한 체험을 아이가 어느 쪽에 흥미를 보이는지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중학생 때는 사춘기에 본격적으로 진입해 친구들과 주로 어울리며, 학업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초등학생 때처럼 가족 단위의 체험 학습이 힘들다. 좋은 책과 유익한 신문 기사를 권해주며, 사회적 성공을 다루거나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분야에 대해 심층 취재한 TV 프로그램 등을 찾아놨다가 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등학생 때는 문·이과 선택과 대학 입학 시 학과 선정 등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므로 현실적으로 가능한 관점에서 교육을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대학 입시에도 도움이 되는 신문 읽기를 적극 권장하고, 부모는 자녀의 성적에 대해 학교 선생님들과 현실적인 진학률에 기반한 상담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리·사회를 좋아하던 학생과 감정평가사 상관관계

얼마 전 학교에서 실시한 적성검사에서 “아이의 진로 유형이 ‘사회형’으로, 해당 직업에는 교육자, 간호사, 종교지도자 등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나왔다”는 한 학부모는 아이에게 적합하다고 나온 여러 직업군을 가지고 어떻게 진로적성 교육으로 연계해 학습 동기를 높일지가 큰 고민이라는 사연이 본지로 날아들었다.

이에 대해 김인환 부소장은 “직업 목표가 설정되면서 ‘저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지’ 하는 사실만으로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린 학생들은 직업 목표가 설정되면 동기부여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중·고등학생들은 그 직업에 종사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명확해져야 가장 중요한 학습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부소장이 전하는 사례를 보자. 진로 상담자 중에 지리와 사회 과목을 좋아하지만, 딱히 어떤 것을 하겠다는 것이 없는 고1 학생이 있었다. 돈이나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등 경제적 마인드도 좋았으나 직업과 연결하지 못하던 차에 검사 결과 ‘감정평가사’라는 직업이 추천됐다. 쉽게 말해 자기가 잘할 수 있고 재미를 느끼는 분야가 있는데, 거기에 알맞은 직업을 추천 받았다. 감정평가사가 되려면 시험을 봐야 하는데 그 시험에는 경제나 경영학과 출신으로 서울의 주요 대학에 다니는 사람이 유리하다.

그때부터 그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지리나 사회 과목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면서도 경제·경영학과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학습적으로도 경쟁력을 갖추려 노력했다. 다시 말해 진로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대학이나 학과 목표가 나오고 지금부터 어떤 과목에 집중해야 하는지 학습 목표가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학과와 무관한 유명 대학이나 특목고에 진학이 목표였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 등 다양한 전형이 도입·확대되면서 해당 학교와 학과에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좀 더 세분화된 세상이 됐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지고 이런 전체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진로 교육이 학습 동기로 작용하는 건강한 흐름이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진로적성은 어떻게 찾아지고, 왜 중요한지를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특히 지리나 사회 과목을 잘하고, 좋아하는 과목에 맞춰보니 감정평가사라는 그럴듯한 직업이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그 사람은 참 행복할 것 같다”는 기분이 자연스럽게 스미는 것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인간은 자신을 믿고 일하는 자유인’

이렇게 진로적성 교육이 이제는 진학을 아우르는 개념으로까지 가고 있는 현실에서도 강남 3구, 교육 5특구에서 ‘사’자 붙은 직업의 적잖은 편중화는 “기득권의 소유나, 경제력이 확보된다면 내 자식의 진로적성, 나의 미래와 바꾸겠다는 빈곤한 인생철학은 한 인간이 갖고 있는 재능과 흥미를 기반으로 하는 무한한 발전을 배제하는 개념이다. 영어과목이 너무 재밌고 좋아서 세계를 돌아다니는 외교관이 되는 꿈을 갖게 됐었다는 반기문 UN 사무총장. 그에게 모르는 외국 타지에 나가있는 외교관은 위험하고, 큰돈도 벌지 못하니 법관이나, 의사를 하라고 부모가 종용했다면 한국인 UN 사무총장은 그래도 배출됐을까.

법관, 의사, UN 사무총장 모두 소중하다. 그러나 자신이 가려는 인생의 길에 부모는 어떤 존재인가, 어떤 역할을 맡은 존재인가. 인생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알려주는 사람은 누군가를 고민하는 것은 개인의 행복, 사회의 평화, 인간의 존중을 실천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지 싶다. 공부가 최상위권으로서 그 사회가 정해놓은 행로를 가려는 경우를 두고 진로교육이 필요 없는 계층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한국사회가 권력적으로 정해놓은 행로는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의과대학, 로스쿨에 진학하려는 최상위권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라는 의미이다. 이들 최상위권이 정해진 행로, 수순으로 가지 않는다면 그 주위사람들은 크게 실망해 패닉 상태까지 이른다는 말도 들린다.

한국 사회에서 좋은 학력(學歷)은 학력(學力)으로 이어진다. 또한 학력(學力)은 학력 그 자체로 남아있지 않고 세력(勢力)을 만든다. 이 세력은 결과적으로 기득권을 만든다. 어느 정도 이상의 자격이 되지 않으면 참여가 불가능하고, 본인이 참여하고 싶다고 해서 참여가 허락되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이 만들어진다. 본지가 강남3구와 교육5특구의 의학 계열과 로스쿨 입학통계를 사례와 진로교육을 받은 후 자신의 진로가 결정되고 동기부여가 만들어져 자신의 목표에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상황과 굳이 비교하려 했던 것은 진로적성의 기본 개념이자, 출발선인 “자유로운 즐거움이 또 다른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한다.”는 것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보다 풍요롭고, 휴머니즘의 세상으로, 긍정적인 세상으로 만드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강남3구, 교육5특구가 의학 계열과 명문대 로스쿨을 많이 배출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한 인간의 천성과 천직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운명론이기 보다, 그가 갖고 태어난 달란트에 방점이 찍힌다. 한 사람의 천부적 소질이 외면되면서 오로지 하늘 높이 연결된 사다리를 타고 가야만 하는 것이 한 특정사회의 규칙이라면 거기에 해당돼야 할 한 인간에게도, 한 사회에게도, 전체적으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결코 긍정적인 내용으로 작용하기 쉽지 않다.

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수능성적만이 아니다. 판·검사에게 요긴한 것은 명문대 로스쿨 졸업장만이 아니다. 오히려 수능성적보다, 명문대 로스쿨 졸업장보다 더 절실한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 그 자유의지에서 내뿜는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 등이다. 이런 가운데 한사람은 한 사회에서 내가 어떻게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우리들이 진로적성이 그리도 중요하다고 부르짖는 가장 떳떳한 근거는 ‘인간은 자신을 믿고 일하는 자유인’이기 때문이며, 그럴 때 비로소 한 사회로 개개인 보내는 사인(sign)은 ‘행복’이다.

■ 전문가 조언 - 사회적 지위와 진로적성

자기 직업을 즐거워하는 마음 (낙업지심 - 樂業之心)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대통령, 유엔 사무총장, 노벨상 수상자, 재벌, 인기스타, 금메달리스트? 이들일 수도 있지만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다 같이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한 교사는 금요일 오후가 되면 “왜 토요일, 일요일이 있나? 매일 학생들을 보고 싶은데. 월요일 아침이 왜 이렇게 빨리 안 오나”라고 생각하면서, 어서 빨리 월요일 아침이 와서 학생들을 다시 만나야지 하며 교사생활을 한다.

다른 한 교사는, “토요일 일요일이라 애먹이는 학생들 안 보니 살 것 같은데, 월요일 아침은 왜 이렇게 금방 다가오나. 또 귀찮은 학생들 만나야 되는데. 학교 가는 것이 정말 도살장 들어가기보다 더 싫어”라고 생각하며 교사생활을 한다. 한 교사에게는 교사가 즐거운 직업이지만, 다른 한 교사에게는 교사라는 직업이 보수를 받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종사하는 평생 괴로운 직업이다.

‘업(業)’이란, ‘공(功)을 들여서 오래도록 종사하는 일’이다. 그래서 ‘직업(職業)’, ‘생업(生業)’, ‘업으로 삼는다’라는 말이 쓰이는 것이다. 유명한 영화배우 신영균(申榮均) 씨 같은 분은 서울대학교 치과대를 나와 치과의사로 개업하여 살아가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대학 때 하던 연극을 다시 찾아서 배우가 되어 성공했다. 황병기(黃秉冀) 교수 같은 분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나왔는데, 어릴 때 배운 가야금을 못 잊어 대학 졸업 후 법관이 되지 않고 가야금 연주를 계속하여 가야금 명인(名人)이 되었고, 결국 국악과(國樂科) 교수로 초빙됐다.

필자가 아는 모 병원 원장은 연세가 80이 가까웠는데도 수술이 하고 싶어 견디지를 못한다. 자기가 빠지면 안 되는 어떤 모임 때문에 자기 병원의 환자 수술을 젊은 의사에게 맡기고, 차를 몰고 그 모임에 가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 모임에는 급한 일이 있다고 전화를 하고는 차를 돌려 병원으로 와서 자기가 수술을 했다.

대학 입시철이다. 수험생들은 법관, 의사 등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전공이라고 몰려가면 안 된다.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직종에 취직할 수 있는 전공이라고 몰려가서도 안 된다.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전공이라고 몰려가서도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가를 잘 살펴봐야 한다. 마시는 물이 뜨거운지 찬지는 마시는 본인이 제일 잘 알 듯이 자신의 소질이나 적성은 본인이 제일 잘 안다. 부모님이나 담임선생의 권유는 참고로 할 뿐, 자신의 일은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필자는 꼭 대학교수를 해야겠다고 한문공부를 한 것은 아니고, 재미를 느끼며 공부를 하다 보니 대학교수로 채용된 것이다. 필자가 한문 공부할 때 담임선생 등 많은 교사들이 계속해서 말렸다. 일가친척들이나 동네 어른들도 말렸다. 심지어 평생 한문 공부한 시골 한학자(漢學者)들도 말렸다. “한문이 공부는 좋은 공부지만, 그것 공부하면 굶어 죽는다. 생업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라고 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한문공부이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해도 계속했다. 결국 굶어 죽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허권수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김민수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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