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서야 비로소 내가 평생 동안 연구를 어떤 식으로 해 왔는지 조금 알 것 같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조건을 주고 결과를 구하는 일’을 해온 것이다. 그때 마다 연구 대상이 다르고 접근 방법이 다르지만 이론적으로나 실험적으로 원인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론적인 연구에서는 물리법칙을 적용한 수학적 모델을 세워서 관련 지배방정식을 유도하고, 주어진 조건에 따라서 어떠한 변화를 보이는지 해석한다. 여기서 해석한다는 말은 지배방정식을 푼다는 의미로 수학적으로 해를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험 연구도 마찬가지다. 실험장치를 구성하고 여기에 조건을 부과한 상태에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관찰한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이공계 분야 연구자들이 행하고 있는 공통적인 연구방식이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관찰된 결과로부터 주어진 조건이나 원인을 찾아내는 문제를 역문제(inverse problem)라 한다. 역문제는 정방향 문제보다 난해하고 결과도 정확하지 않다. 엄밀해를 구하기 어렵고, 해가 유일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역문제는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나무에 생긴 나이테를 보고 최근의 기후변화를 유추하는 문제라거나, 지구의 현재 상태로부터 태초의 온도조건이나 경과시간 등을 추적하는 문제이다.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는 일도 전형적인 역문제이다. 대부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원인이나 초기 조건을 규명하는 문제들이지만 현재의 정보를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는 경우도 있다.

공학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이러한 귀납적인 접근 방법을 응용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적 문제를 도출하고 그에 대한 해결방법이 제시될 수 있다. 건물 어느 지점에서 화재가 발생하거나 테러에 의해 독가스가 살포되면 가스는 공간 전체로 확산된다. 기존의 접근방법은 발생 위치와 발생량이 주어진 상태에서 시간 경과에 따라서 독가스의 확산과정을 유체역학적으로 해석한다.

이 문제를 거꾸로 접근하면 몇 군데 탐지기에서 측정된 가스농도 데이터를 이용하여 테러 발생위치와 강도 등을 실시간으로 역추적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된다. 또한 기계시스템의 오작동 발생시, 나타나는 증상을 모니터하여 고장 위치와 고장의 종류 등 그 원인을 찾아내는 ‘실용적인 문제’를 접근할 수 있다. 불량품이나 사고발생에 대한 신뢰성 평가 문제나 베이즈 통계에 의한 일반적인 추론의 문제도 같은 역해석 범주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다.

익숙한 접근 방법이나 고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면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독특한 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답과 문제가 뒤바뀐, 즉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답에 대하여 문제를 찾아가는 완전히 뒤바뀐 세상을 상상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Think different, think inverse!

<한화택 국민대 기계시스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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