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처장이나 교수, 학생 기금운용 참여

조병두 동주실업 회장은 최근 모교인 성균관대에 장학기금 5억 원을 쾌척했다. 대교그룹 강영중 회장 또한 얼마 전 건국대에 5억 원대 주식을 기금으로 기부했다. 성공한 기업인이 아니더라도 평생 어렵게 모은 돈을 대학에 장학금으로 기부하는 이들의 미담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렇게 조성된 기금이 조금씩 불어나 대학 발전의 토대가 되는 기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국공립·사립대 기부금 모금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9~2011년 3년간 전체 242개 대학교의 3년간 발전기금 모금액은 1조7706억 원에 달했다.

2011년 기준 기부금 모금액은 서울대가 약 616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성균관대(약 554억 원)·연세대(약 543억 원)·가톨릭대(약 399억 원)·고려대(약 396억 원)순이었다. 이처럼 기부금은 서울 유명 대학에 쏠리는 경향이 강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부금이 적게 걷히는 대학들은 기부금 마련이 고심거리다. 대학들이 이처럼 기부금에 큰 관심을 보이게 된 데는 운영 수입의 대부분이 등록금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2009년 기준으로 사립대 운영 수입의 72%가 등록금이었다. 전입 및 기부금은 10%에 그쳤다.

갈수록 높아지는 인건비와 교육 여건 개선에 따른 비용 등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더 필요했다. 높아진 운영비는 다시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졌고 큰 폭의 등록금 인상은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했다.

▲국내 대학 중 체계적으로 발전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서울대발전기금은 저금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최근 국공채 등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ELS 투자로 1년에 100% 수익 올리기도

대학발전기금은 이 같은 필요성에 의해 조성됐다. 미국의 하버드대·예일대·스탠퍼드대 등이 좋은 사례다. 외국의 대학발전기금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위험을 분산하고 허용 위험 한도 내에서 기금 수익성을 최대화해 대학 재정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학발전기금의 모범으로 꼽히는 하버드대는 약 32조 원의 기금을 운용해 그 수익을 대학 재정으로 쓰고 있다.

국내 대학들이 외국의 사례를 따라 대학발전기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그런데 대학발전기금은 그 특성상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 수익으로 장학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 대부분의 기금이 시중은행의 정기예금에 묶인 이유다.

하지만 지속되는 저금리에 대학발전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정기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찾아야 했다. 그 결과 은행 예금에서 채권으로 다시 증시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학교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학발전기금이 본격적인 투자에 나선 것은 2003년 이후다.

그전까지는 시중은행의 정기예금에 넣어두고 1년에 두 번, 많게는 4번 정도 이자를 정리해 장학금 등으로 썼다. 다행히 당시는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가던 시기였다. 각 대학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공격적으로 발전기금을 운용하던 몇몇 대학들이 작은 비중이지만 기금의 일부를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했다. 마침 상승세를 탄 주가 덕에 연간 10% 이상의 수익을 거둔 대학들이 생겨났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금 규모가 작은 대학일수록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한 지방대학은 1년 동안 10여 차례 ELS를 사고팔아 100%에 가까운 수익을 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증권업계에서는 발전기금 규모가 5000억 원을 넘는 이화여대나 홍익대 등이 당시 ELS 투자로 연 30%가 넘는 수익을 남긴 성공 사례로 회자된다.

문제는 이들 대학들이 전문 투자 집단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에 취약했다는 점이다.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이 같은 취약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리먼 사태로 불거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이다. ELS에 투자했던 대학들은 주가 하락으로 큰 손실을 봤고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서 손실 폭이 커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대다. 고려대는 학교법인인 고려중앙학원이 재단 적립금을 ELS·주가연계신탁(ELT)·예금 등 단기 상품에 투자해 현재 약 20%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액수로 100억 원대에 달한다. 그 여파로 재단 이사장이 사퇴하고 현재까지도 책임 소재 논란이 일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학발전기금의 특징은 ELS나 예금 등 단기 상품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다는 점”이라며 “이런 이유로 리먼 사태 등 주가가 급락하는 상황에서는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리스크를 관리했다면 그 같은 손실을 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저금리가 지속되면 대학발전기금도 일반 연·기금처럼 합리적이고 투명한 투자로 기금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4천억 육박 서울대, ‘금리+α’상품 관심

주가 하락과 경기 침체로 손실을 경험한 국내 대학들은 한동안 증권사에 발걸음을 끊었다. 하지만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자 약정된 장학금 지급이 어려워진 대학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일부 대학발전기금이 내세운 목표 수익률은 4~5% 수준이다. 기준금리가 3%도 안 되는 상황에서는 정기예금으로 목표 수익을 거둘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학발전기금들이 다시 투자를 고민하며 증권사 직원들과 접촉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점점 덩치를 키운 대학발전기금이 제대로 운용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하버드대나 예일대 등 외국 유명 사학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라고 조언한다. 10년 동안 연간 5% 수익은 어렵지 않지만 1년에 5% 수익을 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대학발전기금협의회 서울경기강원지회장인 한양대 김승 대외협력팀장은 국내 대학들의 사정은 외국 대학과 기금 규모나 조직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하버드대나 예일대는 발전기금 규모가 수십조 원대에 이르지만 국내 대학들은 많아야 5000억 원 선이라는 점이다. 그나마 이 정도면 규모가 큰 편이고 대다수의 대학은 발전기금 규모가 1000억 원 이하다. 이 정도의 재원으로는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벅찬 게 현실이다.

“지난해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의 장근석 씨가 10억 원을 기부했는데요, 기부하면서 원금은 보존하고 그 수익으로 후배들 연극에 지원해 달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요즘은 장근석 씨처럼 기부자들이 기금 운용과 사용처를 정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이 그만큼 없는 거죠. 우리는 기금 모집 부서와 관리 부서가 별도입니다. 그렇다 보니 기금이 어떻게 관리되는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을 정기예금에 넣어뒀다는 정도만 아는 거죠. 다른 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김 팀장은 그러면서도 앞으로 기금 규모가 커지면 운용 효율성 제고를 위해 별도 운용 조직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에서는 서울대가 이미 기금 모집과 운용 등을 위한 재단법인 서울대발전기금을 두고 있다. 서울대처럼 기금 규모가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대학들은 현재 증권사와 접촉하거나 자문사 위탁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발전기금은 현재 4000억 원에 육박한다. 지금까지는 기금의 4분의 3 이상을 정기예금에 넣었다. 그런데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유입되는 자금(Inflow)과 나가는 자금(Outflow) 사이에 미스매치가 발생할 위험에 직면했다. 약정된 장학금 지급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최근 서울대발전기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국공채 투자를 고려하게 된 배경이다. 국채나 토지채, 물가채 등에 투자해 정기예금보다는 조금 나은 수익률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서울대발전기금 관계자는 “회사채도 ‘A+’ 이상 비교적 안전한 회사채에 투자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주식은 전체 기금의 1% 내외의 아주 작은 규모로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리+α’ 상품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서울대발전기금 뿐만이 아니다. 대학발전기금들이 중위험·중수익 상품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대학발전기금들은 증권사나 투자자문사에 자문하거나 일부 자금을 위탁하기도 한다.

앞으로 저금리가 지속되면 대학발전기금도 일반 연·기금처럼 합리적이고 투명한 투자로 기금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낮은 금리 하에서는 수익을 높이기 위해 리스크를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하버드대나 예일대처럼 재무처장이나 경제·경영학 교수, 학생 등이 기금 운용에 참여하는 것이 효율성과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자료 : 한경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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