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벌고 모은 돈을 학문과 교육에 보태달라고 대학에 기부가 이루어진다. 기부금을 받는 대학 입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감사를 표하고 싶고, 또 그렇게 해서 다른 기부가 이어질 수 있게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흔한 방식이 기부자의 이름을 시설물에 부착해서사의를 표하는 것이다. 사실 미국의 하버드대학교는 그 원조다 하버드라는 이름의 목사가 기부한 돈으로 출발한 학교다. 밴더빌트대학교도 마찬가지다. 단과대학에 거액기부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경영대학에서 많이 한다. 그 밖에 빌딩, 강의실, 심지어는 분수대에도 이름이 붙는다. 석좌교수들은 기금을 출연한 사람의 이름을 항상 자신의 교수직 앞에 달고 다닌다.

얼마 전에 해프닝이 벌어졌다. 하버드법대가 몇 년 전에 작고한 저명한 투자은행가 와써스틴이 희사한 돈으로 빌딩을 짓고 화써스틴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내부에는 강의실, 라운지 등등에 또 다른 기부자들의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남자화장실에 한 기부자의 이름이 붙은 것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런 조류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하버드가 드디어 화장실까지 팔아먹는다고 열을 올렸다. 경쟁 대학들은 희희낙낙하면서 이 이야기를 읽었다.

동작 빠른 한 신문기자가 당사자에게 연락을 했는데 하버드법대 동문이고 부동산업계에서 명망이 높은 기부자인 그 당사자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래 전에 다른 단체에 기부할 때 그 단체의 신사용 휴게실(Gentlemen's Room)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휴게실은 서양에서는 일종의 싸롱이고 클럽하우스의 일종이다. 그 이야기를 학교에 했는데 어떤 경로로 잘못 전달되어서 대학의 담당자가 남자화장실(Men's Room)에 기부자의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대학도 재정이 튼튼하지 못하면 지속가능 하지 않으므로 그 외의 모든 목적을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서 대학운영구조도 재정적 안정을 한 축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운영재원과 발전기금의 확보, 대학자산의 효율적인 투자와 운용 등등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사가 총장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지난 20년 정도의 기간 동안 구미에서는 이 기준이 거의 절대적이었다. 우리도 그 뒤를 따라 온 감이 있다. 국내외에서 전설적인 스타 총장들이 탄생했다. 필자는 심지어 이런 추세와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독일 한 대학의 개교 550주년 기념식 석상에서, 개교기념일을 맞아 백만 유로의 발전기금을 출연하겠다는 깜짝 축사를 하는 후원회장을 총장이 단상으로 뛰어 올라가 포옹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재정이 확보된 대학의 궁극적인 존립 이유는 학문의 연구와 학생 및 사회교육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그간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졌던 이 고전적 목표가 새삼 부각되고 몇몇 대학의 총장, 학장추천위원회 결정을 통해 대학운영구조의 모델이 변화하고 있다. 학문적인 업적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학문공동체에 대한 지도력이 중요한 기준으로 귀환하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대학의 파우스트 총장, 그 로스쿨의 미노우 학장이 좋은 예다. 물론 최고의 학자가 최고의 대학행정가, 기금조성자로 변신한 예도 많다. 1993년 이래 거의 20년째 재직 중인 예일대 레빈 총장은 저명한 경제학자인데 같이 일한 부총장 8인을 다른 대학의 총장으로 만든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학자의 임무지만 정작 학자들이 자신과 직접 관련된 일은 소홀히 하거나 잘못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지배구조가 학술적으로 연구된 것이 이제 15년이지만 대학의 운영구조에 대한 연구는 이제 겨우 시작단계에 있다.

국립대학 법인화, 등록금 문제 등으로 대학의 재정은 다시 절박한 현안이 되어 간다.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연구결과를 대학의 운영구조에 적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총장 선출과 평가는 기금 조성 능력에만 의하게 되는 이상한결과가 나온다. 학교의 모든 구석구석에 기부자들이 이름이 붙게 될 것이다. 기업의 지배구조와 대학의 운영구조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념 외에는 출발점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잊으면 안될 것이다. <김화진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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