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와 폭행, 집단 성추행 등 어느새 학교폭력은 사회폭력과 똑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게다가 치밀한 피라미드 조직까지 등장하는 폼새가 어른에서 배운 냄새가 물씬 풍긴다. 피해 학생들은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하지 못하고,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학교에 알려도 적극적으로 보호해 주지 못하는 경우까지 있다. 공교육이 무너진 학교에 설상가상으로 학교폭력 앞에 마치 무정부 상태가 돼 버린 꼴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최근 교육부가 내놓은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보면서 학교폭력이 이 지경까지 왔는가를 알수 있는 기막힌 대목이 드러났다. ‘오는 3월부터 학교폭력으로 징계 받은 내용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해 고교나 대학입시에서 불이익을 받게 하겠다고 한다.’는 이른바 ‘입시 불이익론’이다. 입시에 불이익을 준다면 학교폭력도 꼼짝 못할 것이라는 교육부 그들만의 리그를 발표했다. 강제전학 조치를 시키겠고 엄포도 놓았다. 마치 신용카드 '돌려막기'처럼 일시적인 처방처럼 들린다.


지금 학교폭력을 일삼게 된 이들이 누구인가. 이들이 학교폭력을 일삼게 된 근원적이며, 포괄적인 이유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정말 한심하다”는 표현 외에는 할 말이 없다. 우리나라의 학교폭력은 ‘인성교육의 부재’라는 진앙지에서 출발한다. 인성교육의 부재를 이간질시킨 주범은 서열식 입시제도다.

명문고에 입학하고, 명문대에 진학하는 학생만이 이 땅에서는 제대로 된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돼 버렸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착하고 훌륭한 학생, 그 반대의 경우 학생은 나쁘고 일찌감치 싹이 없는 학생으로 낙인이 찍혔다.


낙인찍힌 학생들의 항변은 간단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보다, 자신보다 힘없는 학생보다 자신도 우월한 부분이 있음을 보여줘야 했다. 그건 물리적인 힘이었다. “내가 너희들보다 강하다”는 존재감의 발로였다. 누가 이들에게 이런 식의 존재감을 표현하라고 시켰는가. 이들에게 입시에서 불이익을 주면 학교폭력을 근절될 수 있을 것이라는 끌끌끌~ 혀를 찰 대책을 내놓고 학교 폭력의 주범들이 움츠러들 것이라고 상상한 이 나라의 교육 관료들의 현실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여기다 이들의 단골메뉴는 하나가 더 있다. ‘입시 불이익론’ 이외에 ‘학교지원 차등정책’도 학교폭력을 이 지경으로까지 키워 온 또다른 공범이다. 학교폭력이 발생한 학교는 지원금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학교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학교폭력이 발생해도 쉬쉬하며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교사들도 더 이상 문제 학생 계도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다. '교원평가에 반영되지도 않고, 오히려 체벌 논란에 휩싸이면 민망한 일을 당한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이런 구조 아래서는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학교에 인성교육이 발붙일 여지가 있을 수 없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기에는 매우 희한한 공통분모가 있음을 발견한하게 된다. ‘입시 불이익’과 ‘학교 지원금 차등’은 지금 교과부가 대학을 길들이는 두 개의 몽둥이다. 학교폭력을 근절시키겠다는 방법과 글로벌 시대에 걸 맞는 대학 육성방안이 쌍둥이 같이 너무도 똑같은 모양이다. 이 말은 이 나라의 교육 기조는 중등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똑같으며 그 내용은 절대적으로 ‘입시’와 ‘돈’에 달려 있음을 간파하게 된다. 이게 이 나라의 교육정책의 전부다.


‘물리적 폭력’은 정당하지 않다. 그러나 학교폭력을 휘두르는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이 학교로부터, 이 사회로부터, 정당한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을 삭혀주는 교육정책을 쓰지 않는 한, 이 땅의 학교폭력은 더욱 야만성과 성인사회 폭력과 빼닮은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 자명하다.


입시를 인간의 우월성을 재는 잣대로 삼고, 학교 지원금으로 학교 폭력을 막게 하겠다는 발상으로는 절대로 학교폭력을 이길 수 없다. 명문대 진학은 10만개의 가는 길 중의 단지 그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돈은 100만개의 방법 중 가장 간단한 방법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땅의 학교폭력을 키운 당사자는 바로 교육자라는 화살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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