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민 포스텍 총장

美 대학생 자살충동 빈도 20년 전의 3배 정도 늘어나

학업 부담과 과도한 기대로 첫 좌절감 겪지만 치료 부족

한국 대학도 정신건강 관심이 교육의 일부임을 명심해야

지난 몇 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이들이 잇따르면서 대학생들의 정신건강 상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비롯한 대학가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보여주듯이 미국 대학생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한국보다 더 심각하다.

미 대학건강연합의 통계와 다른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난 20여년간 미국 대학생들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2배, 자살충동 빈도는 3배 정도 증가하였고, 약 40%가 대학생활 중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신질환 선별검사에서 양성(陽性) 반응을 보인 대학생 중 15%만 전문가를 찾아 상담이나 치료를 받고, 대부분 학생은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에 대한 인식 부족과 사회적·개인적 선입견, 거부감 등 이유로 치료를 받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까지 성공적으로 마치고 아이비리그나 명문 주립대학에 입학한 신입생 중 상당수가 난생처음으로 시련과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고교 시절 엘리트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학업 부담, 주변의 과도한 기대, 미래에 대한 불안, 사회에 대한 불만 등으로 실망과 좌절감을 느낀다.

또 가정에서의 과잉보호에 의한 독립심의 부족, 고등학교까지의 교육 부실, 인터넷과 컴퓨터게임 등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필자는 워싱턴대학에서 29년여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의 정신건강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인터넷 기반의 자가 정신건강 점검 및 예약 시스템(앱)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익명으로 상태 검진을 할 수 있을뿐더러 상담 예약도 가능해 17개월 동안 3000명 이상이 이용할 정도로 학생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지금도 워싱턴대에서는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데, 대학생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건강의 관리와 해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는 점에서 연구자로서 기쁨과 큰 보람을 느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헤쳐나가야 할 중요 과제 중 하나가 대학과 대학교육의 선진화이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부작용도 따른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교육이 강화되고 졸업이 어려워지면 학생들이 훨씬 더 큰 스트레스에 노출될 것이고 이로 인한 정신질환이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해가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젊은이들의 정신건강 악화에 대비해야 한다. 정신건강은 육체 건강에 비해 간과되기 쉽다. 하지만 마음의 질병도 육체적인 질병과 마찬가지로 조기에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면 상담과 치료를 통해 개선되고 치료도 가능하다.

우선 정신질환과 정신과 치료에 따르는 오명과 낙인이 사회적으로 사라져야 한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 치료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식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여기에 대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대학 차원에서 정책을 마련하고, 교직원들도 교육의 일환임을 명심하고,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며, 정신 질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고 이해해주는 문화와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물론 대학의 노력만으로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당사자·가족·친구·사회 등 모든 이들의 노력이 함께해야 앞으로 더 증가할 대학생과 대학원생의 정신건강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할 때 우리 대학과 사회에 일어날 비극적인 자살 희생자를 줄일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젊은이와 가족의 아픔과 비애를 해소시켜 줄 수 있다. 이렇게 할 때 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미래를 설계하고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잠재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하는 데도 일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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