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용화의 허와 실

하치근 동아대 명예교수l승인2012.03.0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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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단일언어 사회에서 살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천 년 동안 한국인의 모어는 한국어였으며 생활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역사 기록 이후로 한반도에서 법적인 효력를 가지는 공식어는 해방 전까지 중국어와 일본어였으며, 해방 이후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영어였다. 그러므로 생활어와 공식어가하나로 통합된 실질적인 단일언어 사회가 된 것은 1948년 이후 현재까지의 약 60여 년 동안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과정을 잘못 이해하고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며 다시 이중언어 사회로 돌아가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영어 공용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단일언어 사회가 21세기세계화 시대에 큰 걸림돌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어 공용화를 실시하여 이중언어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필리핀, 인도, 싱가포르의 공용화 성공 사례를 들면서 가능성을 호언하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영어공용화론은 개인적인 이중언어와 사회적인 이중언어를 혼동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잘못된 현상이다.

필리핀은 과거 스페인, 미국,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오다 1946년에 독립한 인구 9천 900만의 다민족 국가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179여 개이다. 현재 국어는 타갈로그어이고 공용어는 영어와 타갈로그어이며, 실제 공식어는 영어이다. 필리핀에서는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된 지 백년이 넘었는데도 현재 7% 정도의 상위층 계급을 제외한 대부분의 민중은 영어 능력이 부족하여 국가의 정치와 경제에서 소외 당하고 있다.

인도는 2010년 현재 11억 7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이며 공식어로 지정된 언어는 18개이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공식어는 영어이다. 영어 공용화가 이루어진 지 200년 이상 된 인도에서 현재까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전체의 10%에 불과하고 문맹률은 40%에 달한다.

싱가포르는 총 인구가 500만 명으로 서울의 반 정도의 인구 규모를 가진 작은 나라이지만 현재 20개 이상의 언어가 혼용되고 있는 다언어 사회이다. 영어가 공식어로 지정된 지 150년 이상이 되었고 독재에 가까운 영어 정책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영어 사용자는 23%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들 나라와 상황이 다르다. 우리는 단일민족 국가로서 1948년 이후 한국어 하나로 통일을 이루었으며 국민 모두가 한국어를 중심으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2009년에 중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읽기, 수학, 과학 분야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한국과 일본, 핀란드가 OECD 국가 가운데 최상위 성적을 획득했다. 세 나라 가운데 한국과 일본은 단일언어 국가이며 핀란드는 핀란드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의 비중이 90%를 넘고 있으므로 단일언어 국가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평가 결과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우리스스로 우리들의 교육열과 근면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모국어로 이루어 낸 교육 성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우리는 더 이상 한반도 안에서 한국인들끼리 살 수 없으며 세계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영어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영어 우월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영어 능력을 기르는 효율적인 방안을 강구해 나아가야 한다.

또 진정한 국제화, 세계화를 위해 영어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외면해 온 독일어, 프랑스어,스페인어 등 더 많은 나라들의 언어에 눈을 돌려, 국민이 다양한 외국어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외국어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정책적인 바탕을 마련해 나아가야 한다.

영어 공용화의 허와 실
/하치근 동아대 명예교수 한글학회 이사

영어 공용화의 허와 실
/하치근 동아대 명예교수 한글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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