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가시적 지표로 '빈 수레' 부채질

가시적인 국제화, 계량적인 국제화로 치닫는 언론사의 대학 국제화 부문 지표가 대학의 중장기적인 국제 경쟁력을 오히려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우선 우리나라 대학들이 국제화에 대한 가치정립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최근 본지의 U's Line 미래교육연구소는 우리나라 146개 4년제 대학이 모두 글로벌을 외치고 있지만 대부분 언론사들의 부문별 대학 랭킹을 매기는 국제화 지표에 맞추는 가시적 국제화로 치닫고 있어 이런 ‘키 크고 노랑머리 한국인을 만들겠다는 식’의 표피적이며, 계량적인 국제화는 대학에, 길게는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연구소는 이런 엉터리 국제화의 발단은 대학마다 국제화로 어떤 가치를 획득할 것인가 하는 가치정립이 돼 있질 않아 언론사들이 제시하는 지표에 그냥 순종하고 쫓아가는 형국이며, 더욱이 언론사가 매년 발표하는 대학별 부문별 랭킹을 의식해 지표에만 맞추는 계량적 국제화로 내몰아 우리나라 대학의 수업의 질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소는 우리나라 대학의 국제화 프로그램에 가장 큰 문제로 영어로 수업하는 전공과목의 공동화 현상을 꼽았다. 연구소는 해마다 대학별 영어강의 수업이 크게 늘면서 이에 대한 교수와 학생의 부적응 사례 또한 비례해서 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부적응에피소드는 실소를 자아내는 상황을 넘어 부실한 전공수업이 초래하는 우려가 하나, 둘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영어로 “과제물 내라” ··· 전원 못 알아듣고 제출 안해

최고 명문 S대에서는 영어강의 수업이 1/3일쯤 지났을 때쯤 교수가 더 이상 영어강의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교수의 영어수업 중단의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질문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교수는 “질문은 수업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전혀 이해가 되질 않는 상황에선 질문마저도 나오질 않게 되는 것‘이라며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학생들의 불만보다 교수가 먼저 못하겠다“고 할 형편이라고 흥분했다.

또한 사립대 명문 K대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교양관 강의실에서 사학과 전공과목인 '한국사회운동사'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영세농민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점을 설명하던 강사가 영어로 "중국과 베트남의 혁명은 누가 주도했나?"라고 질문했다. 학생 19명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강사의 시선을 피했다. 강사가 한 학생에게 답변을 요구하자, 학생은 당황한말투로, 영어수업에 한국말로 "사회주의자 아닌가요?"라고 답했다. 영어 질문은 계속 나왔지만 강의실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이 학교에서 나 온 발표다. 영어수업을 수강한 학생 100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60%에 가까운 학생이 불만을 터뜨렸다고 밝혔다.

영어강의의 혼란은 사립 명문 Y대에서도 바통이 그대로 이어졌다. 경영학과 전공과목인 '마케팅 전략' 수업시간에 벌이진 일이다. 교수는 강의 내용을 영어로 정리해 칠판 앞에 걸어둔 채 수업을 시작했다. "마케팅에서 '포지셔닝(posi tioning)'이 뭐라고 했죠?" 교수의 영어 질문에 40여명이 자리를 메운 강의실에는 학생이 한 명도 없는 것처럼 침묵이 흘렀다.

수업 듣는 학생들은 고개를 숙인 채 교재로 시선을 떨궜다. 책상 밑으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학생도 있었다. 한참 침묵 뒤에 앞자리에 앉은 학생 하나가 영어로 대답을 한 후에야 강의가 이어졌다. 영어가 유창한 학생 2~3명이 답변을 전담하고, 나머지는 칠판 베끼기에 바빴다. 교수는 수업 내내 영어로 "다들 따라오고 있죠?" "질문 없나요?" "내 말 이해한 거죠?"를 연발했다.

또 다른 S대의 '현대 세계와 글로벌 시각' 수업은 분명 영어수업이었지만 교수는 영어 교재를 읽고 한국어로 해석할 뿐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강의를 빨리 마치고 영화를 보겠어요" "교실 불 좀 꺼 줄래요?" 같은 말만 영어로 했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말 수업이었다. 외국인 교수가 수업을 맡았던 지방 D대학 경영학과에선 학생들이 과제물을 단체로 내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

교수가 확인해보니, "○○일까지 과제물을 제출하라"고 한 교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지방 C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학교 측이 모든 과에서 매년 2과목씩 의무적으로 영어 강의를 개설하도록 해서 어쩔 수 없이 영어 강좌는 만들지만 학생들이 알아듣지 못하니 결국 영어 교재를 읽고 해석해주는 것밖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영어강의 강좌수는 누구를 위한 지표인지···

영어강의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내용을 U's Line 미래교육연구소 조사 결과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이어 외국 교수들은 영어 실력이 떨어지는 한국 학생들을 고려해야 하니 상대적으로 기준을 낮게 잡을 수밖에 없는 경우, 심지어 한국 교수들의 영어실력도 한계가 큰 것도 확인됐다. 이와는 반대로 외국인 교수들은 한국어의 한계로 수업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오랜 연구를 거쳐 나온 게 아니기에 이미 짜여진 교육 커리큘럼에 제대로 녹아들어가지도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집단적 최면에 걸리게 하는 언론사의 국제화 지표 허구성은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 외국인 등록학생의 비율, 외국으로 많이 나가는 교환 학생 비율도 ‘속빈 강정’이다. 2000년 우리나라 대학의 외국학생 비율은 1.0%로 OECD 평균8.7% 보다 월등히 낮았지만 2007년 외국인 학생 변화지수는 947로 OECD 국가 중 증가율은 가장 컸다. 그러나 한국에 와 있는 외국 학생의 69%가 중국 일색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온 유학생은 3.8%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동남아계 학생도 급증했다.

결국 한국 대학에 와 있는 외국 유학생은 80%가 중국 · 동남아 국가다. 언론사가 말하는 국제화는 국내보다 선진 학문의 나라가 아닌 중국계 국제화다. 게다가 학비를 크게는 75%까지 할인, 다양한 장학금이 주어줘 국내 학생의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와 최근 교과부에서는 시정명령까지 내렸다. 더 큰 문제는 유학 온 학생들의 자질 문제다.

영어, 한국어 모두 안된다. 유학기간 중 상당 시간을 말 배우기에 전념한다. 엄밀히 말하면 유학생이 아니고 어학연수생이다. 특히 지방전문대로 중국 유학생은 학비가 저렴한 것을 이용해 유학생을 과장, 불법 취업으로 입국해 학기가 시작하면서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해 사회문제로까지 번질 위험마저 있다. 서울 소재 H 대학 국제어학원장 L모씨는 “외국 유학생 1명이 들어오는 것은 우리나라 대학생 15명이 나가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근거에서 나온 셈법인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혹, 언론사의 대학 국제화 지표에 그렇게 도움이 된다는 것과 헷갈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가장 확실한 국제화, 캠퍼스를 외국으로 옮겨라 ?

영국 캠브리지대 경제학 장하준 교수는 대학의 영어강의 열풍에 대해 “세계화 시대에 영어 잘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온 국민이 모두 영어 한다고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처럼 우수한 통역,·번역사를 양성과 직업적 내용이 영어가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영어보다는 자신의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는 방식의 분업(分業)이 국가 차원에서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 역시 영어 공부할 시간에 전공 공부에 보다 주력했던 것이 세계에서 인정받게 된 비결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굳이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원어 전공수업을 강제하는 것은 대학의 국제화를 영어로 수업하면 다 된다는 사대주의적인 발상이며 이에 대한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국내 대학 캠퍼스를 외국으로 옮기면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원어 수업이 필요한 경우는 있겠지만 적어도 그에 대한 대비를 확실히 하고서 수업을 듣게 해야 한다, 일단 경쟁시키면 된다는 생각은 너무 낙관적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외국어 수업 비율이 꽤 높은 편이지만 한국과 달리 실용영어 위주다. 1학년 같은 경우는 일주일에 6시간 이상 학교에서 실용영어 수업을 들어야 한다. 중국 대학 커리큘럼은 한국에 비해 분명 뒤떨어지지만 적어도 주먹구구식으로 도입하지 않는다. 한국은 이와 반대로 학교 영어수업은 실용영어와는 먼 방향으로 가고 일반 수업은 원어 위주로 돌리는 것으로 참 모순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국제기업연구소 이철희 소장은 “외국인 교수도 데리고 온다고 다가 아니고 공동 연구 등의 프로젝트를 활발히 기획해야 한다. 아니면 학문 선진국도 아닌 한국에서 그 교수들이 뭐 하러 왔겠냐”고 반문해보라고 한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안식년 편히 보내고 가려고 할 것이다. 학생들에 대한 수업도 꼭 외국인 교수가 필요한 수업만을 제공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그는 “방법적으로는 자국민만이 제공할 수 있는 교과를 교수 특성에 맞춰 제공하는 쪽, 그것도 애로사항을 반영할 수 있도록 피드백이 충분하도록 세미나식 수업을 진행하는 쪽이 훨씬 효율성이 높다. 하지만 대개 원어민의 수업은 그냥 자국에서 하던 내용을 그대로 읊거나 아예 한국인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어학 수업을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박병수 기자 pbs1239@usli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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