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요구에 따른 대학의 팽창
현재 한국은 고등학생의 80%이상이 대학을 진학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는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자본의 요구의 결과이다. 대학교육의 양적인 확대는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것이었으며, 이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와 관련된 주요한 연구 성과(윤종희(2005) <대중교육 역사 이론 쟁점>)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20세기 중반 특히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자본은 보다 능동적으로 대학을 자신의 요구에 맞게 재편하는데 그것은 대학의 대중화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발전의 과정에서 생산의 기술적 토대가 노동자의 숙련에서 기계로 이전되면서 숙련노동자 대신 규율된 반숙련노동자가 중요해진다.

이를 통해 생산에 필요한 핵심적인 기술과 노하우는 숙련노동자로부터 박탈되어 자본의 관리구조에 통합된다. 그 결과 생산의 핵심적인 기술을 담당하는 엔지니어층와 거대한 기업조직을 경영하는 관리자층, 우주, 항공, 정보, 통신, 금융, 각종서비스산업의 발전 등 생산력발전에 조응하는 노동자계층이 요구되었다. 바로 이들을 길러내기 위한 자본의 요구가 대학을 대중화하는 동인이 되었다.

미국의 경우 대학은 연구기능을 강조하는 독일식 대학모델에서 출발했지만 독일이 주로 국가관료의 양성을 목표로 한 것에 비해, 미국은 자연과학, 경영학, 사회과학 등의 분야에 집중하였다. 또 법학과 의학 등 과거의 전문직 양성 분야를 흡수하면서 이른바 종합대학 체계를 도입하였다. 대학의 팽창은 자본의 요구와 일치하였고 이는 학과의 팽창으로 나타났다.
자연과학의 경우에도 자본의 요구에 부합하는 방식이었는데, 예를 들어 중화학공업으로 표현되는 2차 산업혁명은 화학이나 물리 전기 전자 등의 전문지식을 요구했고, 자본은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대하여 대학을 자본이 원하는 지식생산의 기관으로 변형시켰다. 일예로 미 연방정부의 엄청난 재정 후원하에 대학에서 군사적 목적의 연구활동을 진행하고, 심지어 제대군인 3-4백만을 대학에 입학시켰다.
 

또 다른 예로 캘리포니아 대학은 1962년 당시 교직원 수만 4만명이고 강좌가 1만이었다. 10만을 넘은 학생 중 3만은 대학원생이었고, 학과 또한 산업사회의 요구에 철저히 부응하였다. 235종의 교과목을 지닌 공학계열의 경우 심지어 드라이클리닝 공학이 있을 정도였으며, 교육학는 218종이나 되어 자동차 운전이나 안전교육도 교과목에 들어갔다. 이렇게 대학은 대중교육이 되었다.

그 결과 중등교육과정은 실업계와 인문계의 구분은 사라지고 대부분 인문계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과거의 중등교육이 담당했던 노동자계급의 분할이 대학에서 다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즉, '아비리리그'와 같은 명문사립대학과 명문주립대학과 같은 엘리트대학이 최상위에 있고, 그 밑으로 기타 주립대학, 초급대학, 통신(방송)대학으로 위계화 되었다.

눈여겨 볼 것은 1960년대 중반이후 자본의 이윤율이 떨어지면서 상황이 변화하는데 그 최종적인 결과는 고등교육의 양적인 확대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즉 1970년대 초반 대불황이 시작되고 1980년대 들어와 신보수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긴축정책으로 일시적으로 대학팽창이 정체되었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 다시 확대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미국만의 고유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OECD 국가에서 25-34세의 연령층에서 고등교육을 이수한 인구의 비율은 1990년 20%에서 2001년 30%로 증가하였다. 주요 각국을 살펴보면 미국은 1991년 30%에서 2001년 39%로, 영국은 19%에서 29%로, 프랑스는 20%에서 34%로, 캐나다는 32%에서 51%로 그리고 한국은 1995년 29%에서 2001년 40%로 증가하였다.
 
계급불평등과 대학서열체제

그러면 위와 같은 대학의 양적인 팽창이 민중의 권리를 확장하였을까? 결코 아니다. 노동자민중의 자녀들은 계층상승(혹은 부모세대의 삶의 수준에 근접하는 현상유지)을 위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고, 그 결과 교육연한은 더욱 늘어났다. 즉, 과거 중등과정에서 이루어지던 직업교육을 대학으로 이전시켰기 때문에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는 대학을 진학해야 하지만 그 비용은 고스란히 민중들에게 이전된다.

반면 자본과 국가는 노동력재생산의 비용을 자신들이 지불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교육연한을 늘려 대중들의 욕망(계층상승 혹은 현상유지)을 조절하거나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를 정당화하는 서열체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노동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임에도 각각의 노동에 위계를 설정하고, 정신노동이 육체노동보다 우위의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피지배계급에 설파하는 데 있어 대학서열체제만큼 효과적인 기제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대학은 SKY(서울대, 연대, 고려대)로 대표되는 서울소재 명문대학 -> 서울 소재 대학 -> 수도권 대학 -> 지방 국립대학 -> 지방 사립대학 및 전문대학 순으로, 거의 모든 대학을 한 줄로 세울 수 있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서열화 되어있다. 그리고 이는 사회적인 서열체제로 이어진다.

그 결과 대학서열체제는 노동자계급을 분화시키고 계층화한다. 예를 들어 서열체제를 통해 관리자의 지위에 오른 계층들은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그 지위를 대물림하려 학력에 따른 임금과 사회적 지위의 차이 그리고 이를 재생산하는 대학서열체제를 옹호하거나 묵인한다.

관리자의 지위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고용을 유지하거나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노동계급의 일부분은 자신의 자녀만큼은 관리자의 지위(혹은 자신의 지위)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수입의 상당부분을 자녀교육비에 쏟아 부으면서 그 체제에 적극적인 반대를 하지 않는다.

 

가장 다수의 존재들. 사회적 생산을 담지하고 사회를 유지하는 제반의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지만 이 서열체제의 하위에 있는 다수의 경우는 일부는 계층상승의 기회를 꿈꾸며 악무한적 경쟁의 들러리로, 또 다른 일부는 진입에 요구되는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절망하고 포기하며 ‘잘못된 세상’이 아닌 ‘못난 자신’을 저주하고 원망하며 자신을 묶는 굴레(서열체제와 학력에 따른 격차)를 운명으로 여기고 체념한다.

더욱 문제는 이 학력의 차이는 다시 소득격차를 포함한 사회적 격차를 만드는 주요한 변인으로 작동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교육비지불능력의 차이가 자녀의 학력을 결정하고 그 학력이 곧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 각종지표가 보여주듯이 학력의 차이는 직업, 수입수준 및 주거 형태 등 에 따른 계층구조의 분화 양태에 거의 비례하여 현상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학력은 문화자본으로 기능한지 오래이다. 그리고 이는 대학서열체제에 의해 재생산되는 구조이며, 이는 대를 이어 세습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 결과 대학교육은 양적으로 팽창되었으나 계급불평등구조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서열체제의 해소는 가능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대학서열체제를 해소하는 방안은 없는 것인가? 당연히 있다. 교육혁명공동행동은 그것을 ‘대학평준화체제의 실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생경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대학서열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 정도이고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대학평준화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서열체제는 세계적으로 볼 때 소수이고 다수는 대학평준화체제이다.

그런데 이 대학평준화체제는 대학의 소유 및 지배구조와 직결되어 있다. 즉,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유럽의 나라들은 대부분이 국공립대학의 비율이 80%이상이다. 다시 말해 국공립대학의 비중이 높은 유럽의 대부분 나라들은 대학이 평준화되어있고, 이에 비해 사립대학의 비중이 높은 한국, 일본, 미국은 대학이 서열화 되어있다. 때문에 사립대의 비중이 앞도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에서 대학공공성을 높이는 방법 중의 하나는 이른바 부실사학은 즉각 국공립화하고 독립사립대학을 정부지원대학으로 개편하면서 국립대를 지속적으로 증가시켜 대학의 공공성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포함한 대학평준화체제의 실현의 경로로 우리는 이른바 ‘대학통합네트워크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대학통합네트워크방안은 크게 세 가지 핵심요소로 구성되어있다. 첫째, 국공립대를 확대하고 독립사립대를 정부지원 사립대로 전환하여 대학의 공공성을 높이고, 둘째, 대학통합네트워크의 대학들은 독일, 프랑스처럼 대입자격고사를 통해 학생을 공동으로 선발하고 공동학위를 부여하며, 셋째, 대학의 연구와 학문발전을 위하여 권역별 연구네트워크를 구성한다.

대학평준화의 핵심은 이른바 상위권의 대학들과 사립대의 문제인데 우리의 방안은 대학의 공교육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원칙에 따라 서울대를 포함한 국립대와 일정한 수준이 되는 사립대학들을 ‘대학통합네트워크’에 편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통합네트워크’에 편입되는 사립대학들에 대해서는 현재의 사립중등학교와 동일한 방식으로 국립대 수준의 재정지원을 한다. 이를 통해 대학이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사회발전과 학문발전에 부응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대학운영에 대학주체의 참여를 확대하여 대학운영의 공공성 확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대학평준화를 위해서 또 하나의 과제는 이른바 학생선발과 학위문제이다. 즉, 현재와 같은 입시경쟁을 해소하고 학력에 따른 격차를 해소할 방안은 무엇인가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방안은 공동선발, 공동학위체제이다. 즉, ‘대학통합네트워크’는 대학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책임을 바탕으로 학생을 공동 선발하고, 학점을 교류하며, 공동(통합)학위를 수여한다. 이를 통해 대학은 국립대와 정부지원 사립대가 결합한 공동학위대학과 독립사립대학으로 나뉘어지며 공동학위대학들은 사실상 평준화 된다.

또 대학통합네트워크의 학부과정은 현행처럼 4년으로 하되 대학 1기 과정(1년)은 국립교양과정으로 운영하며, 인문사회 계열과 자연계열 두 계열만 두고 2기 과정(3년)은 학부제로 운영한다. 법대, 사범대, 의대, 약대, 경영대 등 전문직을 위한 학부과정을 폐지하고, 이 과정들을 전문대학원에 설치한다. 이를 통해 선호도가 높은 학과에 입학하기 위한 대입경쟁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대학의 균형 있는 학문 발전을 꾀할 수 있다.

대학통합네트워크는 우리교육의 고질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교육개편 요구에 완전히 부응하는 방안이다. 왜냐하면 대학통합네트워크를 통해 첫째, 입시경쟁교육으로 왜곡되는 초중등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으며, 둘째, 사교육비를 대폭 축소할 수 있으며, 셋째, 대학서열화와 학벌사회를 지양할 수 있으며, 넷째, 지방 국립대 및 권역별네트워크체제의 활성화를 통해 지역간 균형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서열체제는 불가항력적인 그 무엇이 아니다. 대학서열체제는 충분히 바꿀 수 있고, 반드시 해소되어야 할 청산의 대상이다. 또 대학서열체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교육기회의 균등이나 사회적 평등이라는 것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우리는 대학평준화는 서구유럽과 남미에서의 경험이 그러했듯이 대학생들을 포함한 노동자민중의 혁명적인 실천 없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 또한 상기해야 한다. 때문에 이제 요구되는 것은 대학서열체제로 인해 가장 고통받아온 노동자민중이 대학평준화를 자신의 요구로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다.

<김태정 교육혁명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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