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신문은 계륵이다. 대학 당국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은 홍보매체에 돈을 쏟아 붓는 것에 불만이다. 이념의 선명성을 잃은 지 오래인 한물 간 매체에 대한 학생회의 눈길도 곱지 않다. 아직도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일부 학생기자들이 제공하는 콘텐츠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도 박하다. 대학 구성원 간의 네트워크는 물론 모든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대학신문의 추락은 운명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없고 날마다 무엇인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21세기 한국적 상황에서 대학신문에 대한 푸대접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한때 대학 민주화의 상징으로 사랑과 우정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 왔던 대학신문의 퇴장을 아쉬워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학신문이 오늘날 받고 있는 이러한 대접은 정당하지 않다. 제대로 한 번도 피어 보지 못한 '꽃'을 두고 쓸모없는 '풀'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학신문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통해 이를 확인해 보자.

대학신문의 첫 번째 비전은 대학이라는 민주적 공동체의 '공론장' 역할에 있다. 민주적 공동체로서 대학에는 다양한 구성원이 있고, 이들은 공론장을 통해 공동체의 이해관계와 관련한 문제를 논의하고, 합의를 형성하고, 나아가 공동의 노력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론장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독립된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믿을 수 있는' 중재가가 필요하다. 민주사회에서 언론이 이 역할을 하는 것처럼 대학 공동체에서 이 역할은 '집단적으로 작업하고, 높은 윤리의식과 공동체에 대한 지식'을 갖춘 대학신문이 담당할 수 있다.

대학신문은 또, 두 번째로, 저널리즘과 광고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훌륭한 교육자산이 된다. 즉 학생들이 대학이라는 축소된 공동체에서 기자로 일할 경우 기초적인 기사작성, 인터뷰 요령 및 명예훼손과 같은 언론 현장에서 부딪치는 많은 문제들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 대학신문의 광고가 지금과 달리 보다 활성화 될 경우 광고 분야로 진출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도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예컨대 광고를 수주하고, 디자인하고, 적절하게 배치하는 등의 실질적인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강의 중심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

대학신문은 또, 세 번 째로, 경제적 자산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대학신문은 재학생, 학교 관계자, 동문회 및 지역사회를 포함해 최소 3만 명 이상의 안정적인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차별화된 소비자 층을 추구하는 광고주들에게 대학신문은 매력적인 매체이며, 공동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형태의 사업도 가능하다. 끝으로, 대학신문을 온라인과 통합해 운용할 경우 공동체 문화의 발전과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 연결망이라는 '문화적 자산'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대학신문을 플랫폼으로 해서 구축된 가상공간을 활용함으로써 다양한 온라인 및 오프라인 모임과 행사를 이끌어 내거나 재학생, 동문회 및 지역사회 간 가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대학신문이 이렇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미래전략을 취할 경우 이 비전을 현실로 바꾸지 못할 이유는 없다.

미래전략 중에서도 가장 우선적인 것은 '발상의 전환'에 있다. 한국 대학신문 관계자들은 아카데미즘을 고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광고를 수익원으로 하는 모델은 택할 수 없다거나,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안정적인 재원이 조달되는 만큼 근본적 변화는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성언론과 달리 비영리법인인 대학신문에서 모든 수익은 언론사 내부 유보금이나 교육 및 장학금 등의 형식으로 지출된다. 대학신문이 상업주의의 병폐로 타락하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대학신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두 번째로 재정적 독립과 경영 마인드를 도입해야 한다. 한국의 대학신문에는 경영의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신문 운영자금이 대부분 대학 측에서 나오며, 신문사는 주어진 금액을 효율적으로 쓰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미국 대학신문이 재정적 독립을 추구했던 이유는 학교 당국은 물론 학생회로부터도 독립되고자 했기 때문이며, 전문경영인을 영입함으로써 성공적인 재정자립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세 번째로, 편집권 독립과 조직의 다양화-전문화를 위한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가령, 비영리 법인의 설립을 통한 재정적 독립이 단기간에 달성될 수 없는 목표라고 한다면 차선으로 경영과 편집을 분리하고 독립적인‘이사회’를 두는 방안이 있다. 대학과 학생이 모두 대학신문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편집권 분쟁이 잦은 국내 대학신문에서 이러한 이사회가 구성될 경우 보다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넷째, 학생 기자들에 대한 교육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 많은 미국의 대학신문사나 방송국들은 신문기자나 방송인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전공학생들은 이곳에서의 경력을 발판으로 기성 신문사나 방송국으로 들어가는 사례가 흔하다. 물론 현재와 같은 국내 대학신문의 지면구성과 기사유형은 학과 과정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따라서 기성 언론에서 필요로 하는 수준의 현장경험이 대학신문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고, 언론사 채용에서도 이 경력이 반영되도록 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동체 모델에 맞도록 맞춤형의 다양한 뉴스콘텐츠를 제공하고, 매일 신문을 발간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인력도 재정도 부족한 상황에서 당장 이렇게 변화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공론장의 특성이 안정성과 지속성에 있다고 할 경우 방학이라는 이유로 모든 작업을 중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단기간 내에 매일 발간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주2회 발행으로 시작해 주5회 발행을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의 독립형 대학신문들도 오랜 세월에 걸쳐 발행 횟수와 지면을 늘렸고, 대학공동체의 핵심적인 매체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대학신문의 위기는 단순히 많은 매체 중의 하나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퇴장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 중에서도 특히 민주주의의 위기와 언론의 위기를 빼놓을 수 없다고 할 경우 대학신문의 위기가 어떤 의미인가는 더욱 뚜렷해진다. 따라서 대학신문의 미래전략은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물론 길은 멀다. 그러나 대학신문에 대한 공청회나 토론회를 열고, 이를 통해 대학신문의 의미, 가치 및 민주주의와의 연관성 등을 보다 다양하게 논의하는 작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다

*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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