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단상>자본주의에서의 대학의 길

박병수l승인2012.03.2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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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자본이 중심이 되는 세상이다. 자본주의에서의 대학은 말할 것도 없이 자본주의 우월성과 자본주의 발전론 등등을 학문적으로 배우고, 거기에 적합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고, 주장 등등을 노련해지도록 훈련되는 교육과정이다. 더 쉽게 말하면 자본주의 첨병을 길러내는 곳이다. 옛 신라시대가 화랑도를 길러냈듯이 말이다.

그런데 큰 문제가 발생했다. 거칠 것 없었던 자본주의가 언젠가부터 삐그덕 거리고 참 시끄럽다. 시장 장터에서나 시끄러야 할 흥정의 불협화음이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미국 대통령 레이건의 ‘레이거노믹스’가 활개를 치던 시절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 활개는 상대편 사회주의라고 일컬어지던 동구권 국가들이 모두 도미노로 붕괴되면서 레이건의 마이크 연설 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고 자신감도 대단했다. “봐라!, 너희들이 그렇게 부르짖던 사회주의 우월성이 지금 내 발밑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세계만방의 자본주의 동포들이여! 확인하라, 우리의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며 영화배우 출신답게 멋드러지게 외쳤다.

그러나 어쩌랴. 그 자신만만했던 레이건도 세상을 떠났듯이, 그 자신만만했던 자본주의도 안절부절 못하는 상황이 됐다. 자신만만하던 자본주의가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는 한마디로 축약할 수 없으나 간단하게는 ‘자본의 심각한 편중’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여기서 그러면 자본주의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자본주의 첨병을 길러내는 대학은 뭘 했고, 내가 가장 잘났다는 대학교수들은 뭘 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 중요성은 간단하다. 영속성과 건전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체제와 주의는 파멸을 가져오기 때문이며, 그 파멸은 지구의 종말을 뜻할 수 도 있다.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이 찬란한 봄볕을 더 이상 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근한 예로 지금 우리나라의 대학에서 펼쳐지는 학문단위 구조조정의 학과 통폐합이 성황했던 자본주의 만큼이나 난리법석이다. 학교 측의 통폐합 기준은 단지 ‘취업률’이다. 취업률이 낮으면 대학평가 점수에 치명적이다. 단지 대학평가 때문이다. 이게 자본주의 속에 한국 대학들의 방향이며, 이를 국가가 적극 장려하고 유도하고 있다. 취업률과 자본주의 흥망성쇠가 무슨 연관이 있겠냐는 반문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더 엄밀히 말하면 취업률이 문제가 아니고 취업률 밖에 보이지 않는 교육정책이 문제인 것이다.

학문구조조정으로 학생과 총장이 서로 우르렁 된다. 오히려 학생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다고 입학을 했고 그 공부를 하려는데 왜 학교가 난리냐”는 것이다. 총장은 그 학과는 취업률이 좋질 않으니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설득한다. “왜냐고?” 물으면 “취업률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참 말이 아니다. 세상이 뒤바뀌어도 한 참 뒤바뀌었다. 노 교수가 “학생들아 세상은 돈이다 아니란다”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대법관을 지내다 모교 총장으로 온 양반이 취업률의 대학을 부르짖고 있다.

대학은 취업도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모든 학문을 취업이라는 잣대로 재단하려고 넘비는 교과부의 정책에 대학 당국의 오랜 경륜의 교수들이 맞장구를 친다. 이래서 얻은 결과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나라 코리아만 잘되면, 한국의 자본주의만 잘되면 다 되는것인가. 이명박 정부 후 우리나라에서도 자본의 편중의 지적이 잇따랐다. 지금 자본주의 위기론에 그리 멀지 않은 주제다. 그동안 우리 대학에서 취한 입장은 무엇이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박수만을 쳤는지, 강 건너 불구경만을 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결국 취업률은 먹고 사는 문제다. 그러나 이제 자본주의가 경고를 주는 것은 “무엇으로 내가 먹고 사느냐”를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누구하고 먹고 사느냐”는 것을 다시 고민해보라는 메시지다. 지금까지 진행해 온 방식과 마인드로는 안된다는 의미다. 그러면 지성이라고 자처하는 대학은 자본주의하에서 뭘 하는 집단이고, 교수는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가.

근사치에 있는 답은 사회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과 방향을 찾아내고, 일러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며 사람이다. “네가 이겨야만이 산다”고 가르쳤다면 “함께 살아야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돼야 한다. 신라시대의 화랑도는 나라를 지키는 엘리트 용맹무사들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나라를 지키고 사람을 지키는 것을 가르치는 기관은 어느 곳이며 누구란 말인가.


박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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