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지식재산권 싸움,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

미국 법원이 24일 오후(현지시간) 애플과 삼성의 특허권 소송에서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과 인터페이스, 트레이드 드레스 관련 특허를 침해했으며, 삼성이 특허침해로 애플에 끼친 피해액이 10억 5183만 달러, 한화 약 1조 2천억 원에 달한다는 평결이다. 주말을 넘긴 27일 아침 국내 언론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그 내용의 주된 골자는 미국 법원의 애국심이 애플에게 승소를 안겨줬다는 것이다.

그보다 앞서 24일 오후 한국의 법원에서도 애플과 삼성의 특허권 소송 판결이 있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삼성전자와 애플이 서로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에서 애플이 삼성의 무선통신 기술 특허 2건을, 삼성은 애플의 바운싱 백 상용특허를 각각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언론들은 이 소식도 크게 보도했다. 그러나 어느 언론도 한국 법원의 애국심이 삼성에게 승소를 안겨줬다고 보도하지는 않았다.
삼성의 패소 소식을 다룬 국내 언론의 보도는 미국 법원이 내린 평결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이었던 ‘트레이드 드레스’ 개념이 갖는 모호성에 대한 비판 일색이었다. 국내 언론들은 이 판결을 ‘동전던지기’에 비유했고(조선일보 28일자, “동전 던지기 했나” 美서도 졸속 평결 논란), 대부분의 스마트 폰들이 아이폰의 트레이드 드레스를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 27일자, 아이폰 이전에 나온 국내 스마트폰들 보니) 특히 <아이폰 이전에 나온 국내 스마트폰들 보니>라는 기사는 ‘한 IT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둥근 모서리의 사각형 디자인이 애플의 고유 디자인으로 최종 인정될 경우,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향후 애플에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게 될 것이고 이는 글로벌 IT업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요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로 인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 애플이 독점적 역할을 차지하게 될 것이란 의미다.
무엇이 국익인가
국내 언론들이 이토록 삼성을 싸고도는 까닭은 삼성으로 대변되는 국내 기업의 수출성적 부진이 곧 국익을 감소시킨다는 논리 때문이다. 사실 기업의 이익이 곧 국익이라는 논리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 국익을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얼마간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법적 절차적 정의가 다소간은 희미해져도 상관없다는 시각도 오래된 얘기다. 문제는 오히려 이런 태도와 시각을 언론들이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비리 범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다. 지난 2009년 이건희 삼성회장의 특별사면 당시 중앙일보는 < MB, 이건희 전 회장 사면, 국가 관점서 결심>이라는 기사에서 “(이 전 회장은) 이제 심기일전해 한국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전하며 이건희 회장의 사면이 국가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는 논조를 보였다.
같은 날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위한 국가적 선택>이라는 사설에서는 “이 대통령이 고심 끝에 이 전 회장에 대한 사면·복권을 결심한 것은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환영한다”고 말했다. 탈세와 불법증여라는 범죄에 대한 처벌보다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판단’을 더 환영한다는 뜻이다.
이번 삼성 애플간의 소송을 보도하는 태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애플의 승소를 두고 미국 법원의 배심원 제도를 비판하거나 트레이드 드레스 개념을 비판하는 등 형태는 다양하지만 결국 논지는 ‘삼성이 패소함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익이 감소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삼성과 애플간 특허권 소송의 핵심은 ‘지식재산권’에 있다. 지식재산권은 개인 혹은 기업이 창출하거나 발견한 지식, 정보, 기술이나 표현, 표시 그 밖의 무형적인 것으로서 재산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지적창작물에 부여된 재산에 관한 권리를 뜻한다. 지식재산권이 포함된 상품을 구매 사용할 때는 지재권을 가지고 있는 저작자에게 로열티를 지불 할 수밖에 없다.
지식재산권은 누구를 보호하나
국내에서 지식재산권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2005년 "No Patent, No Future!"로 특허경영을 선포했다. 이후 2005년 한 해에만 18000건이 넘는 특허를 등록했다. 또 특허 출원이 많은 10개 기업의 특허 출원건수가 대기업 출원건수의 62.5%를 차지하고 있다.(특허청, 2011 한국의 특허동향) 특정 기업이 국내의 특허, 지적재산권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로서 삼성이 얻어내는 로열티는 그대로 상품가격에 반영, 그대로 소비자의 부담이 된다. 이는 곧 이번 삼성 애플간의 싸움에서 삼성이 이기든 애플이 이기든 결국 지식재산권을 어느 기업이 갖느냐는 싸움이라면 그 부담 역시 소비자가 지게 된다는 뜻이다.
‘정보공유연대 IPLeft’는 지식재산권에 대해 “일부 독점 기업의 이익을 위한 논리이지, 사회 구성원 전체를 위한 논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삼성이 이긴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국익이 크게 증진되는 것도, 애플이 이긴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국익이 크게 손상 받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언론들은 지금 ‘국익’이라는 실체 없는 사탕발림으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는 꼴이다. IPLeft의 오병일 대표는 “지식재산권이 오히려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기도 하며, 경쟁사 제품의 출시 자체를 가로막아 경쟁을 배제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며 지식재산권의 보장이 소비자들의 피해를 강요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언론이 삼성의 (혹은 애플의) 지식재산권을 옹호하면서 이를 국익으로 포장하는 것은 오히려 언론이 직접 나서 기업의 애국주의 마케팅을 돕는 꼴이다. 온라인상에서는 SNS를 중심으로 벌써부터 애플의 승소를 선언한 미국 법원의 평결을 비판하며 삼성 스마트폰의 장점을 설명하는 글들이 오르고 있다.
지식재산권은 정보와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교환을 가로막는다. 특히 현대의 사회에서 지식재산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본연의 취지보다는 자본의 독점을 조장하고 비호하는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IPLeft’가 2010년 발표한 지식재산기본법에 대한 의견서는 “개별 지식 상호간에 의존성이 높은 첨단기술분야일수록 특허권의 강화가 기술발전에 오히려 부정적이라는 연구결과도 많으며,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저작물의 배타적 권리에 기반한 시스템보다는 자유로운 접근과 이용을 허용하는 것이 창작의 활성화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삼성의 승소가 가져올 것은 국가 혹은 국민들의 이익이 아니라 삼성의 이익이다. 그리고 삼성이 보는 이익은 대부분 국민으로 불리면서 국익을 위해 삼성의 편을 들도록 강요받는 이들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간다.
언론의 역할이 실체적 진실을 보도하고 사회의 정의를 위해 펜을 드는 것이라면 호들갑스런 애국주의 마케팅과 본질을 외면한 기업 편들기부터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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