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을 강압적인 힘으로 요구

SNS로 밝혀진 '그들만의 규칙'

지난달 한 인터넷 게시판에 서울 S대학 생활체육학과 선배들이 만들었다는 신입생 생활규정이 올라왔다. 선배들에게는 ‘요’자를 쓰지 말고 ‘다, 나, 까’로 끝나는 말투만 사용해라, 지퍼와 단추는 끝까지 채워라, 엘리베이터는 타지 말라는 등의 세세한 행동지침을 담은 내용이 공개되면서 대학에 입학한 건지, 군대에 입대한 건지 모르겠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며칠 뒤에는서울 S여대 체육학과 14학번이 지켜야 할 생활지침이 또 폭로됐다. 선배들에 의해 강요돼온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규칙’이 SNS의 발달과 함께 하나둘씩 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 눈에 띄는 '감시받는 신입생'

새 학기를 앞두고 선배가 후배들에게 하달한 지침이 실제 개강을 하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딱히 제보자가 있던 것은 아니라 생활규정 문건이 공개된 대학을 포함해 여러 대학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체육대학을 중심으로 돌았는데 막상 취재를 하다 보니 특정학교나 체육학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무용과, 연극과, 간호과 등 흔히 ‘도제식 교육’이 이뤄진다는 학과를 중심으로 비슷한 신입생 규정이 존재하는 곳이 많았다. 그러다 경기도의 한 대학을 찾게 됐을 때 매우 특이한 광경을 보게 됐다. 학교의 신입생 거의 전체가 목에 명찰을 걸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신입생들은 선배가 보이면 달려가 허리까지 푹 숙이며 90도 인사를 했는데 과별로 명찰 색깔이 다르다 보니 멀리서도 한눈에 어디 소속인지 구별이 가능했다. 심지어 복장규정도 있어 과 잠바만 한 달간 계속 입고 다녀야 하는 곳도 있었고, 군대처럼 관등성명을 대며 ‘다, 나, 까’ 말투만 쓰는 과도 있었다. 선배들은 처음 보는 후배들의 얼굴을 빨리 익히기 위한 자신들만의 전통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명찰과 복장으로 인해 후배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선배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되고 있었다. 실제로 인사를 제대로 안 할 경우 선배들의 호된 질책을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여전히 기합이나 얼차려까지 성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방관하는 교수님은 무죄?

어느 정도 취재를 마친 뒤 학교 관계자를 찾아가봤다. 누가 봐도 이상할 정도로 신입생들이 부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매일 학교를 지나는 교수나 교직원들이 이를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먼저 언론을 상대하는 대외협력실의 책임자를 만났는데 자신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지 정확히 모르겠다며 과의 책임자인 학과장 교수들을 불러줬다. 교수들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신입생을 이런 식으로 교육시키라고 교수들이 직접 지시한 것은 아니다.”

“신입생의 학교 적응을 돕기 위해 선배들이 만든 전통일 뿐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교수는 “선배들한테 인사를 하는 건 좋은 게 아니냐”며 자신도 신입생들을 만나면 인사를 열심히 하라고 가르친다고 했다. 물론 그 교수의 말처럼 인사를 하는 것 자체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마치 유치원생처럼 목에 명찰을 걸고 다니면서 멀리서라도 선배가 보이면 달려가 90도로 인사를 해야 하는 ‘강요된 질서’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수년째 내려온 그들만의 규칙이 실제로는 누군가를 감시하고 행동을 억압하는 수단으로도 쓰이고 있다는 것을 그 교수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30년 인생 선배인 부모님께는?

보도가 나가고 또 다른 대학에서도 신입생에게 강요된 비슷한 규칙이 있다며 제보가 왔다. 기사에 대한 댓글도 4,600개나 달렸는데 그중에는 우리 학교도 이렇다, 어떤 학교가 심하다는 내용의 글이 많았다. 일부 학교만의 문제, 과거에나 있었을 법한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도 상당수 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여러 댓글 중 가장 인상적인 글을 소개하며 마친다.

“1년 선배에 대한 예의를 강요하는 선배들, 20~30년 인생 선배인 선생님들과 부모님께는 얼마나 예의를 갖췄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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